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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마지막 길도 초라해야 하나” 분향소 찾은 자영업자들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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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역 앞 분향소 이틀째

영정대신 ‘근조 소상공인·자영업자’

조문객-신원확인 경찰 실랑이도

구청은 방역수칙 준수만 당부

유승민·심상정 등 정치인도 추모

헤럴드경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출구 앞 인도에 설치된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자영업자 비대위)의 분향소 모습. 영정사진 대신 ‘근조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다.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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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8시 10분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가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전날 밤 이곳에 설치한 임시 분향소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이날 새벽 일찍 분향소를 둘러싸고 설치된 폴리스라인 주변에 경찰 20여명이 배치된 가운데, 검은 정장 차림의 김기홍 자영업자 비대위 공동대표가 홀로 분향소 앞을 지키고 있었다. 20분 뒤 검은 상복을 입은 조지현 공동대표가 분향소에 도착할 때까지 분향소에는 정적만 감돌았다.

천막 없이 인도 위에 깔린 흰 천 위에 아침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지만, 지하철역을 나온 시민들은 출근 때문에 분주한 듯 분향소를 흘끗 쳐다만 보고 주변을 지나쳐 갈 뿐이었다. 영정사진 대신 세워진 ‘근조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라고 적힌 팻말 앞에 놓인 흰 국화들과, 모래를 채운 플라스틱 컵에 꽂힌 향들만이 밤새 조문하러 온 자영업자들과 일반 조문객들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분향소 옆 벤치에는 짜장면 등 각종 음식들이 담긴 비닐 봉투와 커피, 소주, 음료수 등이 쌓여 있었다. 지방에 있어 직접 조문하지 못한 자영업자들과 시민들이 힘내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낸 것들이다.

오전 9시가 되자 분향소에 추모하러 온 한 시민이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경찰에 항의하면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60대 손모 씨는 “출근길에 잠깐 들렀는데 경찰이 저지해서 화가 났다. 민주노총이 난동을 부릴 때는 쳐다보지 않은 경찰이 애꿎게 희생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는 곳은 버스 몇대가 모여 지키고 서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곧이어 분향소에는 추모객들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한다는 업주 A씨는 “아침에 가게 문을 열기 전에 왔다”며 “불과 며칠 전까지 나도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어서 사태에 더욱 공감한다. 부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후 경찰이 분향소 입구를 막아 서면서 조지현 공동대표가 추모를 막지 말라고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김기홍 공동대표는 “자영업자들은 희생된 자영업자들의 마지막 추모 공간까지도 초라하단 것에 분노하고 있다”며 경찰의 과도한 추모 저지에 대해 비판했다.

서울 영등포구청은 당초 자영업자 비대위의 분향소 설치를 불법으로 보고 이날 오전 중 분향소를 철거하려다, 분향소 설치 자체는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서울시 입장에 철거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분향소 주변에 나온 영등포구청 직원들은 비대위 측과 추모객들에게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 준수만을 당부하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현장에서 만난 기자에게 “경찰과 영등포구청 측에 여러 사람이 모여 집단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분향소 설치를 저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을 전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자영업자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에도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 정치인들의 추모 행렬이 잇따랐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도 이날 추모 의사를 전달했다.

배 원내대표는 “K방역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게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들이지만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가장 큰 고통에 내몰렸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손실보상은 배제한 채 계속 K방역에 헌신할 것만 요구했다”고 비판했다.

자영업자 비대위는 전날 오후 2시부터 여의도 국회 앞과 여의도공원 인근 도로에서 두 차례 합동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지만, 경찰의 잇딴 저지로 무산됐다. 오후 8시께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 인도에 기습 설치를 시도했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 류호정 정의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이 중재하면서 설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후 10시부터는 영업을 마친 자영업자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비대위에 따르면 밤사이 자영업자, 일반 시민 100여명이 추모를 위해 분향소를 찾았다. 비대위는 18일 오후 11시까지 국회의사당 3번 출구 앞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강승연·김영철 기자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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