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1월 수출 기록 경신에도
무역수지 월 49억달러 적자
회복세 한국 경제에 ‘찬물’
정부, 유류세 인하 연장 검토 국제유가가 연일 상승하는 가운데 두바이유 기준 국내 수입가격이 7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2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과 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
최근 국제유가가 90달러 안팎까지 치솟으면서 회복세이던 한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난달 수출이 1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였음에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무역수지는 두 달 연속 적자로 돌아섰다. 2일(현지시간) 오펙플러스(OPEC+) 산유국 회의가 열린 가운데 주요 기관들은 상반기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지속해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북해산 브렌트유는 지난달 31일 91.21달러에 거래돼 2014년 10월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수입 비중이 큰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달 31일 88.39달러까지 올라섰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일 88.20달러로 마감했다. 국제유가는 1월 한 달간 약 17%가 뛰었다.
원유, 석탄,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한국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달 수출이 사상 최대였음에도 무역적자 역시 대폭 늘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날 발표한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2% 증가한 553억2000만달러였다. 이는 1월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수입이 늘면서 무역수지는 48억8900만달러 적자로 금융위기 때보다 악화했다. 직전 최대 무역적자는 2008년 1월 40억4000만달러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12월(4억5200만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무역수지가 2개월 이상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08년 6∼9월 4개월 연속 적자 이후 처음이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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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원유·가스·석탄 수입 규모는 전년 1월보다 90억6000만달러 증가한 159억5000만달러로 1월 적자폭을 훌쩍 초과했다.
앞서 12월에도 3대 에너지원 수입금액이 130억6000만달러로 전년보다 66억달러 늘었다. 정부는 이를 겨울철 수요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와 산업구조가 유사한 일본이 12월 5824억엔(약 6조1100억원) 적자였고,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프랑스 역시 11월 97억3000만유로(약 13조2000억원) 적자였기에 한국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심상치 않은 국제유가 오름세다. 오펙(석유수출국기구)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비오펙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오펙플러스는 이날 회의를 열고 증산 여부를 논의했다.
주요 기관들은 최근 속속 국제유가 전망치를 상향했다.
JP모건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 긴장 고조로 브렌트유 가격이 1분기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여름철 국제유가 전망치를 브렌트유는 100달러, WTI는 97.50달러로 높였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전체 수출에서 40%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성장세마저 둔화하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과 중국 성장률을 각각 5.2%→4.0%, 5.6%→4.8%로 대폭 내려 한국 경제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원유 공급 차질에 우크라 사태 정치적 불안까지 가세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보고 있다. 산유국들의 공급 차질로 인한 재고 감소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거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에 따른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더해졌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정치적 개입의 영역으로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 제92 기계화여단 소속 장갑차들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북동부 하르키우 지역의 기지에 주차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하르키우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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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 전망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를 중심으로 한 오펙 플러스(+)가 증산 속도를 높여 하루 20만배럴 생산량을 추가로 늘리더라도 유가는 약 3달러 내리는 데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골드만삭스는 “오펙 플러스가 증산 결정을 하더라도 과열된 에너지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가격 상승 전망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망했다. 2일 오펙 플러스가 회의를 통해 증산 여부를 검토할 예정인데, 이번 결정이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국제유가 고공행진은 수요 불안보다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지정학적 위험성이 우선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할 경우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이 출렁이면서 국제유가에 큰 변동성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천연가스 대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의 에너지 가격도 치솟아 유가 상승세를 다시 자극할 것이란 전망이다.
CNN은 업계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할 경우 유가가 단시간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RBC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분석가는 “유가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위험지대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며 “유럽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유가에 개입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세계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원유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처방이 쉽지 않다. 외신이 경제학자와 분석가 43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브렌트유 평균 가격 전망치는 배럴당 평균 79.16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전망치(73.57달러)에서 크게 늘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평균 가격도 배럴당 76.23달러로, 이전 전망치(71.38달러)보다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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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한 수요 반등으로 유가가 상승하면서 올해 하루 평균 수요 증가분이 300만∼50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시장 재고 수준이 얼마나 빠듯한지를 고려하면, 산유국의 공급 증가세가 목표치보다 뒤처지거나, 미국이 증산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유가 100달러는 시간문제”라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3.1%로 제시한 우리 정부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달 ‘2022년 대외경제정책 추진전략’에서 올해 국제유가 및 주요국의 소비자물가(CPI)를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으로 오미크론 변이 확산과 제로 코로나 정책(중국)을 지목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여타 리스크’로 분류했다.
하지만 미·러 갈등이 진정되지 않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3.0%)과 주요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오미크론 확산과 함께 ‘예상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둔화 요인으로 꼽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향후 국제유가 급등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 회복세가 지연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물가 상방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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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파고 직면한 산업계… 올 사업계획도 못 세웠다
연초부터 몰아치는 에너지·원자재·공급망 불안이라는 3대 파고를 헤쳐나가야 하는 산업계가 좌불안석이다. 이들 대외 악재는 기업 채산성 악화 등을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서민 물가에도 심각한 타격을 안길 수 있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가장 불확실성이 커진 곳은 에너지 분야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무력충돌 가능성 등의 영향으로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고, 특히 지난달 말 90달러 안팎까지 치솟은 국제유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복세를 키우던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달 수출이 1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였음에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무역수지가 두 달 연속 적자로 돌아선 게 그 시그널이다. 한국이 세계 5위권의 에너지 수입국이라서 빚어진 일이다.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불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 생산자물가 및 기업 채산성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분석’ 보고서는 “기업이 원자재 수입물가 상승분의 절반을 자체 흡수하고 나머지 절반을 제품 판매가격에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영업이익률은 연간 2.3%포인트 떨어지고 상품·서비스 가격은 6.0%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연평균 100달러로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는 1.1%포인트 상승해 연간 성장률과 경상수지는 0.3%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자재 가격 변동성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가중도 유가 불안과 함께 산업계를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2년은 해외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며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했다면, 지금은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앞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확대가 원자재·공급망 불안을 증폭시킨 양상이라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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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운임 추이를 보여주는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가 지난달 7일 역대 최고인 5106.6을 찍은 후 현재까지 5100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도 불안한 징조다. 해운업계에서는 잠시 숨 고르기 중인 운임이 중국 춘제(설) 연휴 등의 비수기가 끝난 뒤 다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동량 정체의 가장 큰 원인인 선박 부족도 단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다. 글로벌 해운 리서치 기관인 클락슨은 올해 물동량이 4% 늘어나는데 선복량은 2%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상황이라 기업들은 아직 올해 사업계획도 확정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공급망 불안에 따른 물류비 상승은 기업 경영에 치명적이다. 제품 생산단가와 비용은 올랐지만, 납품단가에 즉각 반영하기 어려워 이익 감소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연일 오르고 있는 2일 서울시의 한 주유소에서 종업원이 업무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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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대항력이 대기업에 비해 취약한 중소기업엔 더 큰 부담이다. 지난해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수출 중소기업 472곳과 대기업 51곳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응답 기업의 73.9%가 원자재 가격 상승에 의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기업은 56.9%가 그렇게 답했다. 또 대·중소기업 50.3%는 당시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자사 수출품 가격을 인상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계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악재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 정부가 기업과 협력해 관련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은아·이병훈· 이희경·나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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