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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초유의 수능 정답 유예 사태

법원, 수능 생명과학Ⅱ문항 정답 결정 처분 '취소' 판결… "출제오류 명백"(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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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출제오류' 논란이 제기된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법원이 출제오류 논란이 불거진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정답 결정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1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 결정 처분 취소소송 선고기일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해 정답 결정을 취소한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이번 사건의 쟁점을 ▲이 사건 문제에 오류가 있는지 여부 ▲오류가 있다면, 그러한 오류가 수험생으로 하여금 정당한 답항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 정도에 이르는지 여부 등 2가지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문제에서 제시한 조건을 사용해 동물 집단의 개체 수를 계산할 경우 특정 유전자형의 개체 수가 음수로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생명과학의 원리상 동물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일 수는 없으므로, 이 사건 문제에는 주어진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집단Ⅰ, Ⅱ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수능시험의 과학탐구 영역은 문제에 포함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추리·분석·탐구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므로, 출제자는 수험생들이 논리성·합리성을 갖춘 풀이방법을 수립해 문제해결을 시도할 경우 정답을 고를 수 있도록 문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원고들을 포함한 일부 수험생들은, 피고가 의도한 풀이방법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논리성·합리성을 가진 풀이방법을 수립해 이 사건 문제의 해결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이 사건 문제 자체의 오류로 인해 정답을 선택할 수 없게 됐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수험생들에게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 사건 문제에 명시된 조건의 일부를 무시하거나, 생명과학 원리를 무시한 채 답항을 고르라는 것과 다름없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선택한 수험생과 그렇지 않은 수험생들 사이에 유의미한 수학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결국 이 사건 문제는 대학교육 수학능력 측정을 위한 수능시험 문제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만일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그대로 유지한다면, 수험생들은 앞으로 수능시험 과학탐구 영역에서 과학 원리에 어긋나는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그러한 오류가 출제자의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수능시험을 준비하면서 사고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출제자가 의도한 특정 풀이방법을 찾는 것에만 초점을 두게 될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이 사건 문제에는 명백한 오류가 있고, 그러한 오류는 수험생들로 하여금 정답항의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적어도 심각한 장애를 줄 정도에 이른다. 따라서 이 사건 문제는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험생들의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평가지표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했다"며 "그런데도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피고의 처분은 위법하므로, 이를 취소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전날 당초 오는 17일로 예정돼 있던 선고기일을 이날로 앞당겼다. 각 대학 입학전형 일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판결을 조기에 선고해 학사일정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수험생들은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며 지난 2일 교육과정평가원의 정답 결정을 취소하라는 본안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정답 결정 처분의 효력을 임시로 멈춰달라는 취지의 집행정지를 함께 신청했다. 지난 9일 재판부는 "교육과정평가원이 11월29일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처분은 본안소송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효력을 정지한다"며 집행정지 신청 결정을 내렸다.

이후 평가원은 생명과학Ⅱ성적을 '공란' 처리한 성적표를 수험생들에게 배부했고, 교육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협의를 거쳐 수시전형 합격자 발표일을 오는 18일로 연기했다. 수시 모집 합격자 등록일도 17∼20일에서 18∼21일로, 수시 모집 미등록 충원 기간도 21∼27일에서 22∼28일로 각각 하루씩 늦춰졌다.

출제 오류 논란이 불거진 문항은 주어진 지문을 읽고 두 집단 중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선택지 3개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지 평가하는 내용이다.

소송을 낸 수험생들은 지문에 따라 계산하면 한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오류가 있어 문제의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평가원은 해당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 타당성이 유지된다며 정답 결정 처분을 유지했다.

한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날 오후 이번 법원의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은 그대로 확정될 전망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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