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졸업 뒤 13살에 공장 취업
차별 받는 삶 탈출 위해 ‘주경야독’
사법시험 합격 후 인권변호사 활동
‘노무현 변호사’ 강의 듣고 뜻 굳혀
2010년 재도전한 성남시장에 당선
20년 만에 민주당 출신 경기지사도
강력한 추진력 바탕 정치이슈 선도
‘뉴딜’ 루스벨트의 강한 리더십 추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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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출신 소년 노동자에서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후보가 걸어온 길이다. 그는 돈도, 백도 없이 ‘맨주먹’으로 세상에 맞서며 성장한 ‘아웃사이더’이자 ‘변방의 장수’다. 국회의원 경험도 없다. 오로지 기초·광역단체장으로서 낸 성과를 밑천 삼아 대권에 한 발짝 다가섰다. 한 여권 관계자는 “우리가 ‘중앙군’이라고 자신하며 ‘지방군’인 이 후보를 그간 너무 얕봤다”고 말했다. 다선 국회의원에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 화려한 경력으로 무장한 당내 경쟁자들도 ‘대세’의 흐름에 올라탄 이 후보를 당해낼 수 없었다. 과거에는 ‘대선 후보의 무덤’으로 불렸던 경기지사직을 지키며 유력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른 이 후보가 향후 이 나라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주인공이 될지 각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초교 졸업 후 공장서 일하며 장애 얻어
그는 가난했다. 경북 안동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뒤 경기 성남으로 온 가족이 이주했다. 없는 살림을 개선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부모의 선택이었다. 상대원 시장 뒷골목의 한 반지하 단칸방이 첫 보금자리였다. 이 후보는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 속에 일당 400원을 받기 위해 13세 때부터 공장으로 출근했다. 어린 나이가 걸림돌이 될까 봐 형 이름을 도용해 위장취업도 수차례 했다.
다섯 번째로 취직한 야구 글러브 제작 공장에서 사달이 났다. 프레스 기계에 왼팔 손목을 눌렸다. 위장 취업한 마당에 산재 처리는 언감생심이었다. 간단한 치료만 받고 복귀했다. 결국 손목이 뒤틀린 채 자라 팔이 굽었다. 이로 인해 6급 장애 판정을 받았고 군 면제도 받았다. 그 팔은 지금도 곧게 펴지지 않는다.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 이재명 캠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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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내 폭력과 저임금에 시달렸던 이 후보는 단순히 ‘관리직’이 되는 게 해법이라는 생각에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치렀다. 그게 장학금을 받으며 중앙대 법대에 진학해 향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판검사 대신 인권변호사 선택
이 후보는 1986년 대학 졸업 직후인 그해 7월 사법시험 재수 끝에 합격해 이듬해 사법연수원 18기로 입소했다. 당시는 우리 사회 민주화 열망이 매우 높았던 시기로, 사법시험 성적과 연수원 성적이 우수한 이들이 판검사 임관 대신 변호사로 개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군부정권 치하에서 임용장을 받지 않겠다는 기개였다.
1989년 사법연수원 졸업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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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 역시 사법시험 성적은 중간, 연수원 성적은 합산 3할 내에 드는 상위권이어서 충분히 판검사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뜻을 함께하는 동기들과 “양심과 신념에 따라 각자 지역으로 돌아가 변호사로 개업하자”며 일종의 ‘도원결의’를 맺었다. 결의에 함께한 이들 중에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도 있었다. 이때부터 정 의원은 든든한 형이자 동지로 이 후보와 함께하고 있다.
이 후보는 당시 결정과 관련해 법관 출신 노무현 변호사(훗날 대통령)의 연수원 강연을 듣고 나서 뜻을 굳혔다고 밝히기도 했다.
◆약속대로 시민운동에 ‘올인’
이 후보는 1989년 변호사로 개업하자마자 동기들과 약속대로 시민운동에 ‘올인’했다. 우선 경기 여주·이천·광주에서 노동상담소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여주·이천 지역은 노동운동이 불붙던 서울과 달리 권리의식이 낮고, 노조 조직률도 매우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와 함께 활동했던 김재기 전 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청년 시절 처음 만났을 때 이 후보는 진실함 그 자체였다”고 기억했다. 김 전 대표는 “이 후보는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을 높이는 활동을 많이 했다”면서도 “가르치려는 것보다 친구로서 역할을 더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버스를 타고 이천 사무실을 찾았던 이 후보가 작성한 상담일지는 6개월 만에 300권을 돌파했다고 김 전 대표는 전했다.
1990년대 중후반 인권 변호사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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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지역에서는 1995년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수도권남부저유소 수도권공동대책위원회에서 노무현 당시 변호사를 다시 만나 함께 호흡을 맞췄다. 2000년 ‘분당·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공권력에 3년간 맞섰고, 2002년에는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추적·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검사를 사칭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이 후보 측은 방송국 PD가 당시 성남시장과 통화에서 검사를 사칭했으나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한 혐의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2004년에는 시민 서명을 받아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발의했지만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다수를 점한 시의회에서 토론 없이 47초 만에 부결되자 거세게 항의했다. 이때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차 전과가 생겼다.
◆‘루스벨트 리더십’ 추구
정치권에는 2006년 첫발을 내디뎠다. 성남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고, 이후 총선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되며 직업 정치인으로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숙원이던 성남시립의료원 건립을 추진했으며, 3대 무상복지 정책(청년배당·무상산후조리지원·무상교복)을 발표해 전국적 관심을 불러모았다. 박근혜정부가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이 후보는 뜻을 관철했다.
2016년 6월엔 박근혜정부의 지방자치 억압에 항의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11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는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그해 10월 29일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촛불집회에 현역 정치인 중 가장 먼저 참석해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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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으로 치러진 2017년 ‘장미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성남시장을 사퇴하고 경기지사에 도전해 20년 만에 민주당 출신이 경기도를 탈환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후보는 경기지사로 재임하면서도 계곡정비,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추진, 전 도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으로 정치 이슈를 선도했다. 이 후보가 향후 대통령이 될 경우 기초·광역단체장 시절과 같이 강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국정운영을 해나갈 것이라고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이 후보가 최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저서 ‘온 아워 웨이’를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고 전했다. 이 책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경제 대공황의 늪에 빠진 미국을 ‘뉴딜 정책’으로 건져내기 위해 펼친 국정운영 과정을 담고 있다.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이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신산업시대 선도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생각을 이 후보가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캠프 관계자는 “이 후보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공무원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후보가 지난 7월 발표한 대선 출마 공식선언 영상은 사실상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을 ‘보이는 라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강력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이 후보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연출이었던 셈이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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