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글판’은 교보생명이 30여 년 이어온 공익 옥외광고입니다. BTS가 이 광화문글판의 100번째 주자로 참여했죠. BTS 덕에 이 글판은 전 세계적으로 1,800만 명 넘는 사람들에게 노출됐습니다. 광화문이라는 한정된 물리적 공간을 넘어 무한한 온라인(트위터) 공간으로 메시지가 확장된 겁니다. 광화문글판 글귀는 어떻게 기획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되는지, 그 뒷이야기를 교보생명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담당자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 이 기사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폴인 PICK 요즘 이 브랜드”의 16화 중 일부입니다
광화문글판은 1년에 네 번씩 계절 변화에 맞춰 문안을 바꿉니다. 이때 '광화문글판 문안 선정위원회'라는 곳에서 회의를 통해 글귀를 선정하는데요. 보통 순수문학 범주에 있는 30자 내외의 시적 언어를 선정합니다.
도심 생활에 지친 현대인이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는 소통 매체가 된다는 게 글판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주로 시의 일부가 소개됐죠. 가장 잘 알려진 글귀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일 겁니다. 2011년 여름에 소개된 아래의 글귀였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에 걸린 광화문글판. ⓒ교보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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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하는 1명'을 만들기 위해 한 노력
광화문글판의 입지는 이미 확고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100번째 글귀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죠. 시기는 코로나 19로 사람들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2021년 9월이었습니다. 지나치는 글귀에서 위로를 얻는 것을 넘어서는 제안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기 시작했어요. 목표는 이랬습니다.
대충 아는 1000명이 아닌, 열광하는 단 1명을 만드는 것. 그러려면 광화문글판을 기존의 공익적 관점이 아닌 브랜드마케터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했습니다. 가능하다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더 많은 분이 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만든 기획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문학적 소재가 디지털과 결합해 사람들이 '경험'하는 과정을 만들겠다는 것. 그리고 이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콘텐츠'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
먼저 BTS와의 협업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긴 어렵지만, 광화문글판과 BTS가 가진 공통의 정체성인 '선한 영향력'이라는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숨 쉴 틈 없던 글로벌 아티스트의 일정까지도 운이 좋게 맞았죠. 그렇게 협업이 급물살을 탔고, 100호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BTS는 프로젝트 취지에 맞게 'NO 개런티'로 참여했습니다. 지금도 이 부분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있습니다.
100번째 광화문글판과 관련해 인터뷰하는 BTS의 모습. ⓒ교보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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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내부 설득이었습니다. '감동과 희망을 전한다'는 글판의 존재 이유는 해치지 않는다는 걸 강조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BTS가 만든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메시지가 글판의 본 목적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설득했습니다.
그 다음은 방식이었습니다. 광화문글판은 가로 20m, 세로 8m라는 물리적 크기를 30년간 유지했어요. 오프라인을 넘어 디지털로 접근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글판 자체에도 미디어아트와 증강현실(AR)을 입혔습니다. 광화문글판 웹사이트도 별도로 확보해 온라인에서 바이럴 될 접점을 확보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2021년 9~11월 3개월간 특별한 추가 프로모션 없이, 공익 목적의 기업 웹사이트임에도 순 방문자 수가 12만명이었습니다. 기업 마케터의 성과 측정 기준 중 하나인 언론 보도 역시 200여건 정도였어요. 취재 요청도 많이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놀란 건 트위터에서의 반응이었습니다. BTS 팬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BTS 측과 저희 측 공식 계정 집계만으로 전 세계에서 약 1800만명이 광화문글판을 봤더군요. 기존의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숫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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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브랜드에 변화를 이끈 3가지 비결
교보생명 광화문 사옥 외벽에 걸린 100번째 글판(사진 위쪽)과 같은 내용이 강남 사옥에 걸린 모습(아래쪽). ⓒ교보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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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존의 브랜드 자산을 살펴봤는가?
건축설계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이 새롭게 설계해 짓기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려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겠죠.
동료 브랜드 마케터들과 소통하다 보면, 대부분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건 쉬워 보여도 이게 고객에게 닿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죠. 게다가 실패하는 경우 이는 회수할 수 없는 '매몰 비용'이 됩니다.
반대로 이미 오랜 세월 고객과 함께한 기업이라면, 이들에겐 기존의 자산이 있습니다. 이걸 다시 가공하는 일은 어렵지만 이를 잘 살린다면, 더 매력적인 어필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광화문글판은 제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100번째 광화문글판을 준비하면서 저는 소비자 조사도 다시 했는데요. 어렴풋이 예상한 고객 반응에 확신을 얻는 계기였습니다. 고객들은 글판을 긍정적으로 떠올리고 있었고, 그 생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일의 리소스를 분배해야 하는 저로서는 이렇게 확실한 자산을 더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죠. 글판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일에 의미를 크게 부여했습니다.
2. 브랜드가 시대적 코드를 담고 있는가?
소비자가 공감할 코드를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시대 상황을 늘 살펴봤죠. 브랜드의 성패는 소비자의 공감과 호응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글판의 경우 '팬데믹으로 인한 정서적인 고립'이 키워드였습니다. 뉴스에서는 이미 많이 다뤄진 이야기였고요. 또 글판 관련 콘텐트로 확장하면, 문학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경험이 디지털 기술과 접목되는 경우가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AI 기술로 고인이 된 가수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온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랬죠.
그런 점에서 기존 기업들의 문화 콘텐트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활발히 진행된 대기업 타이틀의 클래식 공연이 아닌, MZ라고 불리는 세대에게 맞는 코드가 필요했죠.
광화문글판의 경우 이미 아날로그적 감성은 충분히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디지털의 접목과 팬덤 형성이었죠. 100번째 글판에 그 방식을 녹여냈습니다.
광화문글판에 미디어이티스트가 증강현실 작업을 하는 메이킹 영상의 한 장면. ⓒ교보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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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정성 있게, 대신 자극적인 방식으로 브랜드에 접근하는가?
본질을 지키면 과감히 변화해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같은 영화라도 극장에서 보는 것과 침대에 누워 OTT로 보는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고 봅니다. 본질(영화)은 같지만, 형식과 시스템의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겁니다. 극장에서 보면 영화가 '장르'로 다가오지만, 집에서 누워 보면 '콘텐트'로 읽히는 것처럼요.
요즘처럼 브랜드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이처럼 변화의 폭을 넓게 잡아야 합니다. 생각보다 소비자는 많은 브랜드를 접하고, 마케터가 기획한 하나의 브랜드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브랜드 마케터는 '단 한 번'의 노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본질은 지키되 소비자가 그 변화를 인식하도록 과감히 변해야 하죠.
광화문글판도 '30자 내외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라는 본질은 지키되, 디자인 면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을 역임한 이대형 아트디렉터와 서동주·이예승 미디어 아티스트 등 전문가와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100번째 글판 디자인이 기존의 수수한 느낌과 달리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이유입니다. 글귀뿐 아니라,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시각적인 큰 변화를 준 거죠.
또 앞서 소개한 디지털 기술뿐 아니라 누구나 광화문글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글판 문안을 주제로 동영상 메시지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도 개발했습니다.
광화문글판 웹사이트를 통해 동영상 메시지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오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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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준비할 글판 역시 이런 기조를 유지하려 합니다. 정체성은 지키고, 대신 사람들에게 새롭게 보일 수 있는 형식 변화를 진행할 계획이죠. 그 과정에서 소비자 피드백도 꾸준히 받으며 피벗(pivot)도 지속할 계획입니다. (후략)
※ 이 기사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폴인 PICK 요즘 이 브랜드”의 16화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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