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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화해 종용에 2차 가해까지… 스토킹 피해자 “못믿을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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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80%는 “도움 요청 안해”

“별다른 조치 없을 것 같아” 최다

신고해도 ‘만족’ 응답 5.5% 그쳐

“가해 처벌보다 피해자 보호 중요”

전문가, 신뢰 확보 시스템 촉구

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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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경찰이 믿어줄지 의심스러워 따로 신고하거나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부부싸움으로 신고했을 때도 경찰이 무대응이었기 때문에 강도가 세질 때까지 참았습니다.”, “가족들도 말을 안 믿고 경찰은 더 안 믿을 것 같아서 용기가 안 났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올해 7∼8월 스토킹 피해자 등 40명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스토킹 범죄 대응이 어려웠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나온 주요 답변이다. 이들은 스토킹 피해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믿지 못해 신고하지 않았다. 다른 참여자는 “직접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이 아닌 이상 증거 확보가 어렵고, 직접 피해가 없기 때문에 경찰에서 사건 접수를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주변에서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만류했기 때문에 신고할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스토킹 피해를 입은 이들 사이에서 경찰 대응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는 가운데 실제 스토킹 피해자 10명 중 8명이 피해 당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9일 이수정 경기대 교수 연구팀이 국회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 2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06명(80.5%)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찰에 신고해 해당사항 없음’(19.5%·50명)이란 응답을 제외했을 경우, ‘경찰에 신고해도 별다른 조처를 해줄 것 같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22.3%(57명)로 가장 비중이 컸다. 이어 ‘경찰에 신고하기에는 사소한 일이라 생각돼서’가 18.4%(47명), ‘경찰이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아서’ 15.2%(39명), ‘과거에 문의·신고했을 때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5.1%(13명) 등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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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 조치에 만족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경찰 신고 이후 만족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만족한다’는 답변은 5.5%인 데 반해 ‘만족하지 못한다’는 답변은 22.7%로 4배 이상 격차를 보였다.

불만족한다고 답한 이들은 ‘가해자 행위를 제지하기 위해 경찰이 취할 수 있는 행위가 별로 없었다’, ‘경찰이 내 사건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2차 피해를 가했다’, ‘가해자의 말만 믿고 연인 사이 문제 또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문제라고 생각해 가볍게 취급했다’ 등을 언급했다. 경찰에 신고한 경우 스토킹 행위를 막는 데 효과가 있었냐는 질문에 ‘있었다’는 답변이 30.5%인 데 비해 ‘없었다’는 답은 69.5%에 달했다.

연구진은 “피해자가 경찰에 스토킹 피해를 신고할 경우 사건을 접수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관계에서 발생한 단순한 갈등, 끝난 관계를 회복해보려는 시도 정도로 받아들여 신고 취소를 종용하거나 가해자를 편드는 말을 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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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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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스토킹 신고 시 피해자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조치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 연구위원은 “스토킹을 여전히 남녀 사이의 의견 충돌이나 다툼 정도로 여기는 게 일반적인 인식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신고를 하면 도움을 받기는커녕 가해자가 더 큰 보복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토킹 신고에 대한 국가기관의 조치가 ‘가해자 처벌’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승 연구위원은 “스토킹 가해자 처벌은 죄형법정주의 때문에 우리 기대보다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피해자 보호라는 목적 아래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조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승환·구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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