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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쇠질’ 후 20야드 앞으로 나간 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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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사진 K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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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데 정작 고기는 거의 먹지 않았다. 김수지(25)는 “고기를 좋아했는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300g씩 먹으니까 좀 질려요”라며 웃었다.

김수지는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2승을 한 새로운 스타다. 어릴 때 발레, 수영, 피겨 스케이팅, 피아노, 바둑 등 안 해 본 예체능이 없다. 그중 골프가 가장 재미있었고, 중학교 때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별 어려움은 없었다. 2017년 KLPGA 투어 신인으로 상금랭킹은 37위였다. 확 튀지는 않았지만, 이듬해 출전권이나 스폰서를 걱정할 정도도 아니었다. 집안은 화목했고, 투어는 안락했다. 2019년까지 그랬다.

2020년 코로나19가 김수지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하필 김수지가 좋아하는 코스에서 열리는 대회들이 취소됐다. 컷 탈락이 다반사였다. 김수지는 “우울하게 시간을 보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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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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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배워서인지 김수지는 코스 매니지먼트를 잘했다. 거리가 나는 드로가 아니라 안전한 페이드샷을 쳤다. 페어웨이 적중률은 항상 10위 이내에 들었다. 롱게임보다 쇼트 게임에 집중했다.

코로나 한파에 시드를 잃고 ‘지옥의 경기’라는 시드전을 치른 김수지는 되든 안 되든 무조건 바꿔서 도전하자고 마음먹었다. 내 스윙, 대회에 임하는 자세를 비롯해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다. 김수지는 “하루에 고기를 한 근씩 먹었고, 쇠질(웨이트트레이닝)을 두 시간 했다. 집에도 바벨을 갖다 놓고 수시로 운동했다”고 했다. 근육이 5kg, 거리는 20야드가 늘었다.

20야드의 앞은 다른 세상이었다. 이전 김수지는 티샷 거리가 짧아 세컨드샷을 가장 먼저 하는 1번 타자였다. 올해는 주로 2번 타자다. 다른 선수의 샷을 보고 바람을 참고할 수 있다. 샷을 준비할 시간 여유도 있다.

지난해 그린 적중률 90위였던 김수지는 올해 9위로 올랐다. 4라운드 대회 평균 12타를 줄였고, 상금랭킹은 87위에서 7위로 올려 15배인 7억4500만원을 받았다. 드라이브샷 거리는 243야드로 22위다.

그러면서 프로 데뷔 115경기 만에 첫 우승도 했다. 5년 동안 상상만 하던 우승이 그에게 찾아왔다. 전장이 긴 메이저대회인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김수지는 네 번에 한 번 꼴로 톱 10에 들었고, 27경기에서 컷 탈락한 건 한 번뿐이었다. 김수지는 KLPGA 투어의 정상급 선수가 됐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표현은 상투적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지난해 몸을 불린 ‘헐크’ 브라이슨 디섐보와 김효주 때문에 골프 선수들 사이에 웨이트 트레이닝 붐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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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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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전지훈련을 거의 가지 못한 선수들에겐 시간도 많았다. 대부분의 선수의 비거리가 늘 거라고 예상됐다. 그러나 실제로 효과가 나타난 선수는 많지 않다. 근육보다 날씬한 몸매가 스폰서 계약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선수도 있다.

대장장이처럼 묵묵히 쇠질을 한 김수지의 노고를 상상할 수 있다. 김수지는 “만약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바꾸지 않았을 것이고, 우승도 못 하고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쳤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일은 마음먹기 나름이고, 결과적으로 코로나가 도움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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