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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초유의 현직 당대표 징계

젠더폭력 막으라는 요구가 '페미니즘 선동'이라는 이준석 대표[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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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플랫브리핑] 젠더폭력 막으라는 요구가 '페미니즘 선동'이라는 이준석 대표

데이트 폭력으로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이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빈발하는 스토킹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작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할 야당 대표는 이러한 목소리를 ‘페미니즘 선동’으로 규정했다. '남성을 가해자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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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월이나 계속된 스토킹…
경찰 보호도 소용이 없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 연인을 스토킹하다 흉기로 살해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A씨는 지난 19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에서 전 연인 B씨를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다음날 대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긴급체포됐다.

B씨가 A씨의 스토킹을 신고한 지난 7일부터 분리 조치와 귀갓길 동행·임시숙소 제공 등 보호조치를 받고 있었음에도 경찰은 범행을 막지 못했다. 사건은 다른 곳에서 지내던 B씨가 원래 살던 오피스텔에 잠시 들렀을 때 일어났다. A씨는 범행 후 서울 한 전철역에 피해자의 휴대전화와 옷가지를 버린 뒤 현금으로 택시를 잡아 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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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이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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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B씨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오전 11시 29분과 33분 두 차례에 걸쳐 긴급 호출을 했지만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으로 출동했다. 지난달부터 시범운영 중인 위성과 와이파이, 기지국 기반의 새 스마트워치 위치확인 시스템이 현장에 정착되지 않은 탓이다. 사건 당시 경찰서에는 해당 시스템을 구동할 업무용 앱이 설치된 휴대폰이 없었고, 경찰은 기지국만을 통하는 기존 112시스템을 활용했다.

유족은 경찰이 스토킹범죄 방지 대책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B씨 유족은 지난 20일 경향신문에 “물리적으로 다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다는 식의 접근은 잘못된 것 같다. 스마트워치로 보호를 받아도, 법적으로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져도 빈틈이 생기면 언제든 범행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촘촘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B씨 지인들에 따르면 A씨는 11개월 이상 B씨를 지속적으로 협박하거나 스토킹했고, 카드키를 훔쳐 무단침입을 하거나 흉기로 협박하는 등 심각한 괴롭힘을 계속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1일 “오차 범위가 큰 기지국 방식이 아니라 GPS 기능이 있는 스마트워치를 줄 수 없었는지, 법령상 불가능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토킹 신고 하루 평균 103건
전문가 “가해자 제재가 필요”



전문가들은 스토킹범죄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이 시행된 지난 10월21일 이후 한 달간 2774건의 스토킹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103건 접수된 것으로, 올해 1월1일부터 10월20일까지 일평균 신고 24건보다 4.3배 급증한 수치이다. 지난 17일에도 한 남성이 서울 서초동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던 여성을 살해하고 아파트 밖으로 던진 혐의로 체포됐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스토킹은 자기의 사랑만 옳은 사랑이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굉장히 비이성적인 것이다. 단순히 분리 조치하는 것은 피해자를 절대적인 위험 상태에 노출시키는 것”이라며 “반복적인 스토킹이 일어났을 때에는 유치장 유치 등 강력한 잠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피해자 분리는 정확히 하고 가해자에 대해서는 단순한 자유 박탈적 처분이 아니라 망상 치료를 위한 의료적 처우가 개입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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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폭력 신변보호 대상자 A씨가 숨지기 전 가족들과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랑하는 큰딸’로 저장돼 있는 A씨는 끝내 어머니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했다. 유족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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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스토킹은 반복되면서 빠른 속도로 폭력성이 심해질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 1년 가량 위협이 있었지만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범죄 수준을 1부터 10까지라고 한다면 쫓아다니거나 모욕을 주는 등 3 수준의 범죄도 강력범죄의 예비적 징후로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범죄로 봐야 한다”고 했다. 또 “이별을 수용하지 못한 전 남편이나 전 남자친구에 의한 스토킹 살인이 사회 문제화돼야 한다”며 “보복성 심화가 명백해질 때는 정말 위험하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더 많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스토킹범죄 예방 조치는 여성이 쉼터로 가야 하고, 여성이 스마트워치를 가지는 등 여성을 관리대상으로 해왔다”며 “제재받아야 할 대상(가해자)을 제재하는 방식으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가해자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는 등 기술적으로 촘촘히 지원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여성 죽이지말라’는 목소리
‘페미니즘 선동’이라는 야권



