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8일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꿉니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과학기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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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 네 편 가르지 않는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6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국민의힘 광주 선거대책위원회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윤 후보는 지난 5일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고, 지난 6일 5·18 민주화묘지를 참배하는 자리에서도 국민통합을 구호처럼 반복했다.
통합을 강조한 윤 후보는 지난 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는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 얘기”라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윤 후보가 성평등 관련 언론사 공약질의에 답변을 거부했다는 내용을 공유하며 홍보했다. 통합을 강조한 지 하루 만에 특정 성별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윤 후보가 말하는 통합에서 여성과 성평등 분야는 예외로 보인다. 여성 차별을 다루는 공약은 전무한 수준이다. 여성 대상 공약 역시 후보가 직접 발표한 공약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같은 행보는 윤 후보 본인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지난해 8월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 대상 강연에서 “페미니즘이란 것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 선거에 유리하게, 집권 연장하는 데 악용돼선 안 된다”며 “페미니즘이라는 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도 막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 성폭력처벌법상 무고죄 신설을 공약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영입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 네트워크 대표에게 환영의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국회 사진기자단 |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과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으로 각각 영입한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신지예씨와 지난달 결별하고, 이 대표와 극적 화해를 한 후 윤 후보의 이 같은 행보는 가속화됐다. 윤 후보는 지난해 12월 이 교수 주도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의 잊힐 권리 보장, 스토킹피해자 신변보호 국가 책임 등의 공약을 발표했지만 이후 성평등 관련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달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적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여가부 완전 폐지로 입장이 변한 건 1월1일”이라며 “신년회의 후 청년보좌역들한테 신지예 전 부위원장 영입에 대한 반발, 젠더 갈등의 중요성을 전해 듣고 결단을 내린 것 같다”고 했다. 곽승용 당시 정책총괄본부 청년보좌역은 지난달 1일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신년인사에서 “국민의힘이 극단주의 페미니즘을 선택하면 그 표는 순식간에 다 떨어져 나간다”며 “신지예씨를 영입한 이후의 여론조사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극단주의 페미니즘의 기대와 여성 표를 얻으려는 기이한 전략을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이 교수와 신씨의 부재와 2030여성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 선대본부 구조도 성평등 공약 실종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 교수는 선대본부 외부고문직을 사퇴하기 전 지난달 13일 기자와 통화에서 “피해자 지원 공약은 계속 살아남는다. 좀 더 강화될 것”이라며 후속 공약 발표를 준비했으나 이 교수 사퇴 이후 관련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다. 청년보좌역 역시 남성 30명, 여성 10명으로 구성돼 균형 있게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렵다. 선대본부 내부에서는 여가부 폐지 공약이 지지율 상승에 영향을 미친 뒤로 여성 공약을 내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의견도 나온다.
선대본부는 청년본부 내 여성정책TF를 신설하고 향후 여성정책을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한 청년보좌역은 기자와 통화에서 “큰 방향은 여성에 치우치지 않고 가족정책 위주의 여성정책에 집중하고 있다”며 “기존 나온 공약을 세부화하는 것이다. 여성 안전 문제도 있고, 경력단절 여성 외 다른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보좌역 회의에서 여성정책이 더욱 강화됐으면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구조적으로 여성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윤 후보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일보 인터뷰를 두고 “구조적인 남녀 차별이 없다고 말한 건 아니다”라며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차별 해소에) 노력해왔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개인별 불평등, 차별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 후보 발언은 여성을 음소거 시키는 것”이라며 “(윤 후보 주장은) 젊은 사람들이 그랬다는 건데 특정 커뮤니티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를 갖고 대통령 후보가 그렇게 단언적으로 이야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우리 사회에 가부장적 성차별적 제도와 문화, 관습이 남아있고 그런 점에서 구조적 성차별을 인식하는 건 중요한 국가적 사명”이라며 “여성 공약으로 저출생, 육아만을 강조하는 건 여성을 전통적인 성역할에 묶어놓겠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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