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72회를 맞는 일본 NHK 연말 가요 프로그램 '홍백가합전' 포스터. [사진 NH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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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시작해 무려 70여년간 이어진 홍백전은 일본인들의 연말 대형 이벤트죠.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11월부터 홍백전 사회자와 출연진 발표→방청객 모집·추첨→곡명 공개→심사위원단 발표 등 관련 뉴스로 떠들썩했습니다. 전통가요 엔카(演歌) 가수에서 아이돌 그룹까지 한 해 사랑받은 가수들이 한 데 모이는 자리, 홍백전 출연은 일본 음악인들에게 스타가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꿈의 무대'였습니다.
하지만 옛날이야기입니다. 세밑이 한 주 앞인데도 일본에서 '자, 올해의 홍백전은?' 하는 기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시청률은 30%대까지 떨어진 지 오래죠. 30%도 어마어마한 시청률입니다만, "어르신들이 습관처럼 틀어놓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맞을 겁니다.
홍백전을 현장에서 보는 '직관'은 일본인들에게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꼽히곤 했는데요. 보통 1000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120만 건까지 몰렸던 신청이 올해는 12만건으로, 10분의 1로 확 줄었습니다. 엽서 신청을 없애고 100% 온라인으로 바꾼 영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관심이 급락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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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백전은 왜 '오와콘'이 되었나
홍백전은 '변하지 않는 일본'의 상징이 아닐까 합니다. 가수들을 여성은 '홍(紅)조', 남성은 '백(白)조'로 구분해 대결을 펼치는 구성에서 진행자들의 고전적인 의상과 틀에 박힌 멘트, 화려하지만 기묘하게 촌스런 무대 장치까지 '전통'을 이어갑니다. 한국인에겐 "오랫동안 사귀었던~"으로 기억된 '올드랭사인(일본 제목 '반딧불이의 빛')'을 다 같이 부르는 것으로 끝이 나죠.
학을 타고 '홍백가합전' 무대에 등장한 일본 엔카 가수 고바야시 사치코. [사진 NHK방송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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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와 아마존프라임 등 새로운 플랫폼과 콘텐트가 넘쳐나는 시대, '전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습니다. 일본 매체 닛칸겐다이는 지난달 'NHK 홍백가합전의 '오와콘'(끝난 콘텐트)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홍백전의 인기가 급락한 이유를 분석했는데요. '오와콘'이란 '오와리(終わり·끝)'와 '콘텐트'의 합성어로, 인기 수명이 다해 사라져야 할 연예인이나 프로그램 등을 칭하는 말입니다.
닛칸겐다이는 NHK 대하드라마 주인공이 사회를 맡는 등 방송사의 이해나 대형기획사의 입김에 휘둘려 결정되는 출연진, '젠더 프리(Gender-Free)' 시대에 맞지 않는 진행 방식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올해는 이런 지적을 일부 수용해 '홍조 사회' '백조 사회'로 나누던 남녀 사회자를 그냥 '사회자'로 통합한다고 발표했지만, 소심한 변화에 임팩트는 크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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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수 출연, 한일관계 따라 들쑥날쑥
한때 홍백전은 일본 내 한류 열풍의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2002~2007년엔 한국 가수 보아가 6년 연속 무대에 올랐고, 동방신기도 2008~2009년 출전했죠. 2차 한류 붐이 일던 2011년엔 동방신기·카라·소녀시대 등 3팀의 동시 출연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2017년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트와이스 [사진 NHK 방송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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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관계가 냉각하면서 한국 가수들이 홍백전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5년간의 공백을 거쳐 2017~2019년 일본인 멤버가 있는 트와이스가 연속 출전했죠. 2018년 방탄소년단(BTS)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홍백전 출전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컸지만, '원폭 티셔츠' 파문으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일본은 BTS 열풍이었습니다. 오리콘 집계에 따르면 일본서 발매된 BTS 음반 'BTS, THE BEST'는 12월 중순까지 99만3000장이 팔려 연간 앨범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했죠. 일본에서 외국 아티스트가 연간 앨범판매 1위에 오른 것은 1971년 엘비스 프레슬리, 1984년 마이클 잭슨 이후 BTS가 처음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인기인지 상상이 가능합니다.
도쿄올림픽을 앞둔 지난 7월 20일 일본 도쿄의 상징 시부야 스크램블을 BTS 앨범 홍보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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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 홍백전 출연자 명단에 BTS는 없습니다. 한국발(發)이지만 전원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니쥬만 이름을 올렸죠. "시청자 등의 다양한 요구를 고려한다"는 것이 방송사 측의 논리지만, 실제 일본 국민의 선호를 무시하고 폐쇄적인 선택을 거듭한 결과가 홍백전의 몰락으로 나타났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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