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대한민국4.0 Ⅳ: 어젠다 K-2022]<9>종합좌담회 ①"아직도 민주화 터널…대리기사정치 안돼"
6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열린 머니투데이 -공공정책전략연구소(킵스)의 '어젠다K-2022’ 종합좌담회. 사진 오른쪽 앞부터 시계 방향으로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김관영 킵스 공동대표(전 의원), 김성식 전 국회의원.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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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가 자기 위치에서 대못을 박아놓고 그 경직된 신념을 홍보하면서 표를 긁어모았다"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
"5년에 한 번씩 블랙홀로 빨려간다. 모든 이들이 후보들 앞에 이열종대로 설뿐 아무도 시대적 의제를 말하지 않는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제20대 대선이 17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정치 공간에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자고 나면 쏟아지는 각종 의혹 제기와 넘쳐나는 네거티브 공세에 비해 국가적 어젠다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선거에서 한번 이기면 독점적 권한을 휘두르는 '대권'의 시대에서 타협과 공존의 공론장이 작동하는 '시민권'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묻혀 버린다.
우리나라 정치·사회학계를 대표하는 석학들은 "문제의 핵심을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며 현재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리기사에게 운전대를 넘겨버리듯 대한민국호의 운명을 제왕적 대통령제에 더 이상 맡길 수 없다는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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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반만에 기대가 실망으로…"아직도 민주화의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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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는 이달 6일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공공정책전략연구소(킵스·KIPPS)와 함께 '어젠다K-2022' 종합좌담회를 열고 대선을 앞둔 현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를 점검했다. 이날 좌담회는 김관영 킵스 공동대표(제19·20대 국회의원)의 진행으로 송호근 포스텍(포항공대) 석좌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김성식 전 국회의원(제18·20대)이 참여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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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4년 반 만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버린 현실을 진단했다. 박 교수는 "6월 항쟁 이후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와 자유화가 진행될수록 사회의 인간화나 통합화는 점점 멀어지고 칸트식 표현을 빌리면 국가의 번영과 인간의 불행이 공존하는 상황이었다"며 "6.29 선언이 민주주의를 세웠다면 촛불시위로는 공화국의 모습을 갖추기를 기대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연립정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책연대, 입법연대만 했었어도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 그러기는커녕 더 강력하게 진보 노선을 강화하다가 결국은 공공성과 통합성이 붕괴되고 절차와 내용 면에서도 진보 가치와 이념조차 완전히 실종됐다"고 말했다. 진보·보수를 떠나 시민사회와 의회, 사법부(헌법재판소)의 의사가 일치해 탄핵을 이뤘지만 정작 새 정권은 공공선을 추구하기보다 자기 진영의 입장만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아직도 민주화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며 "국민들은 다시 민주주의의 초원으로 나오기를 바라는데 어떻게 나올 것이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직선제 이후 7개 정부(노태우~문재인 정권)가 모두 분절돼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비극도 지적됐다. 내 손으로 뽑는 대통령을 쟁취했지만 시민권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5년 주기의 대립과 반목을 거듭한다는 의미다.
송 교수는 "선진 민주국가는 연속과 단절이 있는데 우리는 전부 다 단절"이라며 "진보와 보수가 가장 대화와 타협이 안 되는 방향으로 고착됐기 때문인데 그 중심에 대북과 분배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자기 위치에서 대못을 박아놓고 그 경직된 신념을 홍보하면서 표를 긁어모았다"며 "구조적 신념, 고착화된 말뚝을 정체성으로 여기고 타협하면 배신이라고 한다. 우리 민주정치의 특성인 이 말뚝을 뽑아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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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 정치' 안돼…"다음 세대에 절망밖에 줄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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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 비유도 들었다. 송 교수는 "대권의 시대에서는 대리기사(대통령)한테 다 맡겨버렸다. 음주운전을 하든 엉뚱한 길로 가든 한번 선택하면 목숨까지 넘겨야 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이 비유에 적극 공감한 김성식 전 의원은 "책임과 권리가 동반 상승하는 사회 전체의 민주화가 이뤄지지 못해서 더 심각한 각자도생, 무한경쟁의 시대가 민주화의 동전에 양면처럼 됐다"며 "한번 대리기사를 뽑아놓고 열중쉬어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대의정치를 개선하는 것이 시민권의 시대로 가는 과제"라고 말했다.
