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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육군 22사단이 경계 실패의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22사단은 작년 2월 헤엄 귀순, 재작년 11월 14시간 30분 만의 귀순자 검거, 2014년 6월 총기 난사사건, 2012년 10월 노크 귀순 등을 겪은 부대이다 보니 그제 월북 사건으로 "또 뚫렸다"는 탄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22사단의 책임 구역은 지형이 험하고 복잡하기로 유명합니다. 2014년 총기 난사의 주범 임 모 병장이 월북할 의도였지만 정작 남쪽으로 길을 잡은 데서 알 수 있듯, 말년 병장도 헷갈리는 심산유곡입니다. 육상 30km, 해안 70km에 달하는 22사단의 경계 범위는 김포의 해병대 2사단에 비할 바 아니지만 육군에서는 가장 광활합니다. 사단이 아니라 군단 전체를 쏟아부어도 한두 명의 월북, 귀순은 가끔씩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통합니다. 월북, 귀순하는 사람들이 22사단을 탈출 루트로 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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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샐 틈 없는 철통같은 경계"라는 군의 오랜 구호는 22사단이 아니더라도 실현 불가능한 군의 자승자박입니다. 완벽한 경계의 이상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는 병력 감소로 더욱 비현실적 허상이 되고 있습니다. 휴전선 경계의 목적은 북한군 공격에 대한 1차 방어이지, 월북과 귀순의 차단이 아닙니다. 휴전선 경계의 목적과 기대 수준, 전술을 현실적으로 조율하지 않으면 경계 실패 소동은 앞으로도 빈발할 테고, 사회적 논란의 비용은 그만큼 커질 것입니다.
휴전선 155마일 경계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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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허리를 동서로 가르는 휴전선은 155마일, 즉 250km입니다. 육군 10개 사단이 맡습니다. 과거에는 소총 쥐고 맨눈으로 응시하며 지켰습니다. 하지만 죽을 각오로 계곡과 산을 타는 월북자, 귀순자 한두 명을 속속 잡아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100만 대군을 휴전선 따라 일렬로 세운들 맨눈의 완전 작전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요즘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에 크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상 접촉을 감지하는 철조망인 광망과 가시 돋친 몇 겹의 철책, CCTV, 열상감시장비 등이 이중삼중으로 휴전선을 경계합니다. 특이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각 소초 상황실마다 설치된 수 개의 모니터에 경고음과 경고 신호가 나오고, 장병들은 상황에 맞는 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그런데 최신의 과학화 시스템이 월북자, 귀순자의 다양한 행동거지를 감안해 설계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산짐승의 움직임, 거센 바람에도 반응합니다. 22사단의 경우 재작년 기준 감시카메라 1대당 1년에 6만 번의 경보를 울린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어떤 감시카메라는 1년 동안 21만 번이나 울렸습니다. 다른 사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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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화 시스템의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오경보는 여전히 많습니다. 거동수상자만 딱 잡아내면 좋은데 현대 과학기술의 수준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경보가 수시로 울리는 가운데 장병들은 매의 눈으로 상황실 모니터 속 거동수상자를 분간하는 실정입니다. 또 병력 감축으로 장병들의 경계 업무 부담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항시적 완전 작전이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다중 경계 시스템이라 그제 사건도 광망과 CCTV는 잡고도 놓쳤지만, 열상감시장비는 제대로 탐지했고 장병들이 늦게나마 대처했습니다.
휴전선 155마일 경계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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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마일, 250km 휴전선의 물 샐 틈 없는 완벽한 경계는 불가능할뿐더러, 사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휴전선 경계의 목적은 월남자, 귀순자 단속이 아닙니다. 국지도발, 전면전의 차단과 지연입니다. 잘 보고 있다가 북한군의 유의미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에 상응해 군사적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155마일 휴전선의 경계는 달리 말하면 북한군의 공격에 대한 조기경보와 신속 대응의 1차 방어입니다.
그런데 북한군이 우리 GOP의 위치와 화력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휴전선 전방 부대의 1차 방어 기능이 상당 수준 훼손됐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휴전선의 선형(linear) 방어 태세를 점차 기동 방어 태세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방 상황에 정통한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전방 병력을 조금 뒤로 빼는 대신, 화력과 기동력을 증강시켜 적이 침투하면 신속하고 압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기동 방어의 개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청년 인구 절벽에 따른 병력 감소에 맞춰 단 한 명도 휴전선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강박증은 점점 설득력을 잃을 것입니다. 병력 감소는 동시에 휴전선 경계 전술의 재정립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선형 방어가 좋은지, 일보 후퇴해 주먹 쥐고 뛰쳐나갈 준비하는 기동 방어가 효과적인지, 또는 제 3의 전술이 있는지 깊이 토론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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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한 목소리로 이번 22사단 사건을 경계 실패라고 질타했습니다. 대선이 코 앞이니 안보 이슈로 표를 잃을까봐 여야가 따로 없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며 군 지휘부의 문책도 요구할 것입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경구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발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육군의 한 장교가 일전에 미국의 맥아더 기념관에 이메일을 보내 맥아더 장군이 언제 어떤 맥락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맥아더 기념관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맥아더 장군이 그런 발언을 한 기록은 없다"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근거 없는 경구입니다.
"물 샐 틈 없는 철통 경계"라는 자승자박의 신화는 하루 속히 폐기해야 합니다. 한 고위 장성은 "일단 월북을 허용했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번 사건이 대단한 경계 실패도 아니다", "경계의 현실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싶은데, 군이 제 입으로 철통 경계를 노래했던 탓에 그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몇 방울 새는 물이 아니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느냐가 휴전선 경계의 요체입니다. 155마일 휴전선 경계의 완벽을 추구하되, 휴전선 경계의 목적과 전술을 바로 세워 다 같이 공유하고 연마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여집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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