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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월드리포트] "꼴찌도 아닌데"…일본 지자체, '매력도 순위'에 일희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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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발표되는 순위…군마현이 강력 반발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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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오사카, 교토, 후쿠오카, 후쿠시마...우리나라의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일본의 행정단위는 현(縣)입니다. 다만 4개 지역을 예외로 두고 있는데요, 수도 도쿄는 중심의 23개 구(區)와 주변 26개 시 등을 합쳐 도쿄도(都)라고 하고, 오사카와 교토도 중심이 되는 오사카시(市), 교토시(市)에 주변 지역까지 더해 각각 부(府)로 부릅니다. 가장 북쪽의 홋카이도는 전체를 하나의 광역 행정구역으로 하는 대신 도(道)입니다. 이런 광역 지자체가 일본에는 모두 47개가 있어서 흔히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이라고 함께 묶어서 부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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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 끝 남중국해의 오키나와만 빠져 있는 일본 광역 지방자치단체 위치와 이름 (이미지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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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7개인 우리나라의 광역 지방자치단체보다 30개나 많아서 저도 특파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일본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거나 하면 늘 지도를 찾아보는 게 습관이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데다 일본 미디어는 모두 한자로 쓰기 때문에 독음을 외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일부 현의 한자는 쓸 때마다 헷갈리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쓰지 않는 한자가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갑자기 일본 지리를 들고 나온 이유는 이겁니다. 일본 도쿄의 민간 싱크탱크인 '브랜드총합연구소'가 매년 4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도도부현'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이미지 조사를 이맘때 발표하는데, 이 가운데 '매력도' 조사 순위가 일본 언론에 크게 인용되고 화제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이 조사는 지난 2006년에 시작돼 올해로 16회째를 맞았는데요, 각 지자체에 대해 인지도와 매력도 등 모두 89개 항목의 설문으로 조사를 한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올해 조사에 대해 인터넷 설문을 통해 일본 전역의 20대에서 70대 남녀 소비자 3만 5489명을 상대로 지난 7월 5일부터 20일에 걸쳐 실시했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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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자체 매력도 조사를 실시한 브랜드총합연구소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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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씀드리면 일본의 47개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1년에 한 번 '인기투표'를 실시한 결과인데요, 16년이나 자료가 축적되다 보니 해가 갈수록 이 매력도 조사 결과를 둘러싼 이런저런 말들이 나옵니다. 당연히 '1위'에 가장 관심이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홋카이도(73.4점)가 무려 13년 연속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서 주변의 일본인들은 '아, 그런가 보다'하는 반응이더군요. 만약 홋카이도가 다른 지자체에 1위를 내주었다면 큰 화제가 되겠지만, 2위인 교토부(56.4점)와 점수 차를 20점 가까이 크게 벌린 1위라서 홋카이도의 아성을 넘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교토부도 13년째 부동의 2위를 지키고 있고요, 그 뒤를 바짝 뒤쫓는 지자체는 오키나와(54.4점)입니다. 일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이 순위는 '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 교토, 오키나와 모두 일본에서는 손꼽히는 여행지죠. 4위는 도쿄도(47.5점), 5위는 오사카부(42.0점)입니다. 올해 순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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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 광역 지자체 매력도 순위표. 괄호 안은 지난해 순위


1위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것이 최하위입니다. 매년 일본 언론들의 관심은 큰 순위 변화가 없는 상위권보다 이쪽에 더 집중됩니다. 올해는 도쿄 동북쪽의 이바라키현이 11.6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꼴찌에서 두 번째는 12.8점의 규슈의 사가현, 그다음이 14.4점을 기록한 수도권의 사이타마현입니다. 지난해 최하위를 기록한 도치기현은 올해 41위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올해 최하위를 기록한 이바라키현이 원래 '꼴찌 전문'이었는데요, 지난해 무려 42위로 다섯 계단이나 순위를 올렸다가 다시 맨 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위권 지자체들은 3만 5천 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대부분 '전혀 매력이 없다'라고 답했다는 얘기인데요, 관광으로 방문하기에는 큰 재미가 없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들 하위권 지자체들의 반응입니다. 꼴찌가 익숙할 만도 한 이바라키현의 오이카와 지사는 11일 기자회견에서 "매력은 여러가지로 해석하는 방법이 있고, 그 각각이 모두 유일하다"라며 선문답 같은 반응을 내놨습니다. 오이카와 지사는 공식적으로는 "이번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매력도 상승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올해 다시 최하위로 순위가 돌아온 것에 대해서는 "(조사 회사가) 그런 시나리오를 미리 그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장 재미있으니까"라고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꼴찌에서 두 번째인 사가현의 야마구치 지사는 "사가현의 좋은 점은 재방문자가 많다는 것.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우리 지역의 매력을 확실히 전하겠다"며 지극히 교과서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44위를 기록한 군마현의 반응이 일본 언론들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군마현의 야마모토 지사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 10일 본인의 블로그에 "이런 근거도 불명확한 순위에 휘둘릴 일은 없다"며 "의연히 대응하겠다"고 반발했습니다. 12일에는 임시 기자회견을 열고 "대응 팀을 설치해 법적 조치를 포함한 검토에 들어갔다"고도 말했습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40위를 기록했던 순위가 44위로 내려간 것에 대해서는 "왜 지난해부터 순위가 내려갔는지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데, 이런 조사로 군마현은 매력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런 순위 발표 때문에 군마현 주민들의 자긍심이 상처를 받았고, 관광 산업 등 경제적 손실로도 연결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습니다. 야마모토 지사는 적극적으로 TV 인터뷰에도 응해 하위권의 '억울함'을 강한 어조로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정작 '매력도 꼴찌'인 이바라키현보다 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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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현 지사 "법적조치도 검토"(출처 : 아사히 신문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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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실시한 브랜드총합연구소도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연구소의 다나카 대표는 어제(14일) "우리 회사와 설문에 응답해 준 분들에 대한 음해와 비방"이라며 야마모토 지사에게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야마모토 지사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한 순위 선정의 근거는 결과 보고서에 명확하게 기재돼 있다면서 "불만이 있으면 우리에게 문의하거나 상담을 요청하면 되는데 정작 군마현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고 말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전했습니다.

그럼 군마현 지사는 꼴찌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강하게 반발했을까요? 단순히 지난해보다 순위가 하락했다는 점에 분노해서 '법적 대응'까지 언급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사가 기자회견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반발의 핵심은 관광산업, 즉 지자체의 경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지난 8월 하루 신규 확진자가 2만 명을 넘나들었던 일본의 코로나 상황이 최근 세 자리로 많이 진정되면서 새로 취임한 기시다 정권은 내수 경제 활성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잠시 시행됐다가 코로나 4차 유행으로 급히 중단된 여행 촉진 정책 '고 투 트래블(Go To Travel)'입니다. 10월부터 일본 전역에서 코로나 긴급사태가 모두 해제되고 음식점의 영업 제한도 상당히 완화된 뒤 각 지역에서 유동인구가 다시 5차 유행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행비 절반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촉진책의 재실시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군마현의 반발은 그동안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 지역 관광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를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분노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유성재 기자(ven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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