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분향 못한채…윤석열 "상처받은 분께 사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았으나 윤 후보 방문을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가로막혀 묘역 근처에서 묵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에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지난달 해당 논란 후 약 3주 만인 10일 광주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그는 "제 발언으로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참배 도중 쏟아진 소나기를 그대로 맞으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시민들 반대에 부딪혀 추모탑에도, 희생자가 안장된 묘역에도 가지 못했다.

검은색 양복과 넥타이 차림을 한 윤 후보가 민주묘지에 들어서자 "물러가라 윤석열" "여기 선거운동 하러 왔느냐"며 반발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높아졌다. 윤 후보의 방문을 응원하는 지지자들은 국화꽃을 들고 길을 텄다. 윤 후보는 일단 차분한 표정으로 천천히 안쪽으로 이동했지만 당초 분향과 헌화를 하기로 계획한 5·18민중항쟁 추모탑 앞에선 오월어머니회,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 등 시민단체에서 '학살자 찬양 가짜 사과, 전두환과 다를 게 없다' 등의 피켓을 들고 막아섰다. 윤 후보 측 선두의 경호 인력이 시위대를 뚫고 추모탑 앞으로 가려고 시도하면서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결국 윤 후보는 추모탑에 닿지 못한 채 중간지점인 참배광장에 서서 묵념하는 것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입구인 민주의문에서 150m 남짓을 이동한 셈인데 지지자, 경호 인력, 취재진 등 인파가 뒤엉켜 약 18분이 걸렸다. 묘역을 순례하거나 '전두환 비석'을 밟는 모습도 연출되지 않았다. 윤 후보는 참배 직후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 사과문을 읽어내려갔다. 빗방울을 맞으며 굳은 표정으로 선 그는 "제가 대통령이 되면 슬프고 쓰라린 이 역사를 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역동적인 광주와 호남을 만들겠다.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또 "저는 40여 년 전 5월의 광주시민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5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다"라고 말했다.

방문 소회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를 드렸고 이 마음은 이 순간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갖고 가겠다"고 했다. 시민들 항의로 추모탑까지 가지 못한 데 대해선 "저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제가 5월의 영령들에게 분향하고 참배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협조해주셔서 이 정도로 사과하고 참배한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일각에서 정치적 자작극이라는 비판도 있다'는 지적에는 "저는 쇼 안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실어야 한다는 유족회 등 주장에 대해선 "헌법이 개정될 때 전문에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고 늘 전부터 주장했다"고 찬성 입장을 재확인했다. 5·18 관련 역사 왜곡 발언 등에 대해선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하고 허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윤 후보는 이날 민주묘지 참배 전 전남 화순의 고(故) 홍남순 변호사 생가를 찾아 유족과 차담을 나눴고, 광주 5·18자유공원을 둘러보는 등 5·18 정신을 기리는 데 집중했다. 사과와 반성의 진정성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사전에 캠프에서 '정치인 참석 자제' 방침도 정했다고 한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보여주기식 연출이나 세 과시로 비칠 만한 장면을 최소화하자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이에 당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은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과 캠프 대외협력특보 김경진 전 의원 등 소수만 일정에 동행했다.

윤 후보는 전남 목포로 이동해 중도 외연을 넓히기 위한 1박 2일 지방 일정을 소화한다. 이날 저녁엔 목포 구도심에서 '동교동계' 권노갑 민주평화당 상임고문 주선으로 지역 원로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옛 참모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다음 날인 11일엔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하고, 오후에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이동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할 예정이다.

[광주 =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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