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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차기 대선 경쟁

포퓰리즘 프레임에 갇힌 ‘탈모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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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건강보험 적용 두고 갑론을박…중증환자에 우선순위 밀리고 재원 마련 계획도 없어


경향신문

유튜브 ‘재명이네 소극장’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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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실종’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정책 의제가 있다. 바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제시한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이다. 당장 야당에선 “모(毛)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정책의 발단은 탈모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목소리였다. 민주당 ‘다이너마이트’ 청년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2일 새로운 민주당 당사 공간인 ‘블루소다’ 개관식에서 ‘리스너 프로젝트’의 중간 결과물을 공개했다. 지난해 11월부터 17개 광역지역에서 801명을 인터뷰한 결과 청약 가산점 제도 변경, 위기 아동 청소년 쉼터 확대, 청년과 청소년 대상 금융교육 시행,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4가지 키워드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이재명, 뽑는 게 아닌 심는 것”

당시 권지웅 청년선대위원장은 이 후보에게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제안 이야기를 꺼냈다. 이 후보는 “좋네요”라며 “소확행 공약으로 빨리빨리 발표합시다”라고 화답했다. 소확행 공약은 이 후보가 매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발표하는 실생활 밀착형 공약이다. 이후 디시인사이드 탈모갤러리(탈모갤)를 포함한 온라인 공간에서 이슈화가 되면서 이 정책에 불이 붙었다.

이 흐름을 감지한 이 후보는 1월 4일 유튜브에 공개한 동영상에서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노(No),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 앞으로 제대로 심는다 이재명. 나의 머리를 위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탈모 경험을 공개하면서 지원에 나섰다. 선대위 김남국 온라인소통단장은 탈모갤을 찾아 “저도 대학생 때부터 M자 탈모가 심하게 진행돼 프로페시아를 먹었던 경험이 있는 탈모인의 한 사람”이라며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박주민 의원은 탈모갤에 ‘가발 벗은 지 두달 됐다’는 자막이 담긴 자신의 사진을 올리면서 “많이 불러주셔서 인증하고 간다. 여러분, 우리도 행복해집시다”라고 적었다. 김원이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 후보의 제안에 저를 포함한 1000만 탈모인이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며 “저도 더 용맹정진해 반드시 건강보험 적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 후보의 탈모 공약에 반대하고 나섰다. 황규환 국민의힘 중앙선대본부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과유불급이라 했다. 덕분에 ‘한국 대선에 탈모가 최대 관심사’라는 외신보도까지 이어졌다니 참으로 낯부끄럽다”며 “탈모가 이제는 질병으로 인식되는 상황 속에서 국가지원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질러보겠다는 포퓰리즘은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 뿐”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는 ‘복제약 가격 인하’ 제시

최근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역시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문제를 제기하며 ‘탈모 복제약 가격 인하와 탈모 신약 연구개발 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안 후보는 지난 1월 5일 페이스북에 “이 후보께서 표를 찾아다니는 데는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국정을 책임지려는 입장에서 해결방법이 건강보험 적용밖에 없을까”라며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4년에는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갈될 건강보험 재정은 어디서 만드나. 결국 건강보험료의 대폭 인상밖에 더 있겠냐”고 지적했다.

대선후보 간 공방을 거치면서 탈모 공약이 포퓰리즘 프레임에 빠진 것은 크게 두가지 때문이다.

우선 이 후보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라는 큰 로드맵을 제시한 뒤 세부 항목 중 하나로 탈모 정책을 배치하지 않은 것이 포퓰리즘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료와 미용 간 경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 탈모 치료도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중증질환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선다고 할 수 없는 탈모 치료로 논의의 초점을 좁히면 당장 탈모치료제를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기 쉽다.

지난해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희귀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SMA)을 앓고 있는 12개월 아이 어머니의 사연이 올라왔다. 한 번의 투여로 SMA를 치료할 수 있는 ‘졸겐스마’에 건강보험 적용을 해달라는 청원이었다. 졸겐스마 투여 비용은 약 25억원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보다 탈모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기 어려운 대표적 사례다.

■보험료 인상 등 구체적 논의 필요

남재욱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관련해 다양한 이슈가 있는데 큰 그림이 없이 탈모 공약이 툭 튀어나온 상황”이라며 “이상하게 프레임이 짜이는 바람에 우선순위, 재원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반대’로 오인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원 마련의 구체적 계획이 빠져 있다는 점도 포퓰리즘 논란을 자초하는 원인이다. 민주당 선대위는 탈모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연간 770억원가량이 소요된다고 추산한다. 김원이 의원은 1월 5일 ‘청년 탈모 비상대책위원회’ 주최 간담회에서 “탈모치료제 연매출이 1100억원 정도이고, 30%만 환자부담으로 맡기면 재원은 770억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간 7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지출 중 0.1%가량인 770억원 수준이면 건강보험 재정건전성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고 민주당은 주장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소요 재원이 770억원을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모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가격이 내려가 기존보다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재원 추계에 ‘수요 현실화’에 대한 고려는 빠져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사회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재원 조달의 사회적 책임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원은 보험료와 국고 지원 두가지로 마련하는데 보험료 비중이 80% 이상이다. 탈모 공약이 포퓰리즘 논란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보험료 인상 등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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