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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낙엽 속의 암살자 왕침노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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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왕침노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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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박사는 낙엽조차 함부로 밟지 않습니다.

연구실로 오가는 길에 널브러진 낙엽을

치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 이유가 뭘까요?

추적추적 진눈깨비 흩날리는 날,

이 박사가 낙엽을 들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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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왕침노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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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 않아 뭔가가 나타났습니다.

낙엽과 같은 보호색을 띤 친구라

얼른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만,

분명 살아있는 그 무엇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습니다.

이 박사가 왕침노린재라고 일러줬습니다.

참 자연은 신비롭습니다.

이 추운 겨울,

낙엽 더미 속에서 월동하는 겁니다.

이 박사가 낙엽을 치우지 않으며,

걸음걸이에 늘 조심성이 밴 이유였습니다.

중앙일보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왕침노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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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가 들려주는 왕침노린재의 특성은 꽤 독특합니다.

“보통 노린재라고 하면 아주 고약한 냄새,

즉 노린내로 자기를 방어하는 애들인데

이 친구는 침으로 공격하고 방어합니다.

말 그대로 침노린재,

영명으로 ‘어쎄신 버그’라고 하거든요.

뒤에서 확 찔러서 잡아먹는 암살자인 거죠.

뾰족한 입으로 곤충을 찔러서 물장군처럼 흡습하죠.

냄새가 아니고 찔러서 잡아먹는 강력한 포식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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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왕침노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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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움직이다가 뒤집어진 친구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숨겨진 왕침이 확연히 사진에 찍혔습니다.

바로 ‘암살자의 침’입니다.

그런데 겨울엔 이 ‘암살자의 침이 무용지물입니다.

그들이 사냥할 곤충이 없으니까요.

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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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침노린재 수컷(왼쪽)과 암컷(오른쪽). 암컷의 배가 수컷보다 넓고 통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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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몸에 얼지 않는 물질을 갖고 있을 것이고요.

아니면 이런 나뭇잎 사이사이에 숨어서

온도 변화를 좀 적게 하는 그런 전략을 쓰는 겁니다.

겨울에 먹이 활동을 못 하니 버티는 거죠.

살아 내기만 하는 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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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의 삶이 참 처연합니다.

이 박사의 설명을 듣자마자

낙엽을 덮어줬습니다.

부디 이 겨울을 버텨 살아내기를 바라면서요.

자문 및 감수/ 이강운 서울대 농학박사(곤충학),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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