가상공간에서 사용자 대변하는 아바타, 신종 사이버 폭력 대상돼
메타 호라이즌 플랫폼 테스트 기간에도 아바타 성추행 사건 발생
국내에서도 역기능 예방 마련 위해 법제화 움직임 일어나
메타가 지난 2월 4일 퍼스널 바운더리 기능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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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등장하면 이에 따른 사회적 역기능이나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사용자와 대화하며 학습하는 인공지능(AI) 챗봇은 각종 혐오나 차별 발언을 배우는가 하면, 학습 데이터에 대한 개인정보 비식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근 새로운 플랫폼으로 주목받는 메타버스 역시 이러한 역기능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메타버스 산업 발달과 함께 아바타를 통한 가상현실에서의 활동 증가는 비대면 업무 수행, 사회적 관계 형성, 가상 쇼핑 등 편리한 일상생활을 제공하는 한편, 아바타를 통한 활동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가치가 침해될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치안 전망 2022'에 따르면 이미 메타버스 내에서는 현재 메타버스 주 이용층인 10대를 대상으로 스토킹이나 유사성행위 등 신종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가장 대중적인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의 경우 전체 이용자 10명 중 7명이 아동 청소년이며, 여성 이용자 비율이 77%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닐슨코리아, 2021년 1월). 때문에 메타버스가 이들을 상대로 하는 다양한 성착취 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이미 인터넷 뉴스 댓글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이버 폭력이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이미지·텍스트 등이 퍼져왔으며, 메타버스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야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아바타를 이용해 행동이나 음성 등을 통해 이뤄지는 침해 행위는 이전보다 더 파급력이 클 수 있다. 여기에 가상현실 헤드셋 등을 착용하며 몰입감이 높아진다면, 가상공간의 폭력이 실제처럼 느껴질 가능성도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하는 아바타와 달리 메타버스 아바타는 학습, 업무, 사회적 교류 등 현실세계와 연계한 활동을 가상공간에서 대신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소셜미디어로서의 성격을 가진 메타버스 특성 때문에 아바타를 실제 사용자와 연결해 식별하는 등 자연인과 아바타의 동일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이러한 '신종' 범죄가 우려되면서 기업은 이와 관련한 규정을 마련하는 한편, 유관부처에서도 법과 제도적으로도 대응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베타 테스트 기간 중 메타버스 성추행 보고받은 메타, 안전 위한 거리두기 기능 마련
메타(전 페이스북)는 이달 4일(현지시간) 블로그를 통해 자사의 메타버스 플랫폼인 호라이즌 월드와 호라이즌 베뉴에서 아바타 사이의 거리가 4피트(약 1.2m)로 유지되도록 하는 기능 '퍼스널 바운더리(Personal Boundary)'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퍼스널 바운더리는 사용자 아바타간 거리를 약 1.2미터로 유지하는 기능으로, 이를 통해 두 사용자가 접촉하려면 서로 손을 뻗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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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능은 다른 사람의 아바타가 자신의 아바타 근처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한다. 상대방이 경계선을 넘으려고 하면 시스템상으로 이동이 막힌다. 이 기능은 아바타의 손이 타인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는 것을 막아준다. 아바타가 서로 접촉하려면 두 아바타가 모두 손을 뻗어야 하며, 이를 통한 접촉은 악수나 하이파이브 정도로 제한된다. 향후에는 접근 범위를 사용자가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추가할 계획이다.
비벡 샤르마 오큘러스 부사장은 블로그를 통해 "가상공간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커뮤니티에서 피드백을 수집해 개선을 반복하고 있다"며 "퍼스널 바운더리는 가상현실에서 사용자가 편안하게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표 사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용자가 가상현실을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을 계속 테스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메타가 이러한 기능을 도입한 배경에는 베타 테스트 기간 중 발생한 성범죄 때문이다. 메타는 지난해 12월 1일, 호라이즌 월드 베타 테스트에 참여한 여성 사용자가 메타버스 내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포스팅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도 타인의 접촉이나 소통을 차단하는 안전장치 '세이프존(Safe Zone)'이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메타는 새로운 거리 유지 기능을 도입하고 상시 적용되도록 서비스를 개편했다.
법무부, 신종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인격권 침해범죄 신설하는 권고안 마련
국내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온·오프라인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성적 인격권' 침해 범죄를 신설하고, 성범죄자의 보호관찰 준수사항을 추가하는 등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은 성범죄자의 재범 방지를 위해 불법촬영물 소지 금지 등 보호관찰 준수사항을 새롭게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성적 인격권 침해 범죄의 장소가 메타버스 등 신종 인터넷 공간으로 확대 및 진화하는 추세와 함께, 주 이용자가 10대인 점을 고려해 신종 플랫폼을 이용해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원격 성범죄를 사전에 예방・차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이용한 사이버 성범죄는 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죄'나 모욕·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내에서 아바타 사이에 벌어지는 행위에는 이러한 규정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모욕이나 명예훼손 등은 불특정인 혹은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공연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댓글이나 소셜미디어 게시물 등은 공연성이 성립되지만, 메타버스 공간 내에서 은밀하게 발생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이 어렵다. 현재 통신매체이용음란 역시 단순히 저속한 표현을 넘어 음란의 정도를 충족해야 한다.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새로운 방식의 비접촉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나, 법제의 미비로 피해자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타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행위가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는 '비신체적' 방식, 개인을 대변하는 아바타를 대상으로 한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온·오프라인에서 타인을 성적 대상화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해행위에 대해 피해자의 성적 인격권의 관점에서 법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권고안에서 (법제화를 통해) 기존의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포섭되지 않는 메타버스 등 온라인 공간에서의 성적 침해행위 혹은 언어적 성폭력에 대해 성범죄 특성에 맞는 형사적 대응을 통해 범죄 억지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상우 기자 lswoo@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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