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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나도 괴물이었다”…대물림되는 아동학대 가해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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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가해자였던 어머니 인터뷰

본인 역시 어린시절 아동학대 피해자

“스스로 학대사실 인정하는 게 우선”

현재는 아동학대 방지 위해 앞장서

헤럴드경제

고3 딸을 둔 엄마인 김지선(오른쪽) 씨와 그의 딸. 그는 과거 아이를 학대한 경험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스스로 가해자였음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 치료와 강의 등을 들으며 노력했다. 현재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힘을 쓰고 있다. [김지선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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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어느새 저도 괴물이 돼 있었습니다.”

매년 11월 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로,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도입됐다. 해당 법정기념일을 운영한 지 15년째지만, 아동학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주변 상황 때문에’ 등의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16개월 입양아를 잔인하게 살인한 ‘정인이 사건’ 입양모 장모(35) 씨도 자신의 학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교도소에서도 죄책감 없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동학대 해결을 위한 무거운 첫 걸음이다. 헤럴드경제는 스스로를 아동학대 가해자라고 소개한 한 어머니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주부 김지선(37) 씨는 고3 딸을 둔 엄마다. 그가 지금의 딸의 나이와 비슷했던 2003년 미혼모로 딸을 낳았다. 그는 아이를 자신의 엄마에게 맡겼다. 그렇게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10년이 지났다. 김씨는 “아이는 자라면서,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외면했다는 정서적 학대를 받고 자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가 열 살이 됐을 무렵 다시 집으로 아이를 들였다. 그리고 폭행이 시작됐다. 사춘기 무렵 아이가 반항을 하면, 손부터 나갔다. 김씨는 “아이를 처음 때린 날, 스스로 마음 속에 괴물이 태어났다는 것을 느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어느새 괴물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 일곱 살이 되던 해 부모가 이혼을 했다. 이후 어머니는 우울증에 스스로를 자해하기 시작했다. 온 거실에 피가 낭자했다. 김씨는 “가끔 바닥의 피를 닦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결국 아홉 살에 보육시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보육시설로 간 후에는 먼저 온 고등학교 언니·오빠들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그들은 초등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김씨를 각목, 야구배트 등으로 구타했다. 보육원장도 이를 알았지만 묵인했다. 보육원 잡일에 동원되며, 노동력 착취까지 당했다.

김씨는 “딸의 모습에 저의 어릴 적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이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폭력을 답습하는 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스스로 가해자임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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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딸을 둔 엄마인 김지선 씨와 그의 딸. 딸이 어릴 때의 모습이다. [김지선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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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가장 먼저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심리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으며, 스스로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아동학대 관련 책을 보고 강의를 들으며,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이의 말을 더 경청하려 노력했다. 김씨는 “내가 혹시 아동학대를 하는 걸까 앞으로 조심해야지 정도로 아동학대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폭력 충동은 가끔 울컥하고 찾아온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아동학대 중독’이라는 표현도 쓴다. 문제 발생 시 가장 먼저 ‘폭력’을 찾고자 하는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다. 김씨는 “마음 속 괴물이 가끔 마음 속에 꿈틀거릴 때가 있다”며 “이 괴물은 평생 나와 함께하겠지만, 이를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아동학대 관련 협회에 후원하는 등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김씨는 “아동학대에 대한 정부·사회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며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아이들에게는 칼을 들이미는 것 같은 공포로 다가온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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