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후위기, 인플레이션, 분쟁 등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새해 지구촌에서 한 가지 확실한 상수가 있다. 2022년에도 장기 패권경쟁에 돌입한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가 국제 안보·통상 지형을 좌우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중 갈등을 피부로 느끼는 두 나라, 한국과 호주는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최대 경제 파트너라는 점은 같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주도하는 대중국 압박 행보에서는 궤를 달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52)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미·중 경쟁 심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긴장, 규칙과 규범의 훼손 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호주는 환경을 받아들이는 대신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한국과 같은 유사입장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레이퍼 대사는 중국 견제가 핵심으로 여겨지는 오커스(Aukus)·쿼드(Quad) 참여에 대해선 “호주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파트너들과 협력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며 “특히 오커스는 호주 자체 국방 역량 강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미·영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골자인 오커스가 역내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지적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6·25 참전용사의 외손녀이자 첫 여성 주한 대사로 한국에 온 지 1년이 된 그를 지난 5일 광화문 주한 호주 대사관에서 만났다. 레이퍼 대사는 “한국과 호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법치, 인권, 시장경제, 열린사회 등의 가치를 공유한다”며 “지난해말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내실있게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주한호주대사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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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부임 첫 해가 마침 수교 60주년이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7월 호주 통상장관 방한, 9월 외교·국방장관(2+2) 회의 개최를 이뤄냈다. 100여개 행사를 치르면서 굳건한 양국 협력관계도 확인했다. 특히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호주 방문이 방점을 찍었다. 한국 정상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호주를 찾은 첫번째 외국 정상이라는 사실은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두 정상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하고, 안보, 경제·기술, 문화·인적 교류 등 세 개 축에서 내실있는 진전을 이뤄나가기로 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가 폭과 깊이 면에서 모두에 이익이 되고 있고, 역내에서 긍정적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할 역량이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한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통해 기대하는 바는.
“호주는 핵심 광물 매장량이 매우 풍부하고, 한국은 제조 분야 선도국으로 특히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경쟁력이 있다. 두 나라간 공급망 차원에서 강력한 상호 보완성이 존재한다.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저탄소 경제 전환도 추구한다. 호주는 수소 분야에도 강점이 있다. 신뢰할 만한 파트너인 양국의 협력은 안정적인 공급망 제공은 물론, 저탄소 경제로 나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과 호주는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나란히 초대됐다. 레이퍼 대사는 민주주의·법치·인권 등을 존중하는 ‘유사입장국’인 양국의 협력을 바탕으로 “열려있고 포용적이며 회복력있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구축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인도태평양을 가로막는 외부의 요인이 있나.
“인·태 지역의 전략적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 성장의 결과로 힘의 재분배가 일어나고, 규칙·규범은 갈수록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심화되고 있다. (미·중) 전략적 경쟁 심화는 이제 역내에서 부인할 수 없는 요소다. 유사입장국인 한국과 호주가 협력을 강화하며 역내에서 긍정적 의제를 추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까닭이다.”
-북한 외에 대만, 남중국해 등 역내 안보 이슈도 우려를 더한다.
“남중국해와 관련해선 유엔해양법협약 등 국제법과 항행의 자유, 방해받지 않은 무역을 지지한다. 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매우 중시하고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장려한다. 규칙과 제도에 기반한 지역내 평화로운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무력 충돌 등) 가상의 시나리오를 방지하고자 한다.”
호주는 바이든 정부 들어 정상회의체로 격상된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 그리고 지난해 9월 결성된 미·영·호 안보동맹 오커스의 주축이다. 미국이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 문제를 이유로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자마자 호주도 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압박 움직임에 호주도 앞장서서 동참하는 것으로 비친다. 레이퍼 대사는 이에 대해 “호주는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는 나라들과 다양한 그룹에서 활동해왔다”며 “원하는 역내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 호주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결정이 중국 인권 문제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나
“호주는 중국과 다양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데 열려있지만 중국이 우리의 대화 제안을 거절하는 상황이다. 대화를 위해서는 서로의 이익과 주권적 결정을 존중하고, 상호호혜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쿼드, 오커스 등 바이든 정부가 주도하는 인·태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다.
“호주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역내 파트너들과 협력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오커스 결성이나 쿼드 내의 활동은 기존 파이브아이즈 네트워크, 아세안(ASEAN), 태평양 연안국, 유럽연합(EU) 등과 진행해온 협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오커스는 전략적 안보 파트너십이고, 쿼드는 비공식 네트워크이므로 둘의 성격은 다르다. 특히 오커스는 호주의 자체적인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당장은 미·영과의 협력으로 호주가 핵추진잠수함 기술에 접근하도록 한 것이 가장 눈에 띌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해저기술 등의 분야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 이전이 동북아지역 군비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지역 내 다른 나라들이 군사 부문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호주도 이런 환경에서 필요한 역량을 갖추려고 할 뿐이다.”
-미·중 갈등 격화로 한국은 경제, 기술, 안보 분야에서 선택의 압박에 놓이고 있다.
“(경제, 기술, 안보가) 모두 연관된 이슈이고, 미중 전략 경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내 규범과 제도의 존중은 역내 안보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인·태 지역에는 다른 나라들도 많다. 강대국의 경쟁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호주나 한국처럼 주체성과 영향력을 갖춘 나라들도 있다. 호주는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복잡한 전략적 환경을 그냥 받아들이기보다는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때론 우리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할 때도 있다.”
오는 11일이면 호주 첫 여성 주한 대사로 부임한 지 꼭 1년이 되는 그는 “여성 대사 배출까지 60년이나 걸렸지만, 동시에 수교 60주년을 맞아 첫 여성 대사로 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직업외교관인 그가 한국을 포함해 대만, 워싱턴, 제네바 등 5차례 해외 근무를 하는 동안 “두 자녀(17, 19세)의 양육과 교육에 있어서 동등한 파트너”였던 남편도 매번 동행했다. 그는 “호주도 성평등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여성의 사회경제적 참여를 유의미한 수준으로는 끌어올렸다”며 “호주의 경험을 한국과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주한호주대사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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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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