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오성한옥마을’은 조용히 은둔하기에도, 차 한잔하며 쉬어 가기에도 좋은 장소다. 종남산 자락 비탈에 24채의 한옥이 들어앉아 있다. 마을 꼭대기의 아원고택은 3년 전 방탄소년단이 화보를 찍고 간 뒤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우리네 한옥이 지닌 탁월한 매력은 역시나 해방감과 안정감이다. 큼지막한 창과 대청마루가 자연을 끌어안듯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다. 세속의 소음은 사라지고, 새가 울고 바람이 들고나는 소리만 남는다. 깊숙한 산골짜기에 둥지를 튼 한옥이라면 그 위력이 더 강하다. 코로나로 시끄러운 요즘은 더욱이 그럴 테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오성한옥마을에 갔다. 한옥 대청마루에 납작 누워 가을바람을 맞고 돌아왔다. 가만히 은둔하기에도, 차 한잔 기울이며 쉬어가기에도 좋은 장소. 마침 방탄소년단이 발 도장을 찍고 간 명소도 마을 안팎에 널려 있었다.
뿌리 깊은 종갓집은 없지만
오성한옥마을은 절묘한 환경에 뿌리내렸다.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종남산(608m), 위봉산(557m), 학동산(465m), 원등산(714m) 등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쪽에 24채 기와집이 비탈을 따라 들어앉아 있다. 저마다 너른 마당과 아름드리 소나무 하나씩 끼고 있는 걸출한 한옥이다. 마을 안쪽으로는 실개천이 흐르고, 빽빽한 편백숲과 대숲이 외곽을 감싼다. 그윽한 풍경이다.
의외로 마을의 역사는 길지 않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오성한옥마을은 마을회관도 없는 산골이었다. 100년 200년을 헤아리는 고택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2013년 완주군의 한옥 지원 사업 이후 들어선 신축 한옥이다. 아궁이에 장작 때는 곳보다 기름보일러를 둔 한옥이 더 많다.
명망 높은 종택 하나 없어도 여행자 입장에선 장점이 퍽 많다. 한옥 24채 대부분이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 형태로 손님을 받고 있고, 정갈한 차림의 갤러리와 찻집이 곳곳에 자리한다. 엄숙한 분위기의 전통마을과 달리 여유와 낭만이 흐른다.
느릿느릿 구석구석
한옥 스테이 ‘소양고택’ 안채에서 내다본 창밖의 풍경. 한옥의 창과 문은 가장 훌륭한 액자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0여 년 전 터를 잡았다는 장택주(61) 전남도립대 한옥건축과 교수 역시 “구석구석 밟고 다녀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주민이 많아 집마다 멋과 개성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를테면 ‘소양고택’은 자수가 어머니와 바리스타 딸이 꾸린 집이다. 어머니가 수놓은 꽃과 들풀이 이부자리와 방석, 고무신 따위의 소품마다 사뿐히 내려앉아 있다. 180년 된 고택 옆으로 근사한 카페와 한옥 서점을 끼고 있다.
공예에 능한 부부가 사는 ‘산수촌’ 마당에는 오밀조밀하게 빚은 토우(흙으로 만든 사람·동물 상) 작품이 늘어서 있다. 자매 동양화가가 사는 ‘녹운재’에는 직접 그려 만든 한지 등불이 분위기를 잡는다. 장 교수의 ‘소담원’은 집 뒤편의 계곡과 울창한 숲을 정원처럼 활용한다.
아원고택의 조식 상차림.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곳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아원고택’도 빠질 수 없다. 건축가 출신 전해갑(66) 대표가 경남 진주에 있던 250년 고택을 2006년 이축해 미술관 겸 한옥 스테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택을 복원하고 단장해, 손님을 받는 데까지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마을 꼭대기에 자리한 덕에 방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도 풍경이 훤히 내다보인다. 전 대표 말마따나 한옥의 창은 하나의 액자이면서, 풍경화다.
대청마루 앞에 배치한 네모반듯한 연못도 절묘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잔잔한 물 위로 종남산도 잠기고, 고택도 기운다.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지만, 나머지 시간은 투숙객에게만 열려 있다. 구수한 누룽지 밥에 삶은 달걀과 계절 반찬을 곁들이는 조식 상차림도 각별하다.
한복 입고 방탄 성지 순례
오성제 옆 한옥문화센터에서 한복을 빌릴 수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원고택은 요즘 ‘방탄 투어 성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방탄소년단의 ‘2019 썸머패키지’ 화보에 등장한 뒤 전 세계 아미가 열광하는 명소가 됐다. 코로나 이전에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방탄소년단이 앉았던 사랑채 툇마루는 주말이면 아직도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위봉산성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방탄소년단 촬영지 안내판이 서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방탄소년단이 발 도장을 찍고 간 장소는 더 있다. 내친김에 ‘성지 순례’도 해볼 만하다. 완주군이 방탄소년단 화보 촬영지마다 ‘완주 BTS 힐링 성지’라는 안내판을 세워두었다. 아원고택에서 위봉산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위봉산성에 닿는다. 조선 숙종 원년(1675)에 쌓은 16㎞ 길이의 성벽으로, 대부분이 소실되고 지금은 서문의 일부가 남아있다. 3m 높이의 이 아치형 석문 위에서 방탄소년단이 사진을 찍었다.
방탄소년단 화보에 등장한 오성제 둑 위 소나무는 일명 ‘방탄 소나무’로 통한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마을 저수지 오성제에는 이른바 ‘방탄 소나무’가 있다. 뚝방 위에 키가 5m쯤 되는 소나무가 홀로 서 있다. 이 나무 옆에서 방탄소년단도 사진을 남겼다. 저수지 건너편에 한복과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한옥문화센터가 있다. 하여 한복(2시간 2만원)을 빌려 입고 방탄 순례에 나서는 이색 체험도 가능하다.
■ 여행정보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한옥문화센터가 오성제 옆에 있다. 마을 안내소이자, 찻집 겸 한옥 스테이 공간이다. 한복·전통놀이(투호·널뛰기) 체험이 가능하다. 무료 마을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건물 뒤편 숲속에 쉼터 노릇을 하는 텐트 9동과 무인 도서관이 설치돼 있다. 아원고택이나 소양고택 같은 한옥은 최소 한두 달 전에 예약해야 숙박이 가능하다. 음식 반입이 어려운 한옥이 더러 있으므로 미리 문의하는 게 좋다.
완주=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