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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차기 대선 경쟁

[취재파일] '無힘'이라 '유죄'라는 거대 여당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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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재판이 끝났다. 대법원에서 징역 4년 형이 확정된 정경심 전 교수 재판 얘기다. 남편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전후로 자녀 입시비리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3년이 훌쩍 지났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명명된 일련의 경과는 우리 사회에 많은 상흔을 남겼고 일부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어찌 됐든 정경심 전 교수 사건에 대한 사법적 평가는 일단락된 셈이다.

그러나 한때는 나라가 두 동강 나다시피 했던 일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균열과 상처가 한순간에 봉합될 순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분노할 것이고 누군가는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대한민국은 표현과 양심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그러나 유독 눈에 들어온 건 몇몇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반응이다. 개인 자격이 아닌 집권여당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거대 여당 의원의 '자기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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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판결이 나온 27일 자신의 SNS에 '유힘무죄 무힘유죄'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힘이 있으면 무죄요, 힘이 없으면 유죄라는 뜻으로 읽혔다. 일각에선 징역 4년이 확정된 정경심 전 교수가 힘이 없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취지의 글이란 해석이 나왔고 장 의원 본인도 부인하지 않았다. 같은 당 김용민 의원은 판결 직후 "재판운, 판사운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진실과 무관하게 오로지 판사 성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는 판결은 사법개혁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라고 올렸다.

그러나 김용민 의원의 글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정경심 재판은 약 3년에 걸쳐 1심과 2심, 상고심까지 세 번에 걸쳐 이뤄졌고 그때마다 재판부는 모두 다른 사람들로 구성됐다. 2심 재판부 가운데 평소 검찰의 조국 수사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보인 판사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재판운과 판사 성향을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다. 변호사 출신 김용민 의원이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만약 알고도 이렇게 썼다면 허위로 증오를 부추기는 선동에 가까운 글이다.

장경태 의원의 글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번 판결을 두고 "힘이 없어 유죄"라고 말하고자 했다면 실로 놀라운 수준의 사실 인식이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시민이 얼마나 있을까. 자녀의 이른바 '7대 스펙'은 모두 허위로 드러났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도 일부를 제외하고 유죄가 선고됐다. 힘이 없다는 말도 그렇다. 180석 거대 여당의 힘으로 대선 정국 직전까지 사실상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던 민주당 아니었나. 이제 와서 갑자기 "우리는 힘이 없어 유죄다"라고 말하는 건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역시 일부 지지자들을 의식한 메시지인가.

'무(無)힘'이란 표현이, 사실상 풍비박산 난 정경심 전 교수와 조 전 장관의 가족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이 역시 심각한 자기모순이자 기만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조 전 장관의 가족이 힘을 잃었다면, 그렇게 될 때까지 민주당은 뭘 하고 있었나. 그렇게 지켜주자던 조국 전 장관을 위해서 그동안 무엇을 했나. 조국이라는 상징을 이용해 자기 정치를 한 사람은 과연 하나도 없었나.

'자기만 보는' 정치, 대선에 도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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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대선 준비에 한창인 민주당은 이번 판결에 대해 아무런 공식 논평도 하지 않았다. 같은 날 민주당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우상호 의원은 관련 질문에 "법원 판결은 전통적으로 정치권이 항상 존중한다는 입장과 자세를 견지해 왔다"며 "거기에서 벗어나는 어떤 논평을 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민주당에 아로새긴 내로남불 이미지가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해석도 나왔지만, 어쨌든 우 의원의 말에는 삼권 분립과 상호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담겨 있다. 요새 민주당 일각에서 586 용퇴론이 나오지만 "586이 물러나면 그보다 더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장경태 의원은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이 잘못했다"며 큰절을 올리고 날마다 달라지겠다고 외치는데 혁신위원장은 SNS에 "유힘무죄 무힘유죄" 8글자 올렸다. 아무리 짧은 글이 요즘 여의도 유행이라지만 말이다. 민주당이 지금 하겠다는 게 내로남불, 기득권, 꼰대 이미지 벗겠다는 것 아니었나. 상대방이 아무리 실수해도 후보 지지율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80석 민주당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아직도 모르는가.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역사의 법정'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간 일은 시대가 평가하고 언젠가 올바로 기록되듯 역사의 법정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당장 대선 승리를 위해 조국 사태 사과하고 혁신하겠다는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일부 의원들의 '유힘무죄 무힘유죄' 주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크게 보지 않고 작게 보고 있거나, 자기만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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