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제약하는 현실적 장애물
美 일방주의 비판해온 러, 군사 침략 땐 자기부정
우크라와 슬라브 정체성 공유… ‘동족상잔’ 부담 커
나름 준비했어도 美 등 서방 초강력 제재도 불안
蘇, 능력넘치는 군사력 사용해 붕괴 자초 역사도
나토 가입·돈바스 내전 격화가 무력개입 ‘레드라인’
러시아 육군 자주포가 지난달 16일 러시아 우랄 오렌부르크 근방에서 실시된 군사훈련에서 불을 뿜으며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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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피해자 코스프레와는 달리 침략국이자 슬라브 공동체 파괴국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하나 서방의 초강력 제재도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제약합니다. 다만 서방이 키예프에 첨단 공격무기를 추가 제공하고,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이를 활용해 친(親)러 돈바스 반군 공격을 강화할 경우 전쟁 발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 및 한·러 관계 전문가인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학과 주임교수는 3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조건임을 설명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친러 성향인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내전 격화와 같은 레드라인(Redline)을 넘는 사태가 발생할 때는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러, 동서남북 사방서 우크라이나 압박
-최근 우크라이나 상황은.
“2020년 후반 미국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의 지위로 환원시켰다. 반면 러시아는 과거 냉전 시절처럼 악의 제국으로 인식하면서 주적으로 규정했다. 중국보다도 러시아에 대해 더 강한 반감과 적의를 드러낸 것이다. 바이든이 집권하면 미·러관계는 악화일로를 거듭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고 지정학적 단층지대 우크라이나에서 현실화·첨예화되었다.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러의 대치가 치킨게임 양상을 보인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 공급을 늘리고 조속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했다.”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이 강화되고 있다.
-친서방 세력과 친러 세력 대립 와중에 2020년 11월 친서방 성향 대통령이 집권한 몰도바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서쪽에 있는 몰도바의 자치공화국 트란스니스트리아에도 군사적 기반을 갖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주민 대부분이 러시아계로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몰도바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분리 독립운동 과정에서 몰도바 중앙정부와 전쟁을 했고 현재는 크렘린의 보호 아래 친러 자치공화국으로 남아있다. 서방 정보기관은 위성정찰을 통해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 군사 활동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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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도바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구글맵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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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겁박 전략의 성과
“크렘린은 그동안 일관되게 우크라이나 침공 준비설에 대해 ‘그럴 계획이 없다’면서 ‘근거 없는 긴장 고조 행위’라고 반박했다. 다만 서방이 러시아 안보를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공격적인 노선을 지속할 경우 강력한 군사·기술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하면서 구체적인 군사적 대응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나 국제관계에서 고전적 명제로 통용되는 ‘말을 믿지 말고, 행동을 믿어라’는 격언은 크렘린 주장에 신뢰를 주지 못한다. 말로 속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행동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있는 양태에서 침공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부정적 의견도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크렘린 군사적 압박 전략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할 때 침공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분단선으로 한 나토와의 강대강 대치를 통해 다양한 수준의 전략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루스키(러시아인)들의 대국적 자존심 세워주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 해소를 위해 외부로 시선 돌리기, 미국을 외교 테이블로 유인하고 협상의 유리한 고지 선점하기, 중국에 가려져 있던 러시아의 지정학적 존재감 과시하기, 유럽 분열시키기, 러시아군의 전시 대비태세훈련 점검 및 작전능력 강화하기, 우크라이나의 경거망동 제어하기 등의 측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전후맥락에서 러시아는 침공 그 자체보다는 우크라이나 국경선에서의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를 통해 미국을 안전보장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외교담판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나토와 미군 병력을 주둔시킬 의도가 없다고 밝히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역시 우크라이나는 아직 집단안보 원칙을 규정한 나토 헌장 제5조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언급한 상황을 더한다면 굳이 러시아가 성급하게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으로 밀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된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7년 2월10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정책회의 연설에서 작심한 듯 “냉전은 한번으로 족하다”면서 미국 중심 세계질서를 비판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지배하는 단극(單極) 체제는 권력과 힘, 의사결정의 중심이 하나이고, 지배자와 주권도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내부로부터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상 앞줄에 있던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부 장관,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서방 쪽 참석자들은 매우 놀라는 모습이었다.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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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 침공 땐 피해자→침략자 낙인 부담
-결국 현재로선 무력충돌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다는 이야기 같다.
