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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박정희 독재 불만, 난 근본적으로 달라"…1982년 미국 인터뷰 [대통령의 연설]

매일경제 문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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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박정희 독재 불만, 난 근본적으로 달라"…1982년 미국 인터뷰 [대통령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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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이 기억하는 현대건설은?'…<대통령의 연설>은 연설문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머릿속을 엿보는 연재기획입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남아있는 약 7600개 연설문을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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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연설] 대선국면이 가열되면서 문재인정부를 향한 유력 주자들의 발언도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인데요. 그는 문재인정부를 "정말 가지가지 다 하는, 무능과 불법을 동시에 하는 정말 엉터리 정권"이라 규정했습니다. 이어서 "전문가들이 들어오면 자기들이 해먹는 데 지장이 있으니,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정치를 해서 나라 경제와 외교·안보를 전부 망쳐놨다"고 했죠.

이 발언을 놓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꽤나 격양된 분위기입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그렇게 '무식한 삼류 바보들'이라고 하면 자기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지 않나"라 반박했습니다. 한직을 떠돌던 윤 후보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검찰총장으로 파격 발탁한 것이 현 정부이기 때문이죠. 송 대표는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정부의 어두운 유산"이라 덧붙였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최근 부동산·노동 이슈에서 현 정권과 차별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정책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과까지 했던 사안이니 신구세력 간 대결로까지 번지지는 않는 정도였는데요. 요즘 들어서는 현 정권이 부동산 정책에서 양보할 수 없는 분야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완화하겠다고 나서 당내 친문 의원들로부터 거센 반발이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이 후보가 시행시점을 당선 후로 미루겠다며 한발 물러서고, 청와대도 차기 정부에서의 일은 관여하지 않겠다며 어느 정도 타협이 이뤄지는 모양새입니다.

대선후보들이 현임 대통령과의 차이를 부각하며 선거운동을 펼치는 것은 역사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익숙한 일입니다. 다만 직선제 이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는 전·현직 대통령의 관계가 지금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었는데요. 전임 대통령을 언급한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정희, 이승만 서거에 "두 손 모아 명복 빌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5년 7월 27일 '우남 이승만 박사 서거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역사를 헤치고 나타나, 자기 몸소 역사를 짓고 또 역사 위에 숱한 교훈을 남기고 가신 조국근대의 상징적 존재"라고 평가했는데요.

또 "대한제국의 국운이 기울어가는 것을 보고 용감히 뛰쳐나가서 조국의 개화와 반제국주의투쟁을 감행하던 날, 몸을 철쇄로 묶고 발길을 형극으로 가로막던 것은 오히려 선구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특전이었던 것"이라 평했습니다.

조사를 마무리하며 박 전 대통령은 "생전에 손수 창군하시고 또 그들로써 공산 침략을 격파하여 세계에 이름을 날렸던 바로 그 국군장병들의 영령과 함께 길이 이 나라의 호국신이 되셔서 민족의 다난한 앞길을 열어주시는 힘이 되실 것을 믿고 삼가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동시에 유가족 위에도 신의 가호가 같이하시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전두환 "박정희 장기집권 불만…아무런 정치적 인연 없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집권 초인 1982년 미국의 자본시장 매체인 Institutional Investor와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문답을 꽤나 길게 주고받은 일이 있습니다.

첫 질문은 '박정희 대통령은 각하의 후원자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각하와 그분과의 관계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였는데요.


이에 전 전 대통령은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한 명의 군인이었으므로 그분과 아무런 정치적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그분이 나를 신임했다면 군통수권자 입장에서 군인인 나를 신임했을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그 이유는 내가 지휘하던 부대가 다행히도 북한의 남침용 땅굴을 발견하는 등 국가안보 면에서 공헌이 있었던 것을 고 박 대통령이 인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자신의 통치방식을 비교해달라는 질문도 있었는데요. 전 전 대통령은 "당시 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 박 대통령의 공적을 인정하면서도 한편 장기집권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또 "이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있는 제5공화국의 통치방식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이후 펼쳐진 역사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문답이네요. 전 전 대통령은 "나의 모든 통치방식에 대해서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평가하게 될 것"이라 덧붙였습니다.

1981년에는 이집트 알·아람지와의 회견에서 "사다트 대통령이 작년 고 박정희 대통령의 불의의 서거 시 표시해준 특별한 조의 표시에 다시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고 언급합니다.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전 전두환 前대통령과 담화 및 취임식장 출발(1988)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전 전두환 前대통령과 담화 및 취임식장 출발(1988)


◆친구 비호하다 끝내 유배보낸 노태우 "전두환 5공화국 증언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봐"

전임 대통령을 언급한 연설이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노태우 전 대통령입니다. 임기 극초반에는 아직까지도 '상왕'으로 군림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등장하고, 임기 중반으로 흘러갈수록 전 전 대통령을 어떻게 처벌할지에 대한 사회적 격론이 다뤄졌습니다.

1988년 2월의 취임사까지만 해도 전 전 대통령을 '평화적 정부이양의 역사적 선례를 세우신' 전임 대통령이라 언급하며 여유가 느껴졌는데요.

두 달 후 첫 기자회견부터 전 전 대통령을 어떻게 처분할지로 사회가 극심한 논란에 빠진 게 여실히 드러납니다. 기자들이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와 그의 독재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할지 날카로운 질문을 이어갔는데요.

노 전 대통령은 이때까지만 해도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5공화국이 민주발전을 위해서, 또 경제성장을 위해서 잘한 것은 소중하게 받아들이겠다"며 "전면적인 부정은 무리다. 국민들의 합의는 안정 위에서 개혁을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5공화국과 연계성을 강조했습니다.

1988년 순방길에서 호주 ABC TV와 회견을 할 때도 "전두환 씨에 대한 비난은 감정적인 면이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민주화로 가는 길에 정치보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고 했죠.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을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며 결국 그를 백담사에 유배 보내기에 이르는데요. 유배 후 1년여가 흐른 시점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힙니다. 전 전 대통령이 5공 당시 잘못에 대해 국회에 서서 증언하게 된 후에는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봤다. 여기까지 이른 데 있어 대통령으로서 저 자신의 고통도 참으로 컸다"며 "국정의 모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 제가 이제 모든 것을 떠맡고 누가 무어라고 해도 지난 시대의 시비는 여기서 분명히 종결짓겠다. 광주관계 보상, 지방자치의 실시 등 그 밖의 여야 합의사항은 정부와 여야가 협조하여 차질 없이 실천할 것"이라 말합니다.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그분도 항상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서로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갖게 되면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며 화해 의지를 밝혔습니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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