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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야산 벙커에 숨은 지하반군의 SOS... “한국은 미얀마를 포기하지 말아 달라” [미얀마 쿠데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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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쿠데타 1년… 계속되는 희생]
대학생 A씨, 반군부 벽보제작 투쟁
저항세력 숨겨주면 도시 시민들 부동산 압류
총 대신 무선인터넷 공유기로 외부사회 호소
군부 "이슬람 신도들이 버마인 학살" 대민 심리전
소수민족 반군 '요인 공격조 군사훈련 캠프'

편집자주

미얀마 군부는 문민정부의 압승으로 끝난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며, 국회 개원을 몇 시간 앞둔 2021년 2월 1일 새벽 쿠데타를 일으켰다. 1년이 흐른 지금, 무자비한 폭압에 1,5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1만2,000여명이 투옥됐다. 한국일보는 반(反)군부 정보전 활동가와 지하반군(UG) 인터뷰 등을 통해 현지 상황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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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정보전 활동가들이 쿠데타가 일어난지 1년이 지났다. 우리는 이날을 잊지 않기 위해 침묵의 파업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벽보를 미얀마 도심 곳곳에 부착했다. 현지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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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평범한 대학생이던 A(22ㆍ여)씨는 지난달 초 동료 5명과 서둘러 짐을 꾸렸다. 지난해 4월 반군부 벽보를 제작하는 투쟁을 시작한 후 4번째 도주다. 같은 해 하반기 "정권에 대항하는 인원을 숨겨준 자들이 적발되면 부동산을 압류하고 중형에 처한다"는 군부의 명령이 현실화한 뒤 대도시에서 활동은 점점 어려워지는 중이다. 다행히 모 지역의 시민저항군 통신담당관과 연락이 닿아 이동편은 구해졌다. 떠나는 A씨의 손에는 무기가 아닌, 노트북과 무선인터넷공유기·투쟁 기록 자료만 들려 있었다.

A씨 등은 거처를 옮긴 직후 역할을 분담했다. 3명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군부의 거짓 선전전을 반박하는 그래픽을 올리는 작업을, 나머지는 쿠데타 1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진행될 예정인 '침묵 파업'을 독려하는 벽보 작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최근 10개월간 '미얀마 골든핸드 뉴스' 등 친군부 매체가 "국제사회가 군사평의회(SAC)를 인정했다"는 등의 거짓 기사를 올릴 때마다, 국제기구의 성명서 등을 미얀마어로 번역해 SNS와 벽보를 통해 알린 바 있다. 1일 A씨에 따르면, 이들처럼 반군부 정보전 투쟁중인 인원은 전국 각지에 최소 150명에 달한다.

활동가들은 군부 측의 유인물 유포 대책에도 전력을 쏟고 있다. 정부군은 최근 한 달 사이 사가잉ㆍ친ㆍ카야주(州)에서 헬리콥터를 동원해 ‘이슬람 신도들이 버마인을 학살하고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담긴 유인물 수천장을 뿌렸다. 민족 구성은 다양해도 90% 이상이 불교를 신실하게 믿는 미얀마인들의 성향을 악용, 군부에 대한 반감을 만회하기 위한 시도다. 유인물 대응 작업 중 정부군 순찰차의 접근을 확인하고 인근 야산의 벙커로 황급히 숨은 적도 수차례다. 다행히 군부의 추격망을 피한 이들은 현재 친(親)군부 글로벌 기업들에게 보낼 '사업철수요청서'를 영문으로 작성 중이다.

A씨는 "총기를 다룰줄 모르는 우리에게 무기는 SNS와 벽보 작성 뿐"이라며 "인터넷과 글쓰기에 능한 장점을 살려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잔혹한 군부에 맞서 버틸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 대답은 담담했다. "우리는 1년 안에 투쟁의 끝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한국은 미얀마를 포기하지 말아달라."

