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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오징어 게임' 전세계 돌풍

[취재파일] 오징어 게임, 기생충, BTS…한류 성공은 정부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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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궁금하다면' 홍석경 교수 인터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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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기록적인 성공과 함께 해외 언론에서는 한류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기사가 종종 실리고 있는데요,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각광 받게 된 주요 요인이 한국 정부의 지원정책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과연 한류 성공이 정부 덕일까요?

지난 6일 한류를 다룬 SBS 8뉴스 [더 스페셜리스트] '오징어게임' 대박이 정부 덕이다?를 준비하며 한류 연구자로 손꼽히는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를 만났고, 이 글은 인터뷰 2편입니다.
▶ 1편 [취재파일] 오징어 게임 - 넷플릭스가 한국을 이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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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성공이 한국 정부 덕분?



Q. 옥스포드 사전에 '한류(Hallyu)'라는 말도 올라갔지만, 요즘 해외 언론에서 한류 분석 기사를 많이 쓰더라고요. 그런데 많은 기사들이 한국 정부 정책을 성공의 주요인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한류 관련 논문들 중에서도 그런 시각이 많은 것 같고요. 어떻게 보세요?

A. 요즘 한국 대중문화 성공에 대한 이유를 외국 언론들이 굉장히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이제 원인을 막 찾아요. 그리고 한국 정부가 열심히 투자를 해서, 열심히 지원해서 수출용으로 만들어서 바깥에서 성공한 것이라는, 가장 손쉽고 말도 안되는 이유를 자꾸 여러 언론에서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권위 있는 매체라는 가디언(Guardian) 이코노믹스(Economics)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이런 곳에서도 그렇게 써요.

문화라는 게 물질적으로 투자해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전세계가 다 알고 있어요. 투자해서 되는 거라면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건 다 성공해야 하고,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중국 문화물이 외국에서 제일 성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잖아요. 그걸 알면서 왜 한국에 대해서는 정부 정책 덕분이라고 쉽게 믿어버릴까요.

반복되는 '오답'의 이유는?



어떻게 보면, 한국이 굉장히 빠른 경제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라든지, 경제 발전에 국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외국에서도 많이 알고 있거든요. 한국 시장은 작으니까 수출 주도형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경제성장의 논리를 문화에까지 적용해버리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문민 정부를 거치면서 문화 산업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해왔고, 정부도 그런 방향으로 대외 홍보를 했으니까 그 영향도 있겠죠. 해외에서 나온 한국학 논문들을 보면 단순하게 정부가 지원해서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성공한 것으로 쓴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외국 언론들이 계속 한국이 정부 주도적인 문화 산업을 통해 여기 이르렀다고 얘기하는 건 한국의 문화적 능력을 정말 폄하하는 일이고, 어떻게 보면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 반영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만 문화 산업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나라들이 다 하고 있는데 말이죠. 이런 얘기를 해외 공관 사람들이나 외신 기자들에게 하면 알겠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이런 태도가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떻게 보면, 한국이 빨리 성장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서 경제 능력, 기술적 능력까지는 인정하지만, 문화적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인정하기 힘든 거라고 해야 할까요, 과거 식민지였고 전쟁과 가난을 겪었고 개도국이었던 나라가, 어떻게 다른 곳을 침략하지도 않고 이렇게 빨리 경제적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전세계에 문화를 수출할 능력까지 얻을 수 있었겠어? 이런 질문을 계속 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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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성공 요인을 다룬 해외 언론 기사들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는 '한류! 한국 문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는 모두 K-팬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같은 수출 상품의 인기는 우연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친 야심찬 정부 계획의 산물이다'라고 했습니다.
https://www.thetimes.co.uk/article/hallyu-how-korean-culture-conquered-the-world-kb2swqwb5

