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것은 외관과 내부에 그대로 드러난 옛집의 흔적이다. 기둥과 서까래, 한옥 지붕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단아하게 마감해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룬다. 마치 누군가 살았던 옛집을 탐색하듯 곳곳을 둘러보다 보면, 설화수가 전하려는 한국의 아름다움이 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종로구 북촌에 문을 연 '설화수의 집.'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 인상적이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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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지구 반대편 미국 뉴욕에서는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복합 문화공간이 관심을 모았다. 맨해튼 미트패킹지구에 위치한 ‘제네시스 하우스’는 차량 전시는 물론 한식 레스토랑, 다도 체험장, 지하 공연장, 테라스 가든 등을 갖춘 브랜드 거점이다. 글로벌디자인을 담당하는 이상엽 전무는 “단순한 자동차 판매장이 아니라 뉴요커가 제네시스를 경험하는 플랫폼이자 ‘작은 서울’”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한국적 일상의 향유’를 주제로 설계된 2층 문화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옥의 기와지붕을 연상시키는 천장 디자인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한옥 사랑채에서 영감을 받은 다도 체험관도 있다.
한옥 지붕 연상케 하는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제네시스 하우스 뉴욕' 2층의 '티 파빌리온' 겸 라이브러리.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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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감성 넣은 스페인·호주 브랜드
브랜드 매장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장(場)으로 진화 중이다. 매장 안팎의 공간에 브랜드의 특징이나 가치관을 절묘하게 버무려낸다. 특히 최근엔 한국의 아름다움을 지닌 공간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 브랜드뿐만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도 앞다퉈 한옥 특유의 디자인을 살린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호주 화장품 브랜드 ‘이솝’은 지난 8월 서울 한남동에 매장을 내면서 한옥의 건축 양식을 따왔다. 천장에는 한옥 특유의 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고, 내부 가구는 옻칠한 목재와 철물 장식으로 이루어져 옛 우리 가구인 반닫이(궤)를 연상시킨다. 이솝 관계자는 “한옥에는 현대적 건축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환대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한옥 디자인을 통해 따뜻하고 가정적인 느낌을 매장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솝 한남 스토어 내부 전경. 천장에 한옥의 들보와 서까래 디자인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사진 이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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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인 백화점에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복 ‘자라’를 보유한 스페인 인디텍스그룹의 ‘마시모두띠’는 지난 9월 경기도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한옥의 건축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매장을 냈다. 한옥 특유의 담백함과 소박함을 살려 매장 내 가구와 내·외부 전체에 목재를 사용하고, 창호지를 연상시키는 불투명 유리로 단아한 멋을 냈다.
가구 사이사이에는 한옥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을 연상시키는 자연석이 설치돼 있다. 마시모두띠 관계자는 “지난해 두바이 매장을 시작으로 나라마다 특징적인 매장으로 바꾸고 있다”며 “판교 매장은 전 세계 800여개 매장 중 유일무이한 한옥 콘셉트 매장”이라고 전했다.
마시모두띠 판교 현대백화점 매장. 창호지를 연상시키는 불투명 창이 눈길을 끈다. 사진 마시모두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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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국’ 드러내는 게 득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 공간이 주는 힘은 막강하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 오감으로 브랜드를 느끼는 것보다 강렬한 체험 방법은 없다. 장황한 설명보다 직관적이다. 최근 브랜드 가치에 신경 쓰는 기업들이 좋은 공간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이런 공간 기획에 한국적 미감, 즉 전통 한옥의 디자인 요소가 적용된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데 한국적인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의미다. 브랜드 전문가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인지도가 크게 높지 않아 한국 대신 글로벌 브랜드로 소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을 알 뿐 아니라 어떤 기대감까지 생겨나는 분위기라 오히려 한국을 내세우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정제된 형태로 절제해 표현한 설화수의 집 내부 디자인. 사진 아모레퍼시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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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해진 한옥, MZ에 통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유럽 등 문화 선진국을 따라하기 바빴던 과거와 달리, 대중들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전통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흐름에 주목했다.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이제 한국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르게 쫓아가는 전략)가 아니라 고유의 문화를 직접 만들어내는 문화 발신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 문화에 대한 스스로의 자신감에 더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20·30세대가 한국적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생 건축 등 한국의 옛 건물이나 한옥의 미감을 그대로 살리는 흐름도 이 연장선에 있다.
블루보틀 삼청점 2층에서 바라본 한옥 지붕. 미국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은 서울 삼청동에 매장을 내면서 한옥 별관을 따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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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빛을 발했다는 의견도 있다. 최원석 대표는 “100년 전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지금에 맞게 새롭게 풀어내 젊은 세대도 소비할 수 있도록 한 전략이 유효했다”며 “전통이 ‘힙’해졌기 때문에 지금, 현대에 통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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