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한국산 철강제품 232조 조치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타이 대표는 비시장적인 중국산 철강제품 유입에 따른 공급과잉 우려를 언급하며 한국과의 재협상에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2018년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미국에서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로 각각 25%, 10%를 일괄 부과했다. 이러한 조치는 EU, 일본, 중국에 적용됐다. 한국은 고율 철강관세를 피하는 대신에 3년치 철강 완제품 평균물량의 70%까지 수출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선택한 바 있다. 미국 경제호황으로 철강수요가 늘어나더라도 한국 철강제품의 추가 수출길은 막혀있는 것이다.
여한구 본부장은 이날 타이 대표에게 미국의 철강 232조 조치 개선 필요성과 한국 측의 우려를 거듭 전했다. 또 한국 철강업계와 공동으로 미국 의회, 주지사, 경제단체, 싱크탱크를 연쇄 접촉해서 철강 232조 개선을 위한 협력을 당부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EU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철폐했고 연이어 일본과도 협상을 재개한 가운데 한국과의 진전은 더딘 상황이다.
미국 측은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과 철강 재협상을 시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한미통상장관 회담과 관련해 "타이 대표가 (과도한 정부보조금이나 가격할인 등) 비시장적 관행으로 인한 철강 공급과잉과 미국 철강업계의 강한 우려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은 철강 산업 탄소집약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차원에서 정리하려는 현재의 대화에 집중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EU와의 철강분쟁 해결직후 기자회견에서 "중국같은 나라의 ‘더러운' 철강이 미국 시장에 접근할 것을 제한하겠다"며 "우리 시장에 덤핑해 노동자들과 산업환경에 피해를 준 나라들에게 맞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여한구 본부장은 타이 대표와의 면담 직후 워싱턴특파원 간담회를 갖고 "철강은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 민감한 품목이고, 미국 철강업체들이 중국철강 유입 등 글로벌 과잉 공급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다고 보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타이 대표는 미국측 입장을 설명한 것"이라고 전했다.
여 본부장은 한미 철강 재협상이 유럽과 일본처럼 공정한 경쟁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한국 철강이 막힘없이 미국에 유입되는 것이 미국에 위치한 한·미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도움된다는 논리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도 철강 재협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여 본부장은 "선거가 있는 해에서는 미국 중서부의 스윙 스테이트(경합주)가 중요한데, 철강산업이 그 쪽에 많이 집중되어 있다"며 "미국이 한국의 우려를 이해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어려움도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고 말했다.
한미 통상장관은 미국의 포괄적 경제협력구상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도 논의했다. 이는 대중국 견제를 위한 경제연대이다. 여 본부장은 "미국 정부가 무역 원활화, 디지털 경제통상, 공급망, 탄소중립, 인프라, 조세 등 6~7개 분야별 프레임워크를 구상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고 가입여부를 놓고 한국 정부 입장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 수급난 설문조사 결과와 관련해서는 "반도체 수급불일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미국 측에서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전했다.
오는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주년을 맞아 협력 강화방안에 대한 의견교환도 이뤄졌다.여 본부장은 "양국 실장급 신통상 협의 채널을 통해 한미 FTA를 기반으로 공급망, 기후변화, 디지털 등 새로운 통상 의제를 계속 협의해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 강계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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