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근혜 대통령 사면은 늦었지만 환영합니다.”
24일 오전 11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의도 당사 3층 기자실을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으며 손에 따로 쥔 입장문도 없었다. 윤 후보는 “우리 박 대통령”이라고 부르면서 “건강이 좀 안 좋으시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하여튼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라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박 전 대통령과의 ‘악연’부터 물었다. “서울중앙지검장 당시 박 전 대통령 형집행정지를 불허했는데”라는 질문에 그는 “제가 불허한 게 아니고 형집행정지 위원회에서 검사장은 그 법에 따라야 하게 돼 있기 때문에 위원회의 전문가 의사들이 형집행 정지 사유가 안 된다고 한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
Q :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면 대상에서 빠졌는데.
A :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Q :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복권·복당 여론이 있다면.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1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시절 당에서 제명조치됐다.)
A : “일단 건강 먼저 회복하시는 게 우선 아니겠나. 너무 앞서 나가는 거보다.”
Q :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사면에 대한 반발을 없애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이 있는데.
A : “글쎄, 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를 이석기·한명숙 이런 분들의 조치하고 연결해서 생각하는 건 좀 마땅치 않다고 저는 본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23일 오전 광주 북구 인공지능(AI) 중심 산업융합 집적단지 내 AI 데이터센터 건립 예정지를 방문해 조인철 광주광역시 문화경제부시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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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는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었지만 선대위 내부에선 “정치적 사면”이라거나 “보수분열 공작” 같은 반응이 종일 나왔다. 선대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내부 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이 건강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하는데, 혹 수감 중 불상사가 생기면 그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이 져야 하니까 이를 모면하기 위해 서둘러 사면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명숙 복권·이석기 가석방’에 대한 물타기로 박 전 대통령을 끼워 넣은 것 같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윤 후보의 측근인 권성동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사면을 하려면 전직 대통령 두 분을 같이 해야 하는데 한 분만 하는 건 민주당의 정치적 술수가 숨어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대위가 ‘사면 국면’에 촉각을 세우는 건 윤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검사였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박영수 특검에서 수사팀장을 맡아,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45년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정치 입문 선언 뒤 “공직자로서 소임을 다한 것뿐”이라고 했다가, 점차 “미안한 마음”, “집권 시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겠다”며 사과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윤 후보는 여전히 “박근혜를 감옥 보낸 사람”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 9월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을 때, “45년 구형 때리고 여기 와서 정치 쇼한다”고 반발에 부딪힌 게 대표적이다. 윤 후보 측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박근혜 동정론이 박 전 대통령 지지기반이었던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형성될 경우 윤 후보 지지가 다시 출렁일 수 있다”며 “검사 윤석열의 과거가 대선주자 윤석열의 미래를 잡아끌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발표한 24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시장에서 한 시민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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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윤 후보는 최근 주변에 “내가 검찰총장 되려고 박 전 대통령 수사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며 “내가 한 자리하려고 적폐 수사하고, 대통령 되고 싶어 ‘조국 수사’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략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 후보 측 관계자는 “당시 수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잘 설명하면서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하는 것 말곤 돌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의 당선을 위해 힘을 보태주길 기대하는 기류도 읽힌다. 윤 후보 측 인사는 통화에서 지난해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옥중편지로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야당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달라”고 한 것을 언급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당장은 건강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대선 전에 긍정적인 메시지가 나올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측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에게 “치료 중엔 어떤 정치인도 안 만날 것이란 게 박 전 대통령 뜻”이라고 전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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