-푸틴의 대외, 대미 정책은 어떻게 전개됐나.
“2007년 2월 제43차 독일 뮌헨 국제안보정책회의에서 푸틴이 행한 연설은 러시아 대외정책 기조 변화를 알리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미·러 간 협력의 이익 또는 미국 패권이 제공해주는 편승의 이익을 향유했던 ‘실용적 강대국’ 노선에서 모스크바가 워싱턴의 패권에 도전하고 속주를 거느린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시작한 ‘독자적 강대국’ 노선으로 전환한 대외정치적 분수령이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작심하고 미국을 직접 거명하며 국제사회의 합의와 유엔의 동의절차를 무시한 워싱턴의 외교적 일방주의와 군사적 전횡을 강한 어조로 공격했다. 미국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에 자신의 법적 기준과 정치도덕적 가치들을 강요하고, 불법적으로 전 세계 전쟁을 부추긴다고 고개를 쳐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자기모순이 될 수 있겠다.
“그랬던 푸틴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군사적으로 유린할 경우 결국 자신의 뮌헨 연설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기만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고 러시아 역시 제국주의적 침략국가 오명을 쓸게 자명하다. 영민한 전략가 푸틴이 과연 그런 무리수를 둘지 의문이다. 사실 푸틴은 이런 오명을 회피하면서 전략목표를 달성하는 다른 방식의 꼼수를 택했다. 주지하듯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개입과 돈바스 반군 지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크렘린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등 분쟁지역에 공식적으로 러시아 정규군 병력을 투입하지 않고 용병을 보내 대리전쟁을 해주고 있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러시아에는 돈바스 지역을 분쟁지역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토 회원국 가입 요건에서 분쟁지역이 있는 국가는 신규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학과 주임교수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강연하고 있다. 홍완석 교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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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정될 슬라브 공동체 파괴시 부메랑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이 분쟁지역이 될 경우 나토 가입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우크라이나 영토에 군사력 투사를 주저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슬라브 공동체의 인적·물적 피해와 역사유산 파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크렘린궁 홈페이지에 올린 장문의 에세이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 키예프 루스(882∼1240)에서 기원한 하나의 민족으로 혈통·문화·종교·언어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라면서 양국의 역사적 동질성을 역설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국가(One Nation)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베이징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는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시 동족을 공격하는 셈이 된다는 의미인가.
“같은 혈족의 수많은 이산가족이 양국에 흩어져 사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점령 작전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동슬라브 민족의 혼이 담긴 수많은 세계적 문화유산들의 유실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경제 및 군산(軍産)복합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드네프르강 이동(以東)지역의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지대 피해도 불가피해진다.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 공세는 서방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과 시민군, 특히 서부지역 민족주의자들의 격렬한 저항이 수반될 것이기에 군사력 동원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러시아의 침공은 쉽지 않을 수 있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일종의 자해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악의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해야 할 군사적 옵션이다.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믿는 구석이 있어 푸틴의 탱크가 국경을 넘을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외부세계가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지만 정작 우크라이나 국민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대도 한국이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있는 정교회의 성소피아대성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뿌리이자 동슬라브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 키예프 루스 때인 11세기에 건립돼 슬라브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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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서방의 초강력 제재도 내심 우려
-미국 등 서방의 초강력 제재 위협은 효과가 없나.
“전혀 내색은 않지만 서방의 고강도 제재 압박도 일정수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도발을 움츠리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지난 1월 24일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역대급 제재카드를 흔들며 대러 압박의 강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화웨이에 가했던 것과 유사한 초강력 금수(禁輸) 조치를 러시아에도 적용할 것임을 천명했다. 미국이 자국산 소프트웨어와 기술, 장비를 이용한 제품의 수출을 통제할 경우 러시아의 산업구조 재편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국방, 항공우주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의 기술 발전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노드스트림2 가스관 폐쇄가 결정되면 러시아 재정은 큰 압박을 받게 된다.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결제망에서의 축출은 러시아 경제에 ‘퍼퍽트 스톰’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수출입이 곤두박질치고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은 된서리를 맞으며 세계 경제에서 고립도 더욱 심화할 것이다.”
