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종, 시민방위군 활약…파업하는 의사·교사에 성금
당장 군부 쫓아낼 순 없지만 다시 민주정부 세울겁니다”
미얀마 청년 카잉(가명)의 세 손가락 경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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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의 맛을 본 세대잖아요. 이대로 살 수가 없어요.”
지난 9월 한국에 온 미얀마 청년 카잉(가명·20대)은 1990~2000년대 태어난 미얀마의 이른바 ‘엠제트’(MZ) 세대다. 한국의 1987년 6월 혁명과 달리 실패로 끝난 미얀마의 1988년 ‘8888 항쟁’ 세대와는 생활 습관이나 사고 방식이 모두 다르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때부터 2015년 11월 총선거 이후 이어진 미얀마의 ‘짧은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한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젊은 세대는 지난 2월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저항하고 있을까. <한겨레>는 지난달 25일 미얀마인 카잉을 만나 현재 미얀마의 정세와 관련해 미얀마 젊은이들이 느끼는 솔직한 생각에 귀 기울여봤다. 그의 안전을 위해 구체 정보는 밝히지 않는다.
카잉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지난 2월1일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 정권에 대한 미얀마 젊은이들의 높은 반감이었다. 그는 아직 익숙지 않은 한국말로 “군부 정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어느 세대보다 확실하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부의 처절한 폭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평범한 젊은이들이 택할 수 있는 ‘저항 수단’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카잉은 실탄 사격 등 군부의 잔혹한 진압으로 쿠데타 초기와 같은 대규모 시위는 할 수 없게 됐지만, 젊은이들이 시민 불복종 운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군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총을 든 이도 있다. “젊은 친구들 중 일부는 시민방위군(피디에프·PDF)에 들어갔어요. 총을 들고 군부와 싸우겠다는 애들이에요. 체력이 안 되거나 용기가 부족한 친구들은 이 친구들에게 성금을 보내고 있고요.”
전투 장비와 경험이 부족한 시민방위군은 미얀마의 최대 민족인 버마족에 맞서 수십 년간 독립운동을 해온 소수민족 무장세력과 힘을 합치고 있다. 군사정권이라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서로 다른 두 집단이 손을 잡은 것이다. “일부 시민방위군은 소수민족 무장세력에게 군사 교육을 받고, 함께 싸움에 나서고 있어요. 사실 미얀마 청년들은 소수민족의 역사나 상황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현실을 깨닫고 경험하고 있는 거죠.”
직접 투쟁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도 군사정권의 통치에 굴복한 것은 아니다. 쿠데타 직후 시작된 의사·교사·공무원·회사원 등의 파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카잉은 “일부 청년들은 매달 각자 수천짯(수천원)씩 모아서 파업 중인 선생님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부는 이런 지원자까지 찾아내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카잉은 쿠데타 초기 미얀마인들이 유엔(UN), 미국, 유럽 등 국제 사회의 개입과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쿠데타 초반에 많은 젊은이들이 각국 대사관에 몰려가 도움을 요청했어요. 하지만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실망했지만,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난 9개월간의 경험을 통해 미얀마인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며, 국제사회의 개입은 부차적 요소일 뿐임을 느낀 것이다.
미얀마인들의 조용하지만 거센 저항은 거꾸로 국제 사회의 태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지난달 말 정상회의를 열면서 미얀마 군부 최고책임자인 민 아웅 흘라잉의 참석을 배제했다. 미얀마를 포함해 동남아시아 10개국이 모인 아세안이 ‘내정 불간섭’의 관례를 깨고 미얀마 군사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카잉은 “만약 미얀마 상황이 확실하게 군부 쪽으로 정리가 됐다면, 아세안이 흘라잉을 초대했을 수도 있다. 미얀마 시민들이 계속 싸우고 있기 때문에, 아세안도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카잉과 같은 미얀마의 엠제트 세대는 ‘8888항쟁 세대’와 달리 군사정권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미얀마인들이 끝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 믿고 있었다. “예전 ‘8888항쟁’ 세대 중에는 그때 졌으니 이번에도 질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우리는 달라요.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세계가 미얀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지켜보고 있잖아요.”
그의 말대로 미얀마 시민단체(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쿠데타 이후 시민 사망자 수와 구속자 수 등을 날마다 집계해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고, 미얀마 온라인 매체들은 시민방위군의 전투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국이 그랬듯이, 때가 되면 국민들이 다시 일어설테니까 지켜봐 주세요. 당장 군부를 쫓아낼 수는 없겠지만, 2년 정도 뒤면 다시 미얀마에서 민주 정부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카잉은 미얀마인들의 저항의 뜻을 보여주는 ‘세 손가락 경례’를 보여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미얀마 시민군 무장투쟁 ‘확산’…군부 잔혹한 보복
미얀마 쿠데타 군부에 대한 시민들의 군사적 저항이 확대되고 있다. 군부는 마을을 불태우는 등 한층 잔혹하게 대응한다.
미얀마 시민들의 무장 투쟁은 반군부 진영의 임시 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가 지난 5월초 시민방위군을 창설한 뒤 본격화했다. 군부는 시민방위군이 창설된 지 사흘 만에 국민통합정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면서, 이들에 대한 견제를 강화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지난 2월 쿠데타 직후 거리 시위를 벌였지만 군부의 실탄 사격 등 강경 대응이 시작되면서 3월 중순 이후부터는 대규모로 거리에 나서기 어려워졌다. 미얀마 인권 단체 집계를 보면, 최근까지 전체 시민 사망자 1200여명 가운데 쿠데타 이후 두 달 동안 사망한 이들이 절반인 600명에 이른다.
이후 청년과 미얀마 군 탈영병 등이 시민방위군에 입대하는 사례가 늘고, 오랫동안 버마족과 싸워온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일부 시민방위군과 결합하면서 세를 불렸다. 현재 정확한 시민방위군 규모는 추산하기 어렵지만, 지난 7월 미얀마 국민통합정부는 약 8천명이 시민방위군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방위군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등 5개 사단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방위군은 기습 공격 방식으로 미얀마 군을 공격하고 있다. 무기가 부족하고 수적으로 열세인 시민방위군의 고육책이지만, 군부는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민통합정부는 지난 9월7일 군부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군정에 대한 공격이 증가해, 이후 한 달 동안 약 1562명의 미얀마군을 사망케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일에는 사가잉 등에서 시민방위군의 37차례 공격으로 미얀마 군 96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매체들이 전하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의 대응은 한층 잔혹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격이 예상되는 곳에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세우기도 하고, 시민방위군의 근거지로 추정되는 곳이 설령 민간인 거주지역이라도 포격을 퍼붓는다. 지난달 29일 미얀마 군은 서부 친주의 한 소도시를 포격해 전체 2천여채의 주택 중 160여채를 파괴했다. 이 지역 시민방위군이 미얀마 군 1명을 사살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이 지역에는 이전부터 군부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이 대부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준 기자
지난달 29일 미얀마 친주의 탄틀랑 마을이 군부의 포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탄틀랑/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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