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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차기 대선 경쟁

“부끄럽다”“잘할게”…왜 2022 대선은 ‘사과 풍년’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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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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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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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사과 풍년일세.”

20대 대선을 50여일 앞둔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자조다. 큰절과 눈물, 심지어 실제 사과(apple)까지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사과 퍼레이드’가 끊이지 않으면서다. 사과할 일도 다양하다. 정부 실패나 정치적 잘못뿐만 아니라 개인사·자녀·배우자에 대한 반성과 사죄, 고개숙임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두 번이나 유권자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씨도 수차례 고개를 숙였다.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는 훗날 ‘사과 대선’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될까. 과거와 달리 정치인들의 사과가 횟수·대상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대폭 늘어났다는 게 중론이다. 중앙정치 바깥에서 성장하면서 신상관리나 검증이 덜 된 ‘0선 후보’들의 등장, 공정·소통·상식에 민감한 젊은 유권자층의 급부상 등이 후보들의 고개와 무릎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잘할게” 이재명의 큰절·눈물

“민주당이 앞으로 더 잘하겠다. 앞으로 더 잘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많이 부족했다.” 지난 24일 경기 용인시 포은아트홀. 이 후보는 민주당 의원 30여명과 연단에 올라 단체로 큰절을 올렸다. 민주당이 집권세력으로서 국민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내로남불’ 태도를 보인 데 대한 사과였다. 이 후보의 주요 사과 포인트는 ‘민주당 정권의 실책’이다. 부동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 후보는 당 선거대책위원회를 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해 11월에도 “새 민주당으로 거듭나겠다”라며 유권자들을 향해 큰절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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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민생·개혁 입법 추진 간담회에서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겠다”며 사죄의 절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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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문제와 가족사에 대한 사과도 수차례였다. 과거 음주운전 이력에 대해 그는 경선 중이던 지난해 8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사과했고 지난해 11월에도 한 차례 더 고개를 숙였다. 형수 욕설 논란에도 “제 부족함의 소산”이라고 사과했으며, 최근에 추가 욕설 녹음본이 공개되자 지난 24일 유년시절을 보낸 성남시 상대원시장을 찾아 “제가 욕한 점 잘못했다. 우리 가족 아픈 상처를 그만 헤집어 달라”라고 했다. 그는 형 이재선씨와의 갈등 같은 어두운 가족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장남의 불법 도박 의혹이 터지자 보도 4시간여 만에 “제 아들의 못난 행동에 대하여 실망하셨을 분들께 아비로서 아들과 함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발빠르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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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해 12월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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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앞에 제 허물…” 윤석열은 ‘배우자 리스크’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 윤석열 앞에 저의 허물이 너무도 부끄럽다.” 지난해 12월26일, 윤석열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간 제기된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서였다. 김씨는 국민들을 향해 “잘못한 저 김건희를 욕하시더라도 그동안 너무나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온 남편에 대한 마음만큼은 거두지 말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읍소했다. 윤 후보도 이날 “제 아내가 국민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저도 똑같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의 단골 사과 대상은 배우자의 학력 위조 의혹과 ‘7시간 통화 녹취록’ 등에 대해서다. 윤 후보는 지난 24일 “녹취록에 의해 마음이 불편하시거나 상처받으신 분에게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녹취록에서 김씨가 무속인 의혹을 해명하며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모두 굿을 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공개되자 수습에 나선 것이다. 윤 후보는 지난 27일에도 녹취록 문제에 대해 재차 사과했다.

