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의 부자 타격왕 이종범 코치(오른쪽)와 이정후.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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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 4년은 여러모로 아쉬웠다. 첫 한 달은 경이로웠다. 타율 0.337 도루 10개. 일본 야구계가 깜짝 놀랐다. 선동열의 활약으로 한국 야구의 수준을 인정했지만 이 정도 일 줄 몰랐다.
5월 5개, 6월 2개 홈런을 때려냈다. 그러나 운명의 6월 24일 몸 쪽 공에 골절상을 당하며 이종범의 ‘열도 정복’ 꿈은 무산됐다. 그해 타율 0.283, 홈런 10개, 도루 18개를 남겼다. 괜찮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종범이었기에 부족했다.
이듬 해 이종범은 전년도 두 배 가까운 경기에 출전하고도 9개 홈런에 그쳤다. 도루는 똑같이 18개. 타율은 0.238로 나빠졌다. 이후 일본에서 1년 여 더 뛰었으나 활발하진 못했다. 결국 2001 시즌 도중 한국으로 복귀했다.
왜 이종범이 실패했을까. 두 야구인의 분석이 기억에 남는다. 김응용 감독은 누구보다 이종범을 잘 안다. 신인시절부터 5년간 이종범을 데리고 있었다. 1994년 타율 0.393을 기록할 당시 감독이었다. 김응용 감독에게 9번째 우승을 안겨준 1997년 한국시리즈는 이종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했다.
어째서 일본에선 그러지 못했을까. 스승의 원인 진단은 간단했다.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지만 (이)종범이는 특히 신바람 나야 잘 한다. 주니치 2년차에 유격수에서 외야로 옮긴 것은 명백한 실수다. 내야에서 외야로 가면서 신바람을 잃었다. 수비는 편해졌지만 마음은 편치 못했다.”
KIA로 돌아 온 후 이종범의 타격을 지도한 박승호 코치는 일본의 세밀한 야구와 몸 쪽 공에 대한 집요함을 이유로 들었다. 몸에 맞는 볼 이후 이종범은 몸 쪽 공에 전처럼 공격적이지 못했다. 무의식 깊숙이 남아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몸 쪽에 약점을 드러내자 상대 일본 투수들이 집중적인 공략이 시작됐다. 한 번 맞아서 골절을 당하게 되면 누구나 움츠러든다. 몸 쪽 공은 장타의 위험이 있지만 정교한 컨트롤이 뒷받침되면 가장 무서운 무기다.”
2021년 타격왕 이정후(23·키움)에 대한 해외 반응이 뜨겁다. 미국의 스포츠 통계 전문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7일(한국시간) 전 세계 젊은 야구선수들에 대한 평가를 내놓았다. 이정후는 전체 2위, 타자 가운데는 1위를 차지했다.
5툴을 갖춘 일본 프로야구 스즈키 세이야(27·히로시마)보다 더 후한 평점이다. 세이야는 181㎝ 98㎏의 거구이면서 50m를 5초 8에 뛰는 준족이다. 최고 시속 148㎞의 빠른 송구를 자랑하는 강견이기도 하다.
올 해 0.317의 타율로 센트럴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이정후는 0.360의 타율로 아버지에 이어 사상 최초로 부자 타격왕에 올랐다. 세이야는 2019년 홈런 28개 도루 25개를 기록한 만능선수다. 그런 타자를 눌렀으니 이정후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팬그래프는 이정후를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윙을 가진 타자’라고 정의했다. 파워는 세이야에 뒤지지만 안정감이나 정확도에선 훨씬 앞선다고 진단했다. 이정후는 5년 연속, 세이야는 6년 연속 3할 대 타율을 기록 중이다.
이종범 코치는 아들의 해외진출 얘기만 나오면 ‘미국보다는 일본’ 쪽을 추천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기엔 파워가 부족하다는 소박한 평이다. 그러나 미국 현지의 반응은 다르다. 이정후에게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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