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전두환 군사 정권은 반독재 운동에 나섰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로 보내 사상을 정화하고 이른바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 사업'을 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인 모를 죽음도 잇따랐는데, 이후 4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진상 규명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대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전두환 씨가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습니다.
신군부는 이 열기를 끊어내기 위해 이른바 '녹화 사업'을 밀어붙였습니다.
사복 경찰을 풀어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붙잡아 연행한 뒤 '사상 정화'와 '프락치' 포섭을 목적으로 학생들을 군대에 보낸 겁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밝힌 피해자 수는 1,100여 명.
이 가운데 학생 8명이 부대 안에서 원인도 모르게 희생됐습니다.
성균관대 81학번으로 21살의 나이에 반독재 시위에 나섰다가 강제 징집된 고 이윤성 씨도 이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 씨는 2대 독자로 군 면제 대상이었지만 육군 5사단으로 끌려갔고, 제대를 불과 일주일 정도 앞두고 군 보안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군은 이 씨가 불온서적을 군 내부로 들여와 월북을 기도하다가 조사를 받게 되었고 앞으로 받게 될 처벌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박정관 / 고 이윤성 씨 매형 : 자해 도구 빼앗고 유치장에 넣는 게 제일 기본인데 어떻게 자살이 가능하냐 하는 식으로 제가 추궁을 들어가니깐, 맨 앞에 있던 장교가 일어나더니 "이 빨갱이 XX들" 하고….]
하지만 이 씨와 함께 군으로 끌려 들어갔던 '녹화 사업' 피해자 이용성 씨의 증언은 다릅니다.
군 보안사로 끌려가 친구들의 운동권 활동 정보를 수집하라는 이른바 '프락치' 포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겁니다.
[이용성 / '녹화 사업' 피해자 : 첫 번째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우리는 다 전방에 있었거든요. 너는 여기서 죽어도 GP에 던지면 지뢰 사, 사고사로 할 수 있다. 그때부터 공포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강압 수사가 이뤄졌습니다.
[이용성 / '녹화 사업' 피해자 : (어머니가) 단 하루도 안 빼고 우리 중대장한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이셨는데 취지는 우리 아들 죽이지 말라는 거에요. 매일 매일 쓰셨대요.]
이후에도 군 보안사의 프락치 포섭 활동은 '선도 사업'이란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 시절 학생 운동을 하다가 카투사로 입대한 서울대 경영학과 83학번 김용권 씨 역시 지난 1987년 의정부 미군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군 당국은 정신 질환을 앓던 김 씨가 2층 침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머니의 노력으로 보안사에서 구타와 가혹 행위가 있었던 정황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박명선 / 고 김용권 씨 어머니 : 결정문이라 하면서 (아들이) 보안대에 들락날락하고 우리가 프락치로 써먹고 했다는…. 그럼 써먹었으면 써먹은 담당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보안대에.]
지난달, 고 이윤성 씨의 죽음과 관련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억울한 죽음이 있은 지 무려 40년 만입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유족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반대로 국가기관의 진상 규명 작업은 더딘 게 현실입니다.
YTN 김대겸입니다.
YTN 김대겸 (kimdk1028@ytn.co.k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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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군사 정권은 반독재 운동에 나섰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로 보내 사상을 정화하고 이른바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 사업'을 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인 모를 죽음도 잇따랐는데, 이후 4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진상 규명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대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전두환 씨가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습니다.
신군부는 이 열기를 끊어내기 위해 이른바 '녹화 사업'을 밀어붙였습니다.
사복 경찰을 풀어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붙잡아 연행한 뒤 '사상 정화'와 '프락치' 포섭을 목적으로 학생들을 군대에 보낸 겁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밝힌 피해자 수는 1,100여 명.
이 가운데 학생 8명이 부대 안에서 원인도 모르게 희생됐습니다.
성균관대 81학번으로 21살의 나이에 반독재 시위에 나섰다가 강제 징집된 고 이윤성 씨도 이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 씨는 2대 독자로 군 면제 대상이었지만 육군 5사단으로 끌려갔고, 제대를 불과 일주일 정도 앞두고 군 보안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군은 이 씨가 불온서적을 군 내부로 들여와 월북을 기도하다가 조사를 받게 되었고 앞으로 받게 될 처벌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박정관 / 고 이윤성 씨 매형 : 자해 도구 빼앗고 유치장에 넣는 게 제일 기본인데 어떻게 자살이 가능하냐 하는 식으로 제가 추궁을 들어가니깐, 맨 앞에 있던 장교가 일어나더니 "이 빨갱이 XX들" 하고….]
하지만 이 씨와 함께 군으로 끌려 들어갔던 '녹화 사업' 피해자 이용성 씨의 증언은 다릅니다.
군 보안사로 끌려가 친구들의 운동권 활동 정보를 수집하라는 이른바 '프락치' 포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겁니다.
[이용성 / '녹화 사업' 피해자 : 첫 번째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우리는 다 전방에 있었거든요. 너는 여기서 죽어도 GP에 던지면 지뢰 사, 사고사로 할 수 있다. 그때부터 공포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강압 수사가 이뤄졌습니다.
[이용성 / '녹화 사업' 피해자 : (어머니가) 단 하루도 안 빼고 우리 중대장한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이셨는데 취지는 우리 아들 죽이지 말라는 거에요. 매일 매일 쓰셨대요.]
이후에도 군 보안사의 프락치 포섭 활동은 '선도 사업'이란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 시절 학생 운동을 하다가 카투사로 입대한 서울대 경영학과 83학번 김용권 씨 역시 지난 1987년 의정부 미군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군 당국은 정신 질환을 앓던 김 씨가 2층 침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머니의 노력으로 보안사에서 구타와 가혹 행위가 있었던 정황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박명선 / 고 김용권 씨 어머니 : 결정문이라 하면서 (아들이) 보안대에 들락날락하고 우리가 프락치로 써먹고 했다는…. 그럼 써먹었으면 써먹은 담당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보안대에.]
지난달, 고 이윤성 씨의 죽음과 관련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억울한 죽음이 있은 지 무려 40년 만입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유족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반대로 국가기관의 진상 규명 작업은 더딘 게 현실입니다.
YTN 김대겸입니다.
YTN 김대겸 (kimdk102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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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두환 군사 정권은 반독재 운동에 나섰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로 보내 사상을 정화하고 이른바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 사업'을 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인 모를 죽음도 잇따랐는데, 이후 4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진상 규명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대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전두환 씨가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습니다.
전두환 군사 정권은 반독재 운동에 나섰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로 보내 사상을 정화하고 이른바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 사업'을 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인 모를 죽음도 잇따랐는데, 이후 4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진상 규명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대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전두환 씨가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