실언에서 비롯된 사과도 있다. 지난해 10월 윤 후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고 발언했다가 비난이 일자 “송구하다”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직후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이 올라왔다. “사과는 개나 줘 버린다는 뜻이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이른바 ‘개 사과’ 논란에 직면한 윤 후보는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라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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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10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를 마친 뒤 걸어 나오고 있다. 윤 후보는 이날 5·18 민주묘지 추모탑에 헌화·분향하려 했으나 반대하는 시민들에 가로막히면서 추모탑까지 가지 못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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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도 선거 전략

후보들의 경쟁적인 사과 릴레이는 선거 전략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사과도 일종의 메시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내내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초접전 양상을 보여 왔으며, 두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호감도’는 이례적으로 높다. 이 같은 이유로 여야 캠프는 조그마한 악재도 지지율 등락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김건희씨 사례처럼 대선 후보 배우자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는 일은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배우자 리스크를 조기 진화해야 할 필요성이 윤 후보에게는 절실했다는 방증이다. 김씨가 기자회견을 연 12월 말, 윤 후보는 선대위 내홍 등까지 겹치며 각종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윤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당시 이 후보에게 뒤처지는 데드크로스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재명 후보에게 사과 전략은 좀 더 복잡하다. 집권 여당 후보라는 타이틀은 이 후보에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입법·예산 등 가용자원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반면, 부동산 문제 같은 전임 정권의 실책까지 모조리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실책에 대한 이 후보의 ‘대리 사과’는 부동산 정책에서부터 민주당의 ‘내로남불’ 태도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더군다나 이 후보는 ‘40%대의 벽’ 앞에 멈춰선 지지율을 더 이상 끌어올리지 못하고 새해 들어서는 윤 후보에게 여론조사 상으로 재역전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눈물 사과’ ‘큰절 사과’처럼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은 답답한 정체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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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캠프에서 관리하는 윤 전 총장 반려견 ‘토리’ 명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과를 건네는 사진이 올라왔다. ‘토리’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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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부진을 극복하려고 사과 카드를 꺼내드는 일은 과거 선거판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8대 대선을 80여일 앞둔 지난 2012년 9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들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안철수·문재인 후보가 치고 올라오는 데다 당시 박 후보 본인의 역사인식 논란까지 일면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기 위한 카드로 대국민 사과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이던 2017년 4월 자신의 ‘동성애 반대’ 발언에 대해 “아픔을 드린 것 같아서 송구스럽다”라고 사과했고, 부산아시안게임 북한응원단을 ‘자연미인’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끼셨을 분들에게 죄송하다”라며 실수를 수습한 바 있다.

■그래도 너무 많다…‘사과의 과잉’

그 중요성을 감안해도 이번 대선에서는 사과가 유독 잦다는 게 여의도 안팎의 평가다. 과거 대선에서의 사과는 후보들의 ‘본업’, 즉 정치 활동을 하다가 불거진 문제를 진화하는 차원에 그쳤다. 개인 신상 문제가 불거져 후보나 그 가족이 사죄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이 후보의 사과는 주로 민주당 정권의 정책 실패에 방점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음주운전이나 가족 욕설 논란 등 개인사 영역에서도 잊을 만하면 사과할 일이 터져나왔다.

전문가들은 잦은 사과의 주요 원인을 이재명·윤석열 등 주요 후보들이 ‘0선 후보’라는 점에서 찾고 있다. 본인과 가족에 대한 사전 관리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이재명 후보도 성남시장·경기지사라는 선출직 이력이 있지만 검증 절차가 훨씬 까다로운 (국회 등)중앙 정치에서의 경험은 전무하다”며 “사과가 후보의 정치활동이 아닌 개인사·과거사에 주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과거와 다른 양상”이라고 말했다. 사과 행렬을 두고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새로운 유권자 계층이 형성되고 있는 징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진보 대 보수로 나뉘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진보와 보수, 그리고 2030이라는 세 개의 덩어리로 유권자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라며 “정치인들의 진정성이나 공정·상식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2030 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과가 종종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 이전 대선과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이 불미스런 일을 사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과의 과잉’을 마냥 좋게만은 볼 수 없다는 평가다. 엄 소장은 “유권자들로서는 사과가 진정성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전문위원도 “미래 비전보다는 과거에 대한 사과만 이어지는 점은 유권자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최근 출간한 저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에서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면서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이 사과가 아니다. 정치인의 사과란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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