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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곁엔 항상 '하나회'…한때 '대한민국 최고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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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곁엔 항상 '하나회'…한때 '대한민국 최고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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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출신 육사 11기 모임서 박정희 '친위부대' 변신해 요직 장악

'12·12군사반란' 계기로 정권핵심 진출…1993년 YS 취임 후 척결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과 부인 이순자씨.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과 부인 이순자씨.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곁엔 늘 '하나회'가 있었다.

'하나회'는 지난 1951년 육군사관학교 제11기생으로 입교한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주도해 만든 육군 내 비밀 사조직으로서 두 사람과 같은 영남 출신 동기생들의 친목모임(오성회)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나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0년대 들어 군의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는 1993년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이 하나회 척결에 나설 때까지 후배 기수들에게 대물림됐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3년 3~4월 한 달 동안에만 18명의 하나회 출신 장성들을 전역시켰다.

'하나회'가 박 전 대통령 재임 중 급성장할 수 있었던 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그가 군 내부의 다른 인사들을 견제할 수 있는 친위세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전 전 대통령은 이렇게 세력을 키운 하나회를 1979년 '10·26사건'(박정희 대통령 피격사건) 뒤 혼란한 틈을 타 '12·12군사반란'을 일으키는 데 동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때 육군 제9보병사단장으로서 예하 2개 연대를 서울에 보내 전 전 대통령을 도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이 지난 1982년 노태우 당시 내무부 장관(오른쪽에서 세번째) 등의 임명 선서식을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이 지난 1982년 노태우 당시 내무부 장관(오른쪽에서 세번째) 등의 임명 선서식을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전 전 대통령은 이후 1980년부터 8년간 제11~12대 대통령을 지냈고, 그를 도왔던 하나회 주요 인사들도 이 기간 정권 핵심에서 활동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가 돼 1988년 2월 제13대 대통령직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정당(민주정의당)의 과반 의석이 붕괴되자 전두환을을 겨냥한 이른바 '5공 청산론'을 받아들여 전두환 측근 인사들에 대한 정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은 1988년 11월부터 내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1995년 12월까지 강원도 인제군 소재 사찰 백담사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769일 간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취임 뒤엔 하나회 내부에서 이른바 '전두환계'와 '노태우계' 간의 암투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화평·허삼수(이상 17기)·이학봉(18기) 전 의원도 대표적인 하나회 인사들이다. 이들은 '12·12반란'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던 전 전 대통령의 핵심참모(비서실장·인사처장·대공처 2과장)로서 반란에 직접 가담했고, 이후 준장 진급과 함께 예편한 뒤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허화평·허삼수 전 의원은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과 관련해 전 전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사퇴를 건의했다가 권력 밖으로 밀려나면서 한동안 미국에 체류하기도 했지만, 1988년 노태우 정부 출범에 즈음해 국내로 복귀한 뒤엔 각각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2·12군사반란' 40주년이던 지난 2019년 12월12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고급 중식당에서 옛 '하나회' 출신 인사들과 오찬을 함께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2019.12.1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2·12군사반란' 40주년이던 지난 2019년 12월12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고급 중식당에서 옛 '하나회' 출신 인사들과 오찬을 함께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2019.12.1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전두환의 또 다른 최측근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16기) 역시 하나회 출신이다. '12·12반란' 때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으로서 반란에 직접 가담했던 그는 5공 전반기 3년7개월간은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후반기 2년3개월간은 안기부장을 지냈다. 1986년 '평화의 댐' 건설, 1987년 수지 김 간첩조작사건 등이 '장세동 안기부'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 시기 안기부 2차장은 이학봉 전 의원이었다.

이들 네 사람은 모두 김영삼 정부 출범 뒤인 1995년 전·노 두 전직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12·12군사반란' 및 '5·17내란' 관련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1997년 사면됐다.

이밖에 하나회원으로 '12·12반란'에 직접 가담했던 인물로는 당시 수경사 33경비단장이었던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17기) 등이 있다. 김 전 총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 뒤 가장 먼저 전역 조치된 하나회 출신 장성이다.

또 '12.12반란' 때 노 전 대통령처럼 휘하 병력을 동원한 하나회원들로는 당시 20사단장이던 박준병 전 의원, 1공수특전여단장이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5공수특전여단장이던 장기오 전 총무처 장관(이상 12기), 3공수특전여단장이던 최세창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정동호 전 의원 (이상 13기) 등이 있다.

정호용 전 의원(11기), 박세직 전 향군회장(12기),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14기), 고명승 전 제3야전군사령관(15기), 이필섭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16기) 등도 하나회 출신이다.

이런 가운데 '12·12반란' 40주년이던 지난 2019년 12월12일엔 전 전 대통령 부부와 정호용 전 의원·최세창 전 장관 등 일부 하나회 인사들이 서울 압구정동의 한 고급 중식당에서 1인당 20만원에 이르는 코스 요리로 오찬을 함께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ys417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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