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양자토론' 입장 고수···설연휴 TV토론 좌초되나

[경향신문]

국민의힘 TV토론 협상단장을 맡은 성일종 의원(가운데) 등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선 후보 TV토론 협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선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양자토론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까지 함께하는 설 연휴 4자 TV토론이 사실상 무산됐다. 국민의힘은 27일 민주당을 향해 “31일 국회나 제3의 장소에서 양자토론을 열자”고 제안했다. 법원 제동으로 양자 TV토론이 무산됐지만 방송 초청이 아닌 별도 토론을 하자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양자토론 수용할테니, 4자토론 참석 여부만 밝히라”고 했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궁색한 꼼수” “새가슴”이란 표현을 동원해 윤 후보와 국민의힘을 비판하며 윤 후보 없는 3자 TV토론까지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두 차례 회견을 열고 양자 토론 개최를 거듭 주장했다. 국민의힘 TV토론 협상단장인 성일종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31일 국회 혹은 제3의 장소를 잡아 양자토론을 개최할 것을 민주당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 가처분 취지는 방송사 초청 토론회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으로, 방송 초청이 아닌 양자간 합의에 의한 토론회 개최는 무방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법원이 양자 TV토론을 불허하자 지상파 방송 3사 초청이 아닌 토론을 역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성 의원은 “국민들은 양자토론을 더 보고싶어 하신다”며 “양자토론을 먼저 하고, 4자토론을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를 향해 “4자토론 뒤에 숨지 않기 바란다”며 “무엇이 두렵나. 대장동이 두려운가”라고 말했다. 윤 후보도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성 의원의 양자토론 제안은) 제가 보고받고 승인한 것”이라며 “사법부 판결에 반하지 않게끔 (토론회를) 하자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내 경선에서) 다자토론을 해보니까 상대에 대한 검증과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더라”며 4자토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국민의힘의 입장을 두고 대선 정국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4자토론이 먼저 치러질 경우 양자토론은 영영 무산될 가능성이 높고, 대장동 의혹 등 이 후보를 몰아붙일 기회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의힘 측 설명이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민주당 쪽이 이제 와서 도망가겠다는 것 아니냐. 우리가 거기 따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야권 내 경쟁자인 안 후보를 토론회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확실한 양강 구도를 만드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이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합의되기 어려운 제안을 내놓고, 설 연휴 기간 TV토론 자체를 무산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 중계 없는 양자토론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대한 많은 국민이 볼 수 있어야 한다”며 31일 황금시간대 양자 지상파 TV토론을 주장했던 국민의힘이 이날 지상파 중계 없는 양자토론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양자토론 제안을 두고 “토론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옹졸한 제안”이라고 적었다. 선대본부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도망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 않겠느냐”며 “(TV토론)협상단 판단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양자토론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민주당 방송토론콘텐츠단장인 박주민 의원은 이날 오후 입장문에서 “윤 후보가 31일 양자토론을 원한다니, 이재명 후보는 31일 양자토론을 수용한다”며 “이 후보는 양자토론도 진행하고 4자(TV)토론도 참석할 것이니, 이제 윤 후보가 31일 진행될 4자토론에 참석할 여부만 밝히시면 된다”고 했다. 박 의원은 “윤석열 후보 측이 생떼를 부리고 있다”고 했다. 앞서 박 의원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윤 후보는 법원 판결 무시하지 말고, 4자토론부터 선언해달라”고 했다가 오후 들어 이 같은 입장문을 냈다.

국민의힘은 양자토론과 4자토론을 병행하자는 민주당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협상단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31일 2차례 토론을 하자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된다”며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의 양자토론 제안이 민주당의 토론병행 역공으로 이어지고 여기에 국민의힘이 다시 맞서면서 샅바싸움까지 재연되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4자 TV토론이 사실상 무산된 것은 물론, 설 연휴 TV토론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국민의힘을 맹공했다. 심상정 후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윤석열 후보님, 심상정은 물지 않는다. 해치지 않을 테니 굳이 궁색한 꼼수로 2자토론으로 도망가지 마시고, 4자토론에 나오셔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의힘을 제외하고 3자 토론으로 전환할 것 촉구한다”면서 “방송사에서 제안한 31일 4자 토론에 불참 의사 밝힌 당은 제외하면 된다. 국민들도 벌써부터 상왕처럼 군림하며 토론 가려서 하겠다는 정당의 후보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는) 저와 토론하는 게 무섭나보다”면서 “법원의 결정이 있었는데도 그걸 무시한다는 건 정말 민주주의에서 리더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태규 의원은 이날 국회 회견에서 “국민의힘이 설 전 양자토론을 고집하는 이유를 안다. 설 밥상에서 안철수라는 떡국을 빼겠다는 것”이라며 “도망치거나 꼼수 부리지 말고 링 위로 올라오라. 이런 정신상태, 이런 새가슴으로 무슨 정권교체를 하겠느냐”고 했다. 그는 “법원의 결정 취지를 받아들여 4자토론이 즉각 열려야 한다”며 “국민의힘이 4자토론을 거절하면 선거방송 준칙에 따라 국민의힘 후보를 빼고 3자토론을 진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심진용·김상범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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