지하반군 "살상 아닌, 군부 협력 포기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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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미얀마 양곤 도심의 한 건물에서 발생한 지하반군(UG)의 폭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군이 현장에 급파되고 있다. 이라와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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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점에서 일하는 B(35)씨는 손님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지난해 반군부 시위 중 하반신에 실탄을 맞아 합병증으로 사망한 친구의 장례식 이후부터 쭉 그렇다. 죽은 듯 살아가는 날들이다. 겉으로는 침묵하지만 그는 모 지역의 지하반군(UG) 소속 정찰병이다. UG 합류 시기가 늦어 아직 게릴라 공격조에 들지는 못했지만, 일상 생활 중 그가 보고한 정부군 초소 및 관공서ㆍ친군부 인사의 자택 경계 정보는 천금같은 자료다. B씨는 "내달 소수민족 반군이 운영하는 기초 군사훈련 캠프에 파견될 예정이다"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지역에서든 UG 공격조로 활약해 친구의 영혼을 달랠 것"이라고 말했다.

B씨가 활동 중인 UG는 '위협형' 게릴라군 조직이다. 미얀마 대도시에는 B씨의 UG처럼 시설물 타격을 통해 군부 세력의 이탈과 축소를 노리는 온건파와, 정부군 병력과 인사를 직접 저격하는 '암살형' 급진 UG가 양분돼 활동 중이다. 위협형 UG는 올해 들어 삼엄해진 정부군의 경계로 인해 위장 폭탄을 시설물에 숨긴 뒤 원격조정으로 폭파 작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암살형 UG 역시 군부 주요 인사들이 대외 노출을 기피해, 최근에는 친군부 과격 테러단체 회원 혹은 군부 정보원을 타깃으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대부분의 UG는 작전지에 '당신이 군부를 떠나면 안전은 보장된다. 미얀마 민주주의여 영원하라'와 같은 메시지를 남겨 군부에 대한 협력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UG가 군부처럼 살상을 통한 공포 확산 전략에 집착했다면 지금보다 수십배 이상으로 도심 정부군과 친군부 인사들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군 내부 붕괴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며 "승리의 날이 머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기를 드러낸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ICC 제소ㆍ공군력 제거 전략, 군부 축출 이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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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미얀마 친주 시민저항군이 운영하는 기초 군사훈련 캠프에서 정부군 공중 순찰에 들키지 않고 수풀을 이용해 은신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진행 중이다. 미얀마 나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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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진영을 대표하는 국민통합정부(NUG)는 지하 민주세력의 의지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분주하다. 가장 먼저 이들은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우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국가 간 분쟁만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달리 개인의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도 다루는 ICC를 움직일 수만 있다면, 유엔 등 국제사회의 미얀마 군부 축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묘 죠 우 NUG 외교부 차관은 지난달 28일 "미얀마에서 계속 쿠데타가 발생하는 것은 군부 지도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처벌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ICC 제소를 위해) 독자적인 NUG 조사기구를 편성해 민간인 피해자 진술과 동영상·사진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NUG는 지난해 연말 카야주에서 발생한 민간인 35명 학살을 제소 대표사건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NUG는 무력 저항전 또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다. 관건은 정부군의 공군력을 약화시킬 방법이다. 현재 소수민족 반군과 시민군은 익숙한 지형을 이용한 육상전에서 승전고를 울리고 있지만, 군부 측의 전투기·헬리콥터를 통한 공중전에는 속수무책이다. NUG 관계자는 "정부군의 공중 화력만 없었다면 우리가 이긴 싸움"이라며 "카렌민족연합(KNU) 등 소수민족 반군과 대응책을 찾아 반드시 올해 군부를 굴복시키겠다"고 말했다.

물론 지하 민주세력과 NUG의 열망이 실현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미얀마가 ICC 비준국이 아니라 실효성이 모호한데다, 군부의 화력 우위가 당장 약화될 가능성도 낮다. 게다가 사태 해결의 키를 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은 올해 의장국인 캄보디아 측 훈센 총리의 친군부 행보로 더 큰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수많은 미얀마 시민들은 NUG의 재정에 도움이 되는 '복권'을 정기적으로 구매해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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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미얀마 카야주에서 반군부 활동 중 체포된 소년 2명이 민주화를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은 얼마 뒤 변사체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미얀마인들의 공분을 샀다.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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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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