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은둔형 외톨이된 원인 1위가 ‘취업 실패’
‘니트족’과 달리 ‘관계맺기’ 어려움 겪는 경우 많아
"심리적 건강 회복시켜주는 접근이 먼저 필요해"
'권력을 손에 넣고 싶다'라는, 어쩌면 가장 세속적인 목적으로 행정고시를 시작했다. 김신씨(32·가명)는 서울 유명 사립대 법학과에서 8년간 고시생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군대까지 미룰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번번이 합격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절망하지 않았다. 좋은 학벌과 적당한 학점으로 갈 수 있는 회사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갑자기 닥쳐온 코로나19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김씨는 "2년간 면접장에 딱 한 번 가봤다"며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1990년생, 32살 김씨가 찾아간 곳은 대구 본가다. 그는 방문을 나서지 않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드나들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청년들의 취업 한파가 거세지자 방문으로 들어간 은둔형 외톨이는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이후 집계된 통계가 없어 그 숫자를 헤아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의 형태가 다양한 만큼 단순 취업과 일자리 문제로 해석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은둔형 외톨이 3년 사이에 26.4% 늘어
16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15~29세) 분석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3년 이상 장기 미취업 상태인 청년은 27만8000명이다. 이들 중 미취업기간에 집 등에서 그냥 시간을 보낸 청년은 9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청년 실업률은 5.6%로 전체 실업률 2.8%에 비해 2배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구직단념자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사실상의 체감 실업자를 포함한 청년 확장실업률은 20.3%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청년들의 고통은 극에 달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청년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이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청년층(15~29세)의 경제고통지수가 2015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경연에 따르면 연령별 체감경제고통지수는 청년층(15∼29세)이 27.2로 가장 높았고 이어 60대 18.8, 50대 14.0, 30대 13.6, 40대 11.5 등의 순이었다.
원인은 고용 한파였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올해 상반기 25.4%로 30대(11.7%)의 2.2배, 40대(9.8%)의 2.6배였다. 실제 청년들의 은둔 이유 다수는 취업 문제였다. 광주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취업 실패(27.8%)였다. 다음으로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26.6%), 대인관계(17.3%), 학업 중단이나 진학 실패(13.5%), 실직(10.1%) 순으로 나타났다.
같은 또래와의 격차는 청년들을 숨어들게 만들었다. 서울의 한 대학 경영학과에 다녔던 이진우씨(30·가명)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취업 스터디에 열심히 참석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씨가 취업에 연이어 실패하자 그는 자취방에서 나오질 않고 있다. 이씨는 "주변 친구들이 잘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명치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며 "남들과 비교가 되다 보니 부모님이나 친구를 만날 용기가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실제 일부 조사에서 코로나19 이후 청년층을 중심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났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청년 사회·경제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에 따르면 18~34세 청년 3520명을 대상으로 평소 외출 정도를 물은 결과 응답자 중 3.4%가 외출이 뜸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이 응답률을 근거로 국내 은둔형 외톨이 청년 규모를 지난해 기준 37만4156명가량으로 추산했다. 2017년 진행한 같은 연구에서 추산한 당시 29만5934명과 비교하면 불과 3년 사이 26.4%(7만8222명)나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인근 한 미술관에서 열린 '무서운 빛, 따스한 어둠' 전시회 사진=서동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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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 니트족과 구분해야"
실제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움직임은 지자체의 예상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8월 서울시가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사회진출이 힘든 고립·은둔 청년 심리지원 사업 신청을 받은 결과, 9일까지 고립 청년 404명, 은둔 청년 109명이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서울시는 당초 모집인원을 고립 청년 150명, 은둔 청년 50명으로 정했으나 2배가 넘는 인원이 몰린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소위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와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니트족의 경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은둔형 외톨이는 '관계 맺기'에 어려운 경우가 많다. 광주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 52.7%가 가족에게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밝혔으며, 60.8%의 외톨이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또 절반 이상은 은둔생활 중 외로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혜원 호서대학교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PIE나다운청년들 이사장)는 "은둔형 외톨이를 단순히 니트족으로 바라보면 취업 알선 등의 정책으로 매몰될 가능성이 높다"며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심리적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접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취업 문제로만 귀결될 경우 단순히 청년 문제로만 끝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가 지난 2019년 국내 은둔형 외톨이 16개 지원기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는 19~39세 연령대가 가장 많다. 그러나 은둔 기간이 5년 이상 되는 외톨이들이 20.2%에 달해 '중년' 외톨이가 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일본에서도 해당 문제를 깨닫고 2018년부터 장년 히키코모리를 추적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40~64세의 히키코모리가 전국에서 61만3000명으로 추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은둔형 외톨이는 청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며 "다만 청년층 때 겪은 취업 실패, 왕따 문제 등으로 은둔생활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아 이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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