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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용진 부회장 '멸공', '필승'…그리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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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다니던 국민학교 외벽에 걸려 있던 문구가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고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고 알았습니다. "공산당이 파고 든다"… 앞에 무슨 구절이 더 있었을 텐데 사진에 남은 문구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반공 포스터 그리기와 글짓기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군에 입대해 자대 배치를 받고 보니 그 공산당이 파고 든다던 땅굴…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찾아낸 제1땅굴이 저희 사단 안에 있었습니다. '멸공의 횃불'을 부르며 군 생활을 했고 일병 휴가 중에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부대로 전화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반공, 멸공 모두 제 세대는 옛 기억과 혼재하는 단어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북한에는 '멸공', 정치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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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해명도 그렇거니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멸공을 외친 것도 북한과 관련된 이런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합니다. '우리 경제에 위험 요소로 작용하는 북한을 지적하면서 비판의 뜻을 담은 단어로 멸공을 선택했다' 뭐 그런 말입니다. 참고로 정 부회장은 1968년생입니다. 비록 본인은 부인했지만 중국도 그 비판 대상 안에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멸공을 거론하면서 굳이 시진핑 주석 사진이 담긴 기사를 게재 했다니 말입니다. 중국에 호기롭게 진출했던 이마트가 끝내 중국 경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철수한 게 이런 게시물을 올리는데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정작 멸공 논란을 제대로 키운 건 정치권이었습니다. SNS를 통해 처음 이 문제가 회자됐을 때만해도 주식시장이 들썩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이 이슈에 올라탔고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경제에 잠재적 위협 요소가 북한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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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공 → OO → 필승…다음은?



결국 정 부회장 본인이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마음 속으로 승복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불똥이 회사로 튀면서 본의 아니게 물의를 빚게 됐지만 북한에 대한 불만까지 접은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요? 굳이 멸공이란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한 뒤에도 'OO'라든가 '필승'이라는 단어를 쓴 걸 보면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군대 경례 구호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게 단결, 필승, 충성, 속칭 '단필충'입니다.

자신의 '멸공' 발언 논란에 대한 사과 글을 올린 지 닷새 만인 지난 18일 정용진 부회장이 SNS에 다시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2020년 저서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의 몇몇 페이지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강해져야 이길 수 있다"는 글도 남겼습니다.

정 부회장은 이 책 가운데 '스스로 난쟁이가 되고자 한 조선의 지배계층',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진짜 이유',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만주족 편에 섰더라면?'이라는 페이지를 따로 찍어 올리고 '필승',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는 내용의 해시태그를 달았습니다. 또 '역사가 당신을 전략적으로 만들고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 강한 당신이 성공을 부르고 강한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멸공과 칭찬…그리고 용기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하지 못하니 책으로 대신한 것 같단 느낌입니다. 멸공 논란 당시 보수층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의 이런 발언을 용기라고 추켜 세우기도 했습니다. 정 부회장이 이런 용기 발언에 동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는 글을 올리며 사과의 뜻을 밝혔던 걸로 볼 때 정치권에 휘둘릴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기왕 역사 이야기도 나왔으니 공자가 제자 자로를 두고 얘기 했던 용기에 대해 인용하는 걸로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논어 공야장篇
子曰: "道不行, 乘桴浮於海, 從我者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공자께서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간다면 나를 따라갈 사람은 아마 유(자로)이리라" 하고 말씀하시자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용기를 좋아함이 나를 능가하건만 재주는 취할 것이 없구나(혹은 뗏목 만들 목재를 구할 데가 없구나.)"


1차적으로는 공자가 자로 개인의 자질과 성격에 대해 지적한 부분입니다만 사려 깊지 못한 용기를 경계하는 것이 후학들에게도 시사하는 바 역시 없지 않아 보입니다. 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정치권과 경제계가 힘을 모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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