-러시아도 서방 제재에 나름의 대비를 하지 않았나.
“물론 크렘린이 미국의 초강력 제재에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해왔지만 러시아 경제가 받는 데미지는 일면 불가피해 보인다. 안전보장이라는 효용을 경제손실이라는 비용보다 우선시했기 때문에 선택한 군사적 도발일지라도 세계정치경제자본을 공고히 통제하고 있는 서방에 의해 러시아 경제는 다시 위기 속으로 날개 없이 추락할 공산이 크다. 안전보장 확보의 경제적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가 결코 원치 않은 중국 의존성이 심화할 수 밖에서 없다. 어찌 보면 중국의 총알받이가 되어가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제재가 이뤄진다면 양국 관계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 푸틴의 언술에서 지옥의 제재에 대한 두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9월 독일 북동부 루민에 있는 도로표지판이 노드스트림2 가스파이프라인 시설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Gazprom)사에 따르면 노드스트림2는 러시아 우스트-루가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 북동부 그라이프스발트를 연결하는 1200㎞의 가스관이다. 그라이프스발트와 루민은 직선 거리로 약 15㎞ 떨어져있다. 루민=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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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주먹자랑’이 야기한 ‘소련 붕괴’ 트라우마
-러시아의 힘이 강해졌으나 서방을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크렘린이 우크라이나 침공설을 강력히 부인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또 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힘의 과잉 투사, 즉 ‘오버스트레칭(Overstretching)’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것은 푸틴이 지정학적 재앙이었다고 규정한 소련 붕괴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푸틴 집권 후 러시아 재건이 진행되지 않았나.
“푸틴의 대통령 집권 18년, 총리직 포함하면 22년은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재건을 향한 험난한 여정이었다. 푸틴의 러시아가 강대국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얻은 빛도 있지만 그늘도 있다. 러시아의 힘과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면서 전통적·역사적 세력권의 일부를 복구하고, 제국증후군에 목말라 하던 루스키들의 카타르시스를 해소해준 것을 가장 큰 성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강대국이라는 최면은 일시적 자기만족일 뿐 현실을 오히려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러시아는 자국이 강대국이라는 환상 또는 강대국이 되어야만 한다는 자기충족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현실적 국력에 맞지 않게 너무 일찍 힘과 영향력의 과잉 외부투사를 하고 있다. 푸틴이 지도하는 위세적 강대국 노선은 사활적 국가이익의 요구에 따라 단호히 행사된 것이지만 러시아 자신의 국력, 특히 경제력을 신중히 계량치 않고 내지른 모험주의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2014년 3월 크림반도 병합 후 러시아의 위상이 다시 높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크림반도 병합 이후 지난 8년 간 서방이 가한 혹독한 경제제재, 이와 맞물린 미국의 양적 완화와 국제유가 폭락 등으로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적 자상(刺傷)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동부(돈바스 지역) 반군을 지원하는 군사비 지출이 밑 빠진 독이 되어 러시아 경제에 동맥 경화 현상을 초래했다. 뒤이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군사개입은 재정여건을 더욱 악화시켰다. 여기에 그루지야의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 공간의 해외군사기지와 역외지역에 새롭게 확보한 시리아의 타르투스와 라타키아, 이집트의 시디바라니 군사기지 등을 유지 및 운용하는데도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 또 군사력 확충 비용, 이를테면 핵추진 수중 드론, 핵추진 순항미사일, 미국 미사일 방어망(MD)을 피할 수 있는 RS-26 아방가르드와 RS-28 사르맛,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킨잘과 치르콘 등과 같은 첨단 신무기 개발 역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과거 소련 붕괴를 가져온 미·소 군비경쟁처럼 현재 군비지출이 러시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미인가.
