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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이슈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

[서초동 법썰] 정인이 양모 태운 택시기사가 증언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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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숨을 헐떡이는 '체인스톡'… 양모는 차분

119와 통화 후 택시에서 CPR 시행

2심 "정인이 사망 원했다고 단정 못해"

1심 무기징역 → 2심 징역 35년 '감형'

아시아경제

정인이 양부모의 1심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월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정문에서 시민들이 규탄 시위를 진행했다. /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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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지난해 10월13일 오전 10시48분. 택시기사 A씨가 서울 양천구의 한 도로에서 승객을 태웠다. 쓰러진 정인이를 안은 양모 장모씨였다. 장씨는 병원 응급실로 가달라고 말했다. 정인이는 늑골과 쇄골 등이 부러지고, 췌장이 완전히 절단된 상태였다.

A씨가 언뜻 보기에도 정인이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차 안에선 정인이가 30초 간격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정상적인 호흡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망하는 과정에서 숨을 헐떡이는 '체인스톡'이었다.

A씨는 그 상황이 너무나 이상했다. 룸미러 등에 비친 장씨는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차가 막히는데도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가 그 정도 상태라면 보통의 엄마일 경우 이성을 잃을 정도였을 건데, 차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A씨의 수사기관 증언)

장씨가 119 구급대원과 나눈 통화 녹음파일에서도 흐느끼는 소리나 흥분해 격앙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호흡은 다소 거칠었지만, 차분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마저도 A씨가 "119 신고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해 이뤄진 것이었다. "가슴 부위를 손가락으로 누르세요"라는 지시에 따라 장씨는 정인이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다. 택시는 20여분을 달려 모녀를 병원에 내렸다. 정인이는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3번의 심정지 끝에 오후 6시40분 세상을 떠났다.

검찰은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씨에 대해 급박한 상황에서도 119가 아닌 콜택시를 불렀고, 녹즙업체 직원의 전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거나 어묵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등 상식 밖의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법정에서 장씨 측은 자신이 정인이의 배를 발로 밟았다는 혐의를 부인하려고 "장기 손상은 CPR 과정에서 일어났을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지난 26일. 택시에서의 CPR은 장씨에게 유리한 근거로 작용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성수제 부장판사)는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면서도 "정인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CPR을 실시하기도 한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정인이의 사망이란 결과를 의욕·희망했다고 추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장씨의 형량을 징역 35년으로 감형했다.

이 판결 직후 온라인 카페 게시판엔 "감형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사형도 모자랄 판에 감형이냐"는 등 공분이 쏟아졌다. 반면 다른 아동학대 사건 판례나 양형조건을 고려할 때 결코 적은 형량이 아니란 반론도 나온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해 대법원 상고할 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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