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아이콘, 선구자, 거물, 예술가, 지도자, 혁신가 등 6개 분야에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을 선정했다. 명단에는 배우 윤여정씨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포함됐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저항한 미얀마 시민들도 이름을 올렸다. 미 철군 작업이 시작된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순식간에 점령한 탈레반 지도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 과도정부 부총리 대행도 포함됐다.
■‘거물’ 부문에 배우 윤여정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윤여정씨가 지난 4월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활짝 웃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순자 역을 연기한 윤씨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로스앤젤레스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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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에 ‘순자’ 역으로 출연해 지난 4월 한국인 최초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씨(74)는 거물 부문에 선정됐다. 윤씨는 <미나리>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기도 했다.
윤씨는 각종 시상식장과 인터뷰에서 ‘뼈 있는 농담’을 잘 던지기로도 유명하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무대에서 내려오며 대화한 브래드 피트에게 어떤 냄새가 났는가’라는 질문에는 “냄새를 맡지 않았어요. 저는 개가 아닙니다”고 답했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모든 상이 의미있지만 이 상은 고상한 척하는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는 수상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미나리>에 윤씨와 함께 출연한 스티븐 연은 타임에 실린 윤씨에 대한 추천사에서 “윤여정만큼 자신감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 우러난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티븐 연도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예술가 부문에 선정됐다.
윤씨가 선정된 거물 분야에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와 올림픽 육상경기 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미국 여성 선수 앨리슨 펠릭스 등 총 11명이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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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손가락 시위’ 이끈 미얀마 여성들
잇 띤자 마웅 국민통합정부(NUG) 여성청소년아동부 차관(오른쪽)과 시민단체 활동가인 에스더 제 노 밤보.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저항하기 위한 시민들의 ‘세 손가락 시위’를 주도했다. 타임 홈페이지 캡쳐 |
쿠데타 군부에 저항해 반군부 시위를 이끌었던 미얀마 여성 활동가 2명도 올해의 100인에 포함됐다. 주인공은 개척자 부문에 선정된 잇 띤자 마웅 국민통합정부(NUG) 여성청소년아동부 차관과 시민단체 활동가인 에스더 제 노 밤보다. 이들은 미얀마 군부가 작년 11월 치러진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이유를 들어 쿠데타를 일으킨 지 엿새째인 지난 2월6일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첫 거리시위를 이끌었다.
소수민족 전통 의상을 입은 이들은 영화 ‘헝거 게임’에서 유래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세 손가락’ 경례를 한 채 시위대 맨 앞에 서서 쿠데타 규탄 구호 등을 외쳤다. 당시 양곤 시민사회 세력 등이 쿠데타 이후 닷새 동안 이렇다 할 저항 운동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앞장 선 거리 시위를 신호탄으로 양곤에서도 반군부 운동이 이어졌다.
타임지에 소개 글을 쓴 미얀마 작가 미미 에에 따르면 시민단체 카친평화네트워크를 이끄는 에스더는 아웅산 수치 문민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7년 발생한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 사건 당시 미얀마 내에서 로힝야족 문제를 거론한 소수 활동가 중 한 명이다.
잇 띤자도 소수민족 권익 향상을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 온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 4월 구성된 임시정부인 NUG에서 미얀마 역사상 최연소 차관에 임명됐다.
■탈레반 실세 지도자도 명단에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과도정부 부총리 대행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동영상에 등장해 부상설을 부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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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실세 지도자’로 평가받는 압둘 가니 바라다르 과도정부 부총리 대행도 타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지도자 부문에 선정됐다. 바라다르는 탈레반 창설자 중 한 명이며 조직 내 공식 서열은 최고 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 바로 아래 2인자다.
앞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쫓기던 그는 2010년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체포돼 현지 감옥에 갇혔다가 2018년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원하던 미국의 요청으로 풀려났다. 이후 그는 이란, 러시아 등 각국을 누비며 탈레반의 외교를 사실상 책임지는 등 대외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바라다르는 지난해 2월 미국과의 평화협상 타결을 이끌었고, 7개월 뒤 아프간 정부와 평화협상을 주도했다. 지난 7월 중국 톈진(天津)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기도 했다.
최근 바라다르는 부상설, 사망설, 탈레반 연계 조직인 하카니 네트워크와 내분설 등에 휘말렸다. 그는 지난 15일 탈레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부상설과 사망설을 본인이 직접 부인하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탈레반’이라는 책을 집필한 언론인 아흐메드 라시드는 바라다르에 대해 ‘카리스마 있는 군사 지도자’이자 ‘매우 독실한 인물’로 평가했다. 라시드는 그가 전 정부 인사 대한 사면령, 수도 카불 진입 시 폭력 제한 명령, 중국·파키스탄 등과의 접촉 등 탈레반의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인물로 탈레반 내 온건 기류를 대변하는 이라고 설명했다.
지도자 부문에는 바라다르 외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도 이름을 올렸다.
■표지는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부부
영국 해리 왕자(왼쪽)와 아내 메건 마클이 등장한 타임 9월27일자 표지. 타임 홈페이지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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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에서 독립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해리 왕자와 아내 메건 마클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돼 표지를 장식했다. 부부는 지난 3월 미국 CBS 인터뷰에서 왕실을 떠난 이유가 메건 마클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였다고 폭로했다. 부부의 인터뷰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영국 왕실은 왕실 내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뛰고 있는 ‘천재’ 오타니 쇼헤이 등의 이름이 올라왔다. 언론의 인터뷰와 선수생활에 압박감을 느껴 경기를 기권한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와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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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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