프랑스의 BFMTV(뉴스 전문 채널) 기사입니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나 혼자만 레벨업(웹툰)'…한국 문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라는 기사에서, '한류의 전례 없는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1990년대 한국이 시작한 정치, 무역 전략의 결과이다'라고 썼습니다.
https://www.bfmtv.com/people/cinema/squid-game-parasite-solo-leveling-comment-la-culture-sud-coreenne-a-conquis-le-monde_AN-202110090029.html?fbclid=IwAR3nGPJ7Mzv0h_uBRlUqlCE33JanjvYt_tg0ili3j50noTLRrS-qgfkCElo

미국의 잡지 '포린 어페어스' 역시 '한국 대중문화 진흥을 위해 한국 정부는 전자, 조선, 자동차, 등 다른 수출산업에도 사용했던 같은 민관 협력 정책을 사용했다. 홍보 회사, 기술 기업, 그리고 다른 민간 기업들과 함께 문화관광부는 한국 TV 드라마와 영화, 가요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세밀한 사업 계획을 짰고, 기업가와 예술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south-korea/2021-10-14/korean-invasion?utm_campaign=fb_daily_soc&utm_source=facebook_posts&utm_medium=social&fbclid=IwAR0XnlPfDz_qwkfMB0Vg4gqSTrshHm_7TOEmKxRbYaTbVjB3wDQdl-1gdlw

복스(Vox)는 'K팝의 놀랍도록 정치적인 역사'라는 기사에서 IMF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이 문화라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 한류-K팝의 시작이었다고 씁니다. 또 한국 정부가 거대 기업들에게 한국 영화와 비디오 게임, 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각종 자금 지원과 혜택을 제공했다고 했습니다. (과연 한류-K팝 성공이 이렇게 이뤄졌나요?)
https://www.vox.com/the-highlight/22532102/bts-kpop-blackpink-south-korea-p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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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정부 정책의 결과라고 보는 시각은 정치 외교나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는데요,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도 얻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오늘날 한류의 성공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하죠.

물론 문화에서 그런 측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정부가 지원하려고 노력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밀하게 설계된 정부 정책에 따라 대중문화를 발전시키고 해외에 수출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변화무쌍 생동하는 문화의 본질과 자율성을 무시하고 어떤 다른 것의 종속 변수나 수단으로만 보는 시각과 통합니다. 문화에 대한 이런 '오해'는 사실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앞선 인터뷰 1편에서 홍석경 교수가 '문화 하는 사람들 말 안 듣고 무슨 경제나 투자 하는 사람들 말만 듣는다'고 이야기한 것도 통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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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쥬라기공원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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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역할



Q. 김영삼 정권 때 '주라기 공원'으로 촉발됐던 문화 산업론, 그걸 시초로 들기도 하고, 김대중 정권 때 IMF 외환위기 이후 문화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집중 투자한 게 한류의 원천이었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A. 물론 국가 역할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사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 정부가 했던 일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 이후라서 가능했던 것들이고요. 김영삼 대통령이 1993년인가 '주라기 공원' 얘기를 했을 때(*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이 개봉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영화 1편의 흥행 수입이 자동차 150만 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며 영화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자신도 한국이 할리우드에 영화를 역수출하게 되리라고 믿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문화로 이만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이 영역도 고민해보자고 생각했을 겁니다. 김대중 정부 때는 투자가 늘어난 건 사실인데, 굉장히 많은 투자가 대중문화보다는 고급문화 쪽으로 들어갔어요. 이걸 다 문화산업 투자 영역으로 생각했던 거죠.

어떻게 보면 문화 지원 정책보다는 그 때 벤처기업 지원했던 것들이 문화 기술 개발에 좀 도움을 줬을 거예요. 그리고 IT 발전이 큰 역할을 했죠. 한국은 국민이 손에 모바일을 갖고 있고, 초고속 인터넷으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외국 것들도 많이 보면서 우리 취향을 높였고, 자유롭게 표현했죠. 한국 사람들이 드라마를 그냥 봅니까, 열심히 비판하면서 보죠. 이런 것들이 결국 힘을 만들어낸 거라서 IT는 굉장히 중요하죠.

