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아동학대 사건 분리·보호 대책 '역부족'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한유주 기자 = '정인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아동학대에 대한 형사사법체계의 변화를 불렀다. 한해 3만건에 이르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늦게나마 수사와 재판 절차, 양형 등이 강화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정작 학대피해아동들이 안전하게 머물 곳은 많지 않다. 분리 보호 이후를 고민하는 사회적 담론도 아직 빈곤하다.
2019년 9월 인천 미추홀구에서 계부가 첫째 아들인 5세 남아를 목검으로 100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은 분리와 보호에 대한 처참하고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가해자인 계부는 과거 자신의 학대로 2년 넘게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던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지 10여일째부터 학대했고 한달만에 사망하게 했다.
참혹한 모습의 만 9세의 여아가 집을 탈출해 발견되면서 드러난 '창녕 아동학대 중상해 사건'은 지자체가 피해 아동이 과거 위탁가정에 머물렀던 이력을 알고 있었음에도 계속된 아동학대를 막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다. 집을 탈출한 아이는 자신을 과거에 2년간 지내던 위탁가정으로 보내달라 호소했다.
이처럼 사건 당시 분리 조치가 제때 이뤄지더라도 보호시설에서 필요한 조치를 받고, 이후에도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느냐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에 76곳이다. 쉼터는 학대행위자로부터 피해아동을 분리하여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으로 피해아동에게 숙식뿐 아니라 생활지원과 상담 및 치료,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2020년 전국 76개 쉼터에서 총 1026명의 아동을 보호했다. 2020년 입소한 아동은 652명, 거주 기간은 1개월 미만이 33.3%로 가장 많았다.
학대피해아동들이 머물 쉼터 등 보호시설과 위탁가정이 부족한 현실은 끔찍한 집을 벗어나야 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쉼터가 부족하다 보니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유아를 빈 자리가 겨우 난 청소년 쉼터로 보내거나, 학대피해아동을 돌볼 전문 인력이 없는 일반 보육시설로 보낸다. 거주지와 거리가 먼 타 지역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학대피해아동 쉼터는 단기·중장기로 나뉘는데 오래 머무른다 해도 2년여다. 지자체의 사례판정위원회에서 해당 아동이 원가정으로 복귀해도 되는지 전문가 판단을 구한다. 쉼터에서 2년을 지냈는데도 원가정에 복귀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보육시설로 보낸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인 부모가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나 관계자에게 내 자식을 왜 못만나게 하느냐 욕설에 행패를 부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피해아동이 열악한 보육시설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또 이탈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분리가 필요한 아이들의 상당수가 쉼터를 이용하지 못하고 일반 양육시설로 갔다"며 "일반 양육시설은 학대피해아동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보니 이들을 돌보는 전문성이나 특수성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아이들도 전문쉼터보다는 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고 매니저는 "쉼터와 전문기관을 확충하고 피해아동들의 심리치료 예산도 충분히 늘어나야 한다"며 "전문위탁가정을 늘릴 수 있는 홍보와 지원 등의 정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했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2019년부터 대구·부산·전북·충북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전문 위탁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피해아동의 '분리'는 안전을 위한 최우선 조치다. 그러나 유일한 보호자였던 부모와 '분리'되는 경험은 피해아동에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학대를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낯선 시설에서 겪는 불안과 적응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학대 가해자의 79%가 친부모였다. 피해아동들은 학대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보호자가 사라졌다는 불안도 함께 겪는다. 부모의 처벌 과정에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집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혼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학대피해아동쉼터를 나온 아이들은 어디로 가게될까.
쉼터 퇴소 아동의 거주지는 타 시설 입소가 275명(52.3%)로 가장 많았다. 원가정 복귀는 204명(38.8%) 가정위탁 12명(2.3%), 친족 보호 8명(1.5%) 순으로 나타났다.
원가정 복귀를 하더라도 철저한 사후 관리가 담보돼야 한다. 원가정 복귀 후 재학대를 막으려면 지자체에서 이들을 의무 관리하고 지속적 상담과 교육, 치료 등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재범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 가해자를 등록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차원의 논의가 적은 편"이라며 "원가정 복귀의 경우 재범 가능성이 높은 가정에는 보내지 않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원가정 복귀를 시키더라도 사후에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671건의 재학대가 발생했는데 분리조치를 하지 않은 피해아동에 대한 재학대가 2506건으로 68.3%를 차지했다.
'입양의 날'을 맞은 11일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를 찾은 어머니와 딸이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하다가 지난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양을 추모하고 있다.2021.5.1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수사와 기소, 형사처벌로 이뤄지는 형사사법체계 그 너머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기계적 분리나 보호가 아닌 아동학대사건 대응체계 전반의 문제로 확장해야 한다는 과제도 고민할 지점이다.
피해아동 분리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는 만큼 분리 일변도 대책이 아닌, 가해자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재학대를 막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대응은 크게 '신고-출동·조사-조치-사례관리'로 나눌 수 있다. 신고, 조사, 사례관리는 아동복지 체계로,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돼 지자체와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이 담당한다. 법무부는 형사사법 체계를 총괄하며 아동학대 신고·조사 후 입건되는 경우 응급조치, 임시조치, 보호처분, 형사처벌 등 가해자와 피해아동 보호에 적정한 처분이 이뤄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법무부는 지역사회의 아동학대 대응인력이 거버넌스를 구축해 서로 정보를 원활하게 교환하고 협업하는 시스템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동학대 행위자의 재범 방지 역할을 하는 보호관찰관과 피해아동의 사례관리를 담당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도록 해 유기적 협력과 정보 공유 기반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동학대 대응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아동학대 전담검사와 전담공무원,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피해아동 수탁기관 종사자 등 총 468명을 대상으로 전문교육을 수료하게 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업무협력도 추진 중이다.
안성희 법무부 아동인권보호특별추진단 팀장(부장검사)은 "단지 처벌만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 어떤 부분이 달라졌으면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중대아동학대 사건의 대응과정을 면밀히 살펴 대응체계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외부 전문위원의 의견 수렴과 관련 부처 협의를 거쳐 곧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eeit@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