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창덕 '꺼벙이'·윤승운 '맹꽁이 서당'과 함께 '3대 명랑만화' 평가
1963년 '카이젤상사'로 등단해 1970~80년대 풍미
'명랑만화 제왕' 신문수 화백 별세 |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송광호 기자 = 명랑만화의 제왕으로 불렸던 신문수 화백이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유족은 이날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신장암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오늘 새벽 위독해져서 병원으로 와 오후 5시 23분쯤 임종하셨다"며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까지 아프셔도 꾸준히 사무실에 나가 그림을 계속 그리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1939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으로,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창 시절에 캐리커처를 그린 경험을 살려 만화가가 됐다. 동아일보 투고를 계기로 1963년 한 해 동안 신문·잡지에 투고했으며 그해 만화 '카이젤상사'로 등단했다.
신 화백은 1964년 당대 최고 만화가였던 길창덕 선생의 추천을 받아 만화잡지 '로맨스'에 '너구리 형제'의 연재를 시작했다. 이후 '도깨비 감투' '로봇 찌빠' 등 히트작을 내며 꾸준히 명랑만화를 그렸다. 주로 어린이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명랑만화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특히 대표작 '로봇 찌빠'는 1979년 6월부터 14년간 '소년중앙'에 연재됐고, 단행본만 10권 이상이 나왔다. 이 작품은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 윤승운 화백의 '맹꽁이 서당'과 더불어 한국 명랑만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로봇 찌빠'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비롯해 모바일 게임으로도 나왔으며 후배들에 의해 웹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고인의 작품은 투명인간이나 인공지능로봇 등 당시로서는 새로운 내용과 한국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소재를 주로 다뤘다. 여기에 중산층 가족을 무대로 어린이 주인공의 꿈과 모험을 그려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1977년 한국창작만화가회 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 만화가협회 회장도 역임했다. 한국만화가 협회 자문위원, 한국만화 100주년 행사 준비위원, 경기도 콘텐츠기업협의회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1996년에는 대한민국만화문화대상 출판상을, 2008년에는 고바우 만화상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한국만화가협회 주최 '제21회 만화의 날' 기념식에서 '명랑만화 5인방'으로 불린 고(故) 길창덕, 윤승운, 이정문, 박수동 화백과 함께 공로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4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0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일 오전 6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만화가 신문수 화백(2004.10.18) |
buff27@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