그리고 해외에서 보면, 한국에서 만든 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송되는 순간, 바로 스트리밍으로 몇몇 사이트에서 다 돌고 있거든요. 물론 전부 저작권 위반이고 불법의 영역인데, 이 힘이 결국은 한국의 콘텐츠를 전세계에 퍼뜨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에요. 한국에 초고속 인터넷 망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한국 정부가 민주화 이후에 여러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을 없애고 일본 대중문화도 개방하고, 또 당시에 중국도 문화 개방을 한다거나 이런 여러 조건들이 만들어졌던 건 사실이지만, 그리고 한국 정부가 지원을 하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 대중문화가 수출된 건 아닙니다. 한류는 그야말로 수용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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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오징어 게임' 팝업스토어 (사진=넷플릭스 프랑스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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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수용 현상이다



우리 정부에서 한식 한복 세계화 그렇게 노력할 때는 별 성과가 없었고, 성공은 늘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잖아요. 초창기 동아시아의 한류이든, 요즘 BTS든, '오징어 게임'이든, 모두 다 수용 현상이라는 증거입니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와 한국 영화, K팝을 사랑하고, 사랑할 만한 이유가 있는 콘텐츠를 우리가 만들어냈고, 문화 산업의 수준이 그만큼 올라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정부가 막 밀어내고 수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죠.

Q 그러고 보니 K팝에 대한 서구 언론의 논조도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한국의 연습생 시스템에 문제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K팝이라 하면 싸잡아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예술성 없는 공장 상품이라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A 그렇죠.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이라는 게 우리 내부에서도 자아비판을 많이 했을 만큼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제 외국의 이런 시선을 많이 누그러뜨린 게 BTS죠. BTS가 '힙합 아이돌'이라고 하면서, 힙합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나왔는데, 힙합은 자기 목소리로 얘기를 해야 되는, 우리가 진정성(authenticity)이라고 부르는 게 정말 중요한 장르이잖아요. BTS가 이 길로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 인정받은 건데, 비평가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단지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라, BTS가 스스로 자기 목소리로 가사도 쓰고 작곡도 하는 그룹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서구의 기준으로는 '예술가'라고 하려면 반드시 이런 자발성, 자기 창의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랬던 거죠.

K팝의 여러 문화적인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BTS가 이걸 가능하게 했고, 요즘 많은 K팝 그룹들은 자체적으로 프로듀싱을 해요. 그러니까 기준을 굉장히 높이 올려놓은 거죠. 노래하고 춤만 잘 추는 게 아니라, 작곡도 해야 하고, 온갖 걸 다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성공하는 길이라는 건 좋은 대학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대안의 길이 열렸고 많은 젊은이들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활성화되고 있는 거죠.

한류 연구, 한국이 오히려 더 열악하다



Q 한류에 대한 '편견'을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한류 자체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한류 연구는 어떤 상황인가요?

A 해외에서는 주로 한국학 과목이나 학과가 있는 곳에서 연구하고 있고요, 아니면 영화학과에서 한국 영화를 전공한다거나,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한국 대중문화 연구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군데군데 널려 있고 커지고 있습니다. 요즘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특히 지금 박사 과정을 하고 있거나, 최근에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연구자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 내에서는, 문화 연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생산해 봤자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흡수를 못해요. 이런 연구를 하는 연구소가 있어야 하고, 대학에서 이걸 가르쳐야 자리가 있는 건데, 그 부분에서는 한국이 오히려 굉장히 열악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대중문화 연구하려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상황이에요.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 속도는 너무 빠른데, 나머지 하부 구조가 못 따라가고 있는 셈입니다.
홍석경 교수님과 나눈 얘기가 아직 남았습니다. 이어질 3편에선 전세계에 통하는 한국 콘텐츠의 매력 포인트가 뭔지, 한류 정책은 뭐가 되어야 할지, 다뤄보겠습니다.


김수현 문화전문기자(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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