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샘 리처드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인종차별과 증오범죄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광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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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을 가지고 있던 한류는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 잘 준비돼 있던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간 셈이다. 그런 면에서 ‘오징어 게임’ 같은 K드라마의 인기 역시 이미 예견된 것이다."
이른바 ‘BTS 한류 강의’ 유튜브로 국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샘 리처드 교수(사회학)의 말이다. 30년째 이 학교에서 인종·민족·문화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4년전 학생들에게 "방탄소년단(BTS)을 주목하라. 앞으로 한류를 모르면 21세기 시장경제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수업 보조 목적으로 촬영했던 강의 장면은 유튜브로 공개돼 조회수 수백만회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 리처드 교수는 “한국 문화의 개성,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적절한 시기에 만나 지금의 한류를 이뤘다”고 분석했다.
10여 년 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판도라에서 K팝을 접한 그는 한류 같은 콘텐트가 미국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특히 4년 전 BTS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기록을 깨는 것을 보면서, 한류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인기를 끌 것을 확신했다.
지난해 화제가 된 강의 영상에선 "다음 세대는 아시아가 이끌 것"이라며 "내게 자녀가 있다면 로마나 파리, 런던이 아닌 서울로 유학을 보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강좌는 처음엔 150명 규모의 수업이었지만 이제는 매 학기 대형강의동에서 700~900명이 수강하는, 학교에서도 가장 큰 강좌 중 하나가 됐다고 한다. 그는 "4년 전 강의에서 BTS를 아느냐고 물으니 5명 정도가 손을 들었는데, 바로 다음 학기에는 3분의 2 정도가 손을 들었다. 지금은 수업 들어오는 학생 중 BTS를 모른다는 학생이 5, 6명 정도"라며 한류 확산 속도를 놀라워 했다.
그는 5년 전부터 수업 보조 목적으로 강의 장면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다 한류와 한국을 분석하는 내용이 국내에서도 눈길을 끌었고, 이 수업 영상에 따로 한글 자막을 달고 편집하는 유튜버들이 생겨났다. 한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새로운 플랫폼 덕에 글로벌한 명성을 얻은 수혜자가 된 셈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30년째 인종·민족·문화 강좌를 해오고 있는 샘 리처드 교수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광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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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교수는 한국이 지금과 같은 소프트파워를 가지게 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업 시간에 "한국은 중국을 따라올 수 없다"고 말하는 중국 학생들이 있긴 해도 13억 인구의 중국과 5500만 명의 한국이 그동안 해 온 것을 보면 한국은 영향력 면에서 이미 중국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또 앞으로 몇십 년 후면 사라질 천연자원이 아닌 기술력에 기반을 둔 경제력, 이번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드러났듯 교육과 과학의 힘을 믿는 것 역시 한국의 강점이라고 봤다.
다만 강의 현장에서 지켜본 바를 바탕으로 한가지 조언을 했다. “너무 질문에 답만 잘하는 사람을 키우는 교육은 피하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이의 질문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는데 너무 정해진 답에만 집중하다 보면 특별함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앞으로 한류를 더 풍성하게 할 이들은 몽상가들"이라며 "이들을 품을 수 있는 교육제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는 그는 지난해 방문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무산됐다며 아쉬워했다. 상황이 좀 나아지면 내년 5월쯤 한국을 찾아 공개 강연 등을 하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인터뷰 섭외를 위해 연락했을 때 그는 수업 후 자신의 집에서 '소맥 폭탄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드라마에서 봤던 소맥을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배워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샘 리처드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봤다″며 인터뷰 후 기자와 '소맥'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필규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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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 스토리, 공감 가는 인물들"…K드라마 인기 비결
'원조' 한류팬이라며 수업 후 찾아 온 샘 리처드 교수의 수강생 메이슨 폴(왼쪽)과 오드리 키언. 이들은 한류가 이제 여러 인종이 즐기는 주류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광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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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강의실에 있던 이들 중에도 골수 한류 팬이 많았다.
이들은 이제 한류를 미국의 주류문화 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봤다. 수업을 듣고 있는 오드리 키언은 "고등학교 때만 해도 아시아계 친구들과 K팝을 즐겼지만, 지금은 백인이나 흑인 친구들까지도 틱톡, 인스타그램에 K팝을 올린다"고 말했다.
수업 조교인 조이 칠스는 본인이 소녀시대, 샤이니부터 좋아했던 원조 한류 팬이라고 했다. 자신들만 알고 있던 한류가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 됐지만 서운하진 않다고 했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해 온 한류 스타들은 그런 인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들은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한국 드라마에 대해서도 평론가급의 분석을 내놨다.
칠스는 "오징어 게임을 봐도 전혀 예상 밖의 스토리지만 금전적으로 힘들어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많은 미국 사람들과 겹쳐진다"며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수강생인 메이슨 폴은 "미국 드라마는 등장인물의 행동에 집중하는 반면, 한국 드라마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서 "주인공들의 키스신만 12 각도로 촬영하는 디테일도 한국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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