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강제노역 알리겠다' 약속 아직 안 지켜
'조선인 징용' 사도광산까지 세계유산 추진 논란
사도 광산 갱도 |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군함도뿐만 아니라 사도(佐渡) 광산도 문제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이 강제 노역한 현장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대립하던 2015년 무렵 한 역사 연구자가 기자에게 이렇게 귀띔했다.
군함도를 찾아가서 유람선업체 직원에게 '왜 조선인 강제 노역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느냐'고 가이드 투어 내용에 관해 묻거나, 일본 외무성 혹은 나가사키(長崎)시가 군함도의 역사를 과연 제대로 알릴 것인지 동향을 취재하던 시절이었다.
군함도에 관해 설명 듣는 관광객 |
군함도는 치솟는 불길 같은 이슈였고, 니가타(新潟)현에 있는 사도 광산은 담뱃불 정도의 상황이었다.
일본은 강제 노역을 포함한 전체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릴 수 있었다.
군함도 등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을 세계유산에 올리기로 결정한 2015년 7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토 구니(佐藤地) 당시 유네스코 주재 일본 대사는 일본 정부가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해상에서 본 군함도 |
그는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유산 앞세워 군함도 여행 광고 |
일본이 약속을 지켰을까.
그는 "(조선인은) 일한('일해서 번'의 의미) 돈으로 나가사키에 가서 암시장 같은 곳에서 그것(먹을 것)을 사서 (군함도로) 돌아왔다. (중략)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월급을 줬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개관식 |
여러 연구나 강제 동원 피해자의 증언에서 확인된 것과는 동떨어진 발언이다.
이 남성은 일본 패전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조선인 강제 노역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업유산정보센터 등을 점검하고 작년 7월 31일 자로 내놓은 결정문에서 일본의 '먹튀'를 꼬집었다.
일본의 약속 불이행 지적한 유네스코 |
세계유산위원회는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그들의 의지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는 것과 일본 정부의 징발 정책에 관해 이해하도록 하는 조치" 등 약속을 이행할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조선인이 대거 동원돼 강제 노역한 사도 광산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항의 |
일본 문화심의회 세계문화유산부회는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에 추천할 일본의 후보로 선정한다고 지난달 28일 결론을 내렸다.
문화청이 "문화심의회 세계문화유산부회에 의한 세계문화유산 국내 추천 후보 선정은 추천 결정이 아니며, 이를 받아서 앞으로 정부 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를 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으나 그간의 관행을 보면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 추천을 보류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미지급 조선인 임금 공탁 기록 |
만약 일본이 사도 광산을 역사의 교훈을 직시하는 재료로 삼는다면 세계유산 등재 추진이 유네스코가 중시하는 '뛰어난 보편적 가치'의 구현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발표한 무라야마(村山)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 매우 큰 손해와 고통을 줬다. (중략)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사도 광산이 일제가 식민지 민중의 고혈을 짜낸 현장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소개하면 일본 정부가 계승한다고 누차 밝힌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재확인하는 유산이 될 수 있다.
세계유산된 강제 노역 현장의 크레인 |
하지만 일본은 역사적 과오를 마주하기보다는 이를 감추려는 조짐이 보인다.
니가타현과 사도시가 문화청에 제출한 사도 광산 추천서에서는 대상 기간이 에도시대(1603∼1867년)까지로 한정돼 일제 강점기가 제외됐다.
만약 일본 정부가 강제 동원의 역사를 배제한 상태로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천하면 유네스코는 반쪽짜리 유적을 또 세계유산으로 인정할지, 혹은 헌장에서 중요성을 확인한 인간의 존엄이나 객관적 진리 등의 가치를 옹호할지 선택의 갈림길에 설 전망이다.
파리 유네스코 본부 |
이미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는 유네스코가 일본을 다시 신뢰할지가 궁금해진다.
일본이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유네스코 분담금을 많이 낸다(2020년 기준, 일본 외무성 발표)는 점에 신경이 쓰이기는 하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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