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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이슈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로터리] 가사노동에 부는 플랫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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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

서울경제


가사 노동은 인류가 탄생한 후 계속 존재해왔지만 주거와 직장이 구분되고 자본주의경제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후에도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는 결국 가사 노동 없이 유지될 수 없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성이 가사 노동의 부담을 짊어졌고 가정 내 돌봄은 당연히 엄마들이 해야 하는 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플랫폼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가사 노동 영역에 큰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가사 노동이 매우 분업화·전문화되고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구독형 서비스로 진화해 일상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세탁물을 모아 내놓으면 세탁·배달까지 해주는 세탁 전문 서비스, 아기를 보느라 분리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틈도 없는 엄마들을 위한 분리수거 대행 서비스 등 기존 가사 노동이 세분화돼 시장경제에서 유통되고 있다.

가사 노동의 플랫폼 경제화는 반길 만한 현상이다. 다른 선진국보다 아파트 거주 선호도가 높고 정보기술(IT)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구독형 서비스나 플랫폼 경제는 젊은 세대일수록 활용 빈도가 높은데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우리나라의 남성과 여성 간 가사 노동시간 격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사 노동의 시장화는 과거 시장경제 영역에서 배제됐던 가사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여성에게 편중된 채 무급 형태로 이루어진 가사와 돌봄 노동이 보다 전문화된 서비스로 거듭나면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지난 6월 제정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해당 법률은 가사근로자에게 임금과 4대 보험을 보장하고 근로자 지위를 정식으로 부여했기 때문에 가사 서비스 플랫폼 경제 발달에 기여할 것이다. 특히 가사 서비스가 사업화되는 과정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사 서비스 인력이 시장으로 유입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가 있는 곳에 재화와 서비스가 공급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리다. 하지만 가사 서비스 시장은 유독 진전이 더뎠던 것 같다.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가슴(The Invisible Heart)’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주된 생계부양자로서 역할을 해온 것은 여성이 가정 내에서 가사 노동과 돌봄을 전담해온 덕분임을 강조한 것이다. 가사 노동이 ‘보살핌’이나 ‘사랑’이 아닌 ‘일’의 영역으로 가시화됨에 따라 가사 노동 영역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이를 당연한 생활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자신의 가사 노동 참여가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볼 계기도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남성의 가사 노동 참여 유인을 높이고 실제 가사 노동과 돌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가족 간의 유대감을 더 깊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저출산 극복에도 긍정적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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