대선을 네 달 앞둔 정치권이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안티 페미니즘’을 주요 선거 전략으로 내세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젠더폭력 근절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페미니즘 선동’으로 규정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20일 A씨 사건에 관한 기사를 공유하며 ‘교제 살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 의원은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여성들의 참혹한 죽음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런 살인은 계속 증가세”라며 “이별 통보했다고 칼로 찌르고 19층에서 밀어죽이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이어 “페미니즘이 싫으면 여성을 죽이지 마라. 여성의 안전보장에 앞장 서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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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장혜영 정의당 의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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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 대표는 장 의원의 발언을 공유하며 “선거 때가 되니까 또 슬슬 이런저런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런 잣대로 고유정 사건을 바라보고 일반화해버리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전 남편에게 졸피뎀을 먹여 살해하고 토막살인한 시신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해상에 투기한 사건을 보고 일반적인 사람은 고유정을 흉악한 살인자로 볼 뿐이다. 애써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젠더갈등화 하려고 하지도 않고 선동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다음 날인 22일 이 대표를 향해 “고유정 때문에 여친한테 살해당할까 봐 걱정하며 사느냐. 여친과 헤어지며 ‘안전이별’ 검색하느냐”며 “가정폭력, 스토킹, 교제살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고 가해자 대부분은 남성이다. 이건 개념 문제가 아니라 팩트”라고 했다. 그는 “이걸 성별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문제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은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여성들이 교제살인으로 죽어가는 문제에는 관심 없고, ‘페미니즘’ 네 글자에 꽂혀서 조선인 우물까지 끌고 오는 거, 너무 볼품없다”며 재반박에 나섰다. 그는 다음날에도 “이준석 대표의 안티페미 선동 활약으로 젠더기반폭력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준석 대표가 안티페미 선동을 할수록 좋아하는 건 젠더폭력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이고 죽어가는 건 여성들”이라고 재차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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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폭력 공식통계도 없는 한국
‘최소한’ 열흘에 한명 꼴로 여자들이 죽는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 대부분을 여성으로 전제하는 것은 과연 ‘차별적 담론’일까. 한국에서는 이 대표 주장을 정확하게 반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젠더 폭력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UN에서는 매년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여성 폭력’ 통계를 집계하고 있는데, 한국은 여성이 피해자인 살인 사건 중에서 가해자가 친족인 경우만 '여성 폭력'으로 집계한다. A씨 사례와 같은 데이트·가정 폭력 사건은 일반적인 ‘상해치사’로 보고된다.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여성들은 현행 법체계에서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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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살해위협을 받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A씨 사례와 같은 데이트폭력·가정폭력 사건은 일반적인 ‘상해치사’로 보고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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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언론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한 교제 살인 실태에 따르면, 피해자 성비는 압도적으로 여성이 높았다. 오마이뉴스가 2016~2018년 발생한 데이트 폭력 살인사건 판결문을 수집·분석한 결과, 여성이 남성을 죽인 사건은 2건이었다. 반면 남성이 여성을 죽인 사건은 108건이었다. ‘최소한’ 열흘에 한 명꼴로 살해를 당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했다. 같은 기간 경찰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여성 대상 교제살인 건수는 51건에 그쳤다.

한국여성의전화도 매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에 의한 여성살해’ 사건을 분석해 발표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97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31명이었다. 1.6일에 1건 꼴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실제 피해 여성은 훨씬 많을 수 있다.


조해람 기자 lennon@khan.kr
이홍근 기자 redroot@khan.kr
심윤지 기자 shaprsim@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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