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간) 탈레반을 지지하는 시위가 열리는 동안 카불대 교육센터 강당 안에 서 있는 여성들의 모습. 카불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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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이 임명한 카불대학교 신임 총장이 ‘이슬람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여성은 학생도, 교사도 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여성 교육을 무기한 금지한 것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8일 보도했다.
2주 전 탈레반이 지명해 카불대 총장이 된 모하마드 아슈라프 가이라트(34)는 27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진정한 이슬람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여성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에서 일할 수 없다”며 “이슬람이 먼저다”라고 밝혔다.
가이라트 총장은 아프간 학교들을 ‘매춘의 중심지’로 보는 운동의 추종자라고 NYT는 전했다. 아프간 교원노조는 지난주 탈레반 정부에 가이라트 총장 임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탈레반은 가이라트를 아프간 최고 대학의 총장 자리에 앉혔다.
앞서 탈레반은 대학에서 남녀가 커튼 등으로 분리된 채 수업을 듣도록 지침을 내렸다. 여학생에게는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여교사에게만 수업을 받도록 하는 등 여러 제한을 뒀다. 일부 사립대 여학생들은 복학했지만, 공립대는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 대학생 수만 명이 집에 머물고 있다. 학교가 문을 열어도 여교사가 적어 여학생들이 온전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NYT는 전했다. 탈레반의 규제를 우려해 학교를 떠난 교육자들의 자리는 학문적 경험이 거의 없는 무슬림들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달 수도 카불을 탈환한 탈레반은 포괄적인 정부 구성과 샤리아(이슬람 율법) 내 여성인권 존중을 공언했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 새로 구성된 과도정부는 탈레반 강경파 남성들이 주축이 됐으며, 여성 대표는 단 한 명도 없다. 탈레반이 탄압에 맞서 시위하는 여성들을 채찍과 막대기로 폭행하고, 보안 문제를 이유로 여성의 직장 복귀를 금지한다는 보고도 이어지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탈레반은 여성부를 폐지하고 1차 집권기에 도덕 경찰로 활동하던 ‘기도·훈도 및 권선징악부’를 부활시켰다. 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한 탈레반 1차 집권기(1996~2001년)의 공포가 재연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 탈레반은 여성 교육·취업을 금지했다. 또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부르카(전신을 가리는 복장)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하고 남성 보호자(마흐람)의 동행 없이 공공장소에 출입하는 것을 막았다.
2001년 아프간을 침공한 미국이 아프간 대학 인프라에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면서 여성도 교육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올해 기준 아프간 내 고등교육 기관은 150개 이상으로, 학생 50만명이 교육받았고 이 가운데 3분의 1이 여성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간을 재장악하면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는 끊겼고,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아프가니스탄 아메리칸 대학교는 탈레반에 인수됐다.
지난해 11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이슬람국가)의 카불대 총격으로 만성 통증과 트라우마를 앓게 된 카불대 여학생(22)은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모든 노력이 사라진 것 같다”며 “살아서 이것(탈레반의 폭력)을 보는 대신, 지난해 공격에서 급우들과 함께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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