“일련의 전쟁 수행과 과도한 군비지출이 경제피로 현상을 가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자신의 역량에 과부하를 초래한 군사력 투사의 오버스트레칭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과거 소련이 사회주의 발전의 내적 동력을 상실했는데도 미국과 벌인 무리한 군비경쟁, 아프가니스탄 군사침공과 10년의 전쟁이 소련 경제를 거덜 내 결국 몰락의 길로 들어섰던 역사적 교훈이 새삼 상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 러시아 모두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재조직화의 약화, 창조적 생명력의 부재, 분수를 모르는 힘의 과잉 과시 등에 의해 무너졌다. ”
1988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는 소련군 제1기갑여단 제1진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소련은 1979∼1989년 10년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국력을 소진하면서 붕괴의 길을 가게 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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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의 나토 가입·돈바스 내전 격화가 도화선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소탐대실일 수 있다는 뜻인 거 같다.
“21세기 차르 푸틴이 안보적 당위와 경제적 현실의 괴리를 모를 리 없다. 푸틴은 더 이상의 오버스트레칭이 부담스럽다. 우크라이나의 아프가니스탄화 또는 체첸화를 초래할 수 있는 군사적 도박을 선호할 리 없다. 2020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 규모 11위(한국은 10위)에 불과한 러시아는 전면전과 장기전을 지탱할 경제력이 안 된다. 더욱이 매의 눈으로 촘촘한 감시가 집중된 지금 우크라이나 어디에도 전광석화처럼 쉽게 점령할 땅도 없다.
종합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하기엔 잃을 게 너무 많고 전략적 손실도 매우 크다. 설사 군사행동에 나선다 해도 여러 정황상 우크라이나를 먼저 그리고 직접 침공할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된다. ‘러시아는 전쟁할 의도가 전혀 없고,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크렘린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일면 수긍이 간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는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하기 어려운 핵심이익, 즉 지정학적 급소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거의 확정된 단계에 이르렀을 때나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거꾸로 보면 결국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과 같은 일정 조건에서는 침공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우크라이나 영토로 불똥이 튈 수 있는 최악의 전쟁 시나리오 하나가 있다. 만약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친서방 정권에 전쟁을 부추기는 공격용 첨단무기를 추가로 제공하고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이것을 활용해 러시아가 보호하는 돈바스 반군에 대한 군사공격을 현저히 강화할 경우다. 이때는 2008년 8월 조지아 전쟁과 같은 패턴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지난 28일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지역 야보리프 근방에서 영국군이 제공한 차세대경량대전차무기(NLAW)를 발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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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전쟁이라고?
“조지아 전쟁은 이 나라의 군사 분규에 2008년 8월 7일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당시 미헤일 사카쉬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탈러·친서방 노선을 견지했고 우크라이나와 더불어 나토 가입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는 나토의 묵시적 동의와 지원 아래 자국 영토지만 주권이 미치지 않는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아 자치주로 정부군을 전격 진군시켜 군사 작전을 전개했다.
러시아가 이에 남오세티아 내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전차 및 야전포를 동원한 정예 병력을 즉각 투입함으로써 전투가 본격화되었다. 러시아의 막강 화력과 군사력에 압도되어 전쟁은 5일 만에 조지아의 항복 선언으로 종료된다. 8월 16일 프랑스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정작 미국은 전쟁만 부추겼을 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지아가 미국 ‘빽’ 믿고 까불다가 러시아에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격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레드라인이 되겠다.
“조지아 전쟁을 반추해 볼 때, 흑해에서의 우발적 충돌과 함께 돈바스 내전의 격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계철선(引繼鐵線·적 침입 시 건드려 폭발물이나 조명탄·신호탄을 터뜨리는 철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 뒤에는 예외 없이 군산복합체 또는 에너지 메이저의 냉혹한 사익(私益), 즉 죽음을 파는 상인들의 로비가 자리 잡고 있다. 뒤집어 설명하면 워싱턴의 대외정책 방향성은 군산복합체와 에너지 메이저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소 작위적으로 연출된 우크라이나 위기는 미국 군산복합체와 에너지 메이저의 이익이 일직선상에서 일치하고 여기에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이 일정수준 전쟁 발발의 추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
●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학과 주임교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동 대학원 동구지역연구과 석사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 정치학박사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장 및 러시아연구소 소장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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