한국 민주정치가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미래세대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청년 문제가 화두로 나오자 송 교수와 박 교수 등 참석자들은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다.
송 교수는 "제일 부끄럽고 화가 나는 건 젊은 세대한테 할 말이 없다는 것"이라며 "베이비 부머들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돼 있고 연금도 받지만 MZ세대는 연금, 일자리, 집, 결혼은 생각을 못한다. 청년들에게 어마어마한 짐을 씌워놓고 기회의 문도 못 열게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세계 최저 출산율과 세계 최고 자살률을 언급하면서 "출산 거부는 세대 연장 거부고 자살은 자기 연장의 중단"이라며 "5년마다 정책을 갈아 끼우듯 바꾸는 식으로는 다음 세대에게 절망밖에 줄 게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연일 보도되는 존속살해, 비속살해, 노인 자살률 1등, 정말 뉴스 보기가 두렵다.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동방살해지국이 돼버렸다"며 "민주공화국은 공동체가 같이 산다는 건데 1987년 이후 문명이 극단적으로 발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가 중단될 정도로 문명화가 안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득권 세력에게 강하게 책임을 물었다. 박 교수는 "86세대는 민주화의 업적보다 반(反) 생명화, 반 공화화의 죄과가 훨씬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성식 전 국회의원.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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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이란 말 버려야"…이익동맹의 시민단체 아닌 공론의 시민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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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과제로는 승자독식의 권력 독점 구조 해체를 꼽았다. 박 교수는 "대선에서 가장 절망적인 것은 여야 어느 후보건 우리 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에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 권력을 장악하면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니 정당도 의회도 보이지 않고 후보와 캠프만 보인다. 모든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일부의 지지로 100%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사회가 복잡화 다양화 선진화됐는데 1인 통치체제가 맞느냐. 투표로 나타난 의사가 의회에 비례적으로 반영되고 사회적 자원배분도 비례적으로 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수결을 가장한 다수의 폭력도 비판했다. 박 교수는 "다수결, 다수결 하는데 그 자체가 문제"라며 "(여당이 강행한) 5.18 특별법, 대북전단법, 선거법, 언론중재법 등은 절차적으로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아예 '대권'이라는 단어를 버려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송 교수는 "대권이라는 말 자체가 권위주의의 유산인데 여전히 쓰고 있다. 국가주의고 20세기적 발상"이라며 "국가주의로 끌고 나가는 원심력이 문재인 정권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사회적 연대력으로 국가주의를 다시 민주회랑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주의를 탈피하고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정권과 이익동맹이 돼버린 시민단체 동원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송 교수는 "시민운동은 민주주의의 근간인데 시민운동 자체가 동원의 대상이 되어 특정이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 내지 주창단체로 변질됐다"며 "모든 시민운동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난 20년간 동맹단체, 이익단체로 전환한 모습은 한국 민주주의의 맹점이다.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노동,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인 것도 그런 힘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결국 시민권의 시대로 나아가려면 시민정치가 건강해야 한다. 송 교수는 "시민정치는 권리, 책무, 참여, 이 세 가지가 핵심인데 대체로 이념적 친화성을 기준으로 한 선별적 동원정치였고 혜택 나누기에 급급했다. 권리를 강조했을 뿐 책임은 묻지 않았다"며 "참여 형태는 '시위' 하나뿐이었다. 권리 확보에 보답하는 '무엇을 할 것이냐'(책무)가 빠졌다. 보편이익보다 특수이익을 과도 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민정치는 토론모임이 기본이다"며 "집에서 광화문으로 바로 뛰쳐나오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관영 공공정책전략연구소(킵스) 공동대표(전 국회의원).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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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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