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율법 내세워 노래·음악감상 등 금지
악기 연주도 안 돼… 노래방 손님 내쫓기도
최근 아프간 소녀 축구선수 포르투갈 ‘망명’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아비센나대학에서 남녀 학생 구분을 위해 강의실 한가운데 커튼을 친 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음악을 혐오하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음악학교와 오케스트라 공연 등이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아프간 국립음악학교(ANIM)에 다니던 학생 및 졸업생, 교수진 등 101명이 전날 아프간을 탈출해 포르투갈로 떠났다. 포르투갈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인도적 차원에서 아프간 탈출자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얼마 전 아프간 여자 청소년 축구팀 선수들도 무사히 포르투갈에 도착해 따뜻한 환영을 받은 바 있다.
이번 탈출 행렬에는 학생 약 50명이 포함됐다. 상당수는 여성 오케스트라단 ‘조흐라’ 단원들이었다. 탈레반은 소녀들의 학교 교육과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들이 떠난 후 현재 ANIM 건물과 교정은 텅 비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음악인들은 1차 집권기(1996∼2001)에 이어 20년 만에 재집권한 탈레반이 과거 음악 활동을 탄압했던 역사를 되풀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로 탈레반은 과거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내세워 노래 부르기와 음악 감상 등을 금지했다. 탈레반 대변인 빌랄 카리미는 “이번에도 음악이 금지될 것이냐”는 질문에 “현재 검토 중이며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1차 집권 후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음악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탈레반 소속 일부 대원은 윗선의 검토와 무관하게 이미 자체적으로 음악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 지난달 카불의 한 노래방에 탈레반 대원들이 들이닥쳐 아코디언 등 악기를 부수고 간판을 철거한 뒤 손님들한테 “이런 곳에 드나들면 안 된다. 당장 돌아가라”고 윽박지른 것이 대표적이다.
8월 말 우리 공군 수송기편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임시생활 숙소에서 축구공을 차며 뛰어놀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프간을 대표하는 음악 교육기관인 ANIM은 2001년 탈레반 퇴거 후 친미 정권이 다스리던 2010년 아마드 사르마스트 이사장에 의해 설립됐다. 탈레반 시절과 정반대로 남녀 구분 없이 한 교실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아프간과 서양 고전음악을 두루 다뤘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공연하며 서방 세계에 ‘새로운 아프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호주에 머물고 있는 사르마스트 이사장은 ANIM 학생 및 교수진의 무사 탈출 소식에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어제 몇 시간을 울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제자와 동료 음악인들이 망명한 포르투갈에 다시 학교를 세워 이들이 계속 교육을 받고 또 가르치며 공연 등 대외활동도 이어갈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