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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美 아프간 철수, 중국몽 깨트리려는 이이제이 전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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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문가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인터뷰

“미국이 빠져나온 수렁에 反美의 중국, 러시아, 이란 빠트려

아프간 개입이 소련제국의 몰락 앞당겼듯이 중국몽도 와해

韓, 自强과 함께 북·미 등에 전략옵션 제공 중재외교 전개를”

세계일보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지역학과 교수.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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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 카드로 중국몽(中國夢)을 저지하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써 오랑캐를 다스림)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CIS지역 전문가인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홍 교수는 워싱턴의 아프간 철수 배경에는 미국이 아프간이라는 수렁을 빠져나오는 대신 반미(反美) 3인방 즉 중국, 러시아, 이란을 혼돈의 늪으로 빠트리는 고도의 전략적 계산이 깔려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로의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과 이로 인한 시짱(西藏)자치구(티베트), 내몽골자치구 지역에서의 분리독립운동 대두를 방지하기 위해 아프간 문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소련 제국의 몰락에서처럼 북경의 아프간 개입은 중국몽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 교수는 이런 상황을 칼(탈레반)을 빌려서 적(중국)을 죽이는 차도살인(借刀殺人)에 비유했다. “미국은 세력 전이를 막기 위해 중국이 아프간의 ‘덫’에 걸리길 내심 기대한다”며 “워싱턴은 홀가분하게 아프간의 혼돈을 즐기면서 미국에 유리한 이익균형과 세력균형을 창출하려는 전략을 강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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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과 주변국. 구글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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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탈레반 카드로 中 죽이기”

-미군 철군 후 아프간은 혼란 상황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프간을 포기했다고 봐도 되는가.

“아프간의 전략적 가치로 보아 그럴 리 만무하다. 미국 경제력을 축내고 대통령의 지지율도 갉아먹는 파병 대신에 영민한 이이제이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쐐기 전략’에서 ‘부담 지우기 전략’으로의 전환했다. 즉 미국이 혼자 감당했던 아프간의 통제 및 부양 부담을 반미 대륙 세력에게 전가해 혼돈의 수렁 속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인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전략이 이이제이라는 의미는.

“아프간에서의 힘의 공백은 인접한 중국, 러시아, 이란에 좌불안석이 아닐 수 없다. 탈레반 정권이 반미 3인방(중국·러시아·이란)에게 안보적 불안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정학적 급소가 될 수 있다.”

-중국에는 어떤 영향을 주나.

“아프간에서 미국의 퇴장은 중화 세력권의 확장이라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이다. 당장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극단적 분리주의 무장단체의 준동에 직면하게 되어 ‘내 코가 석자’다. 탈레반은 같은 수니파인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을 지원해왔다. ETIM의 활동을 약화시켰던 미군 철수로 이제 중국의 신경 줄이 극도로 예민해지게 됐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신장위구르자치구로 번지면 티베트 및 내몽골과 연동되어 중화제국의 웅비에 큰 상처를 낼 수 있다. 2002년 ETIM을 테러단체로 지정했던 미국이 2020년에 제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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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및 민간인 대피 작전을 종료한 지난 8월30일(현지시간)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미군 장병들이 줄지어 미국 공군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카불=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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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이란도 급진적 이슬람 수니파와 대치 불가피”

-러시아, 이란에 미칠 영향은.

“아프간의 악몽을 경험한 러시아도 이슬람 테러 차단의 방파제가 사라져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미국의 반테러 전쟁 이전까지 아프간은 러시아에 현실적 위협세력이었다. 탈레반은 러시아 내전에 개입해 체첸 분리주의 무장반군을 물심양면 지원했다. 체첸 전선에 탈레반 민병대를 참전시켰고 체첸 테러리스트들에게 훈련캠프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배타적 세력권인 중앙아시아 국가들, 특히 타지키스탄 이슬람 원리주의 반군 세력을 지원해 역내 불안정을 조장했다. 미국이 축출한 탈레반 정권이 다시 힘을 얻어 이슬람 극단주의를 수출할 경우, 이것이 중앙아시아를 넘어 2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러시아 내 무슬림과 이슬람 공화국의 분리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탈레반 역시 미국 국무부의 해외 테러리스트 목록에 올라 있지 않다. 이란도 미군 철수를 마냥 반가워할 수 없다. 시아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적의를 드러내는 탈레반 수니파 정부와 맞닥뜨려야 하는 골칫거리가 생긴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에 아프간의 어떤 의미인가.

“역사적으로 아프간은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19∼20세기 초 중앙아시아에서의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경쟁)의 중심 무대였다. 유라시아 패권 장악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여서 그렇다. 미국에 아프간은 발흥하는 중국을 봉쇄하고, 도전하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악의 축 이란을 동시에 견제하는 일석삼조의 지정학적 ‘쐐기’에 해당한다. 알카에다의 소탕과 탈레반 정권 제거라는 반테러 전쟁 목표가 해소되었음에도 지난 20년간 미군이 역사상 최장기 전쟁을 치르며 주둔한 이유다. 아프간 전쟁의 소모적 장기화에는 군산복합체와 에너지 메이저의 검은 이해도 짙게 개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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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8월 28일 중국 톈진에서 탈레반 2인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만나 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 외교부


◆“美, 아프간 혼란 즐기며 이익·세력균형 추구”

-2001년 아프간 침공 후 최근 미군의 철수 배경과 과정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손절’하고 떠났다. 언필칭 강대국의 무덤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2020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탈레반과 2021년 5월 1일까지 미군 철수에 전격 합의하는 도하(Doha) 평화 협정을 맺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8월 31일까지 철군 정책의 완전 이행을 약속했다. 이로써 아프간을 사우디나 쿠웨이트처럼 친미화하려는 워싱턴의 노력은 수포가 되었다. 경제피로 현상을 가중하는 천문학적인 전비를 더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론을 악화시키는 대규모 인적 손실도 도외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프간 친미정부의 부패와 무능은 탈레반 세력이 다시 힘을 얻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 점령 기간 미국은 회수가 보장되지 않은 아프간의 ‘지갑’이었고 민심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빠져나온 수렁에 반미의 중국, 러시아, 이란을 빠트린 격이 됐다. 전망은.

“미국의 아프간 지배는 반미 삼형제의 가려운 부분을 대신 긁어준 측면이 있었다. 유엔 동의 절차를 무시한 아프간 침공에 크게 반발하지 않은 배경이다. 오히려 외교적 수사와는 다르게 미국의 아프간 안정화 정책에 은밀히 협조했다. 미군의 퇴각으로 이제 당사자들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안보적 위협을 차단하고 권력 진공을 메우기 위해 누군가는 아프간 경략(經略)에 나서야 하는데, 중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역시 세력 전이를 막기 위해 중국이 아프간의 ‘덫’에 걸리길 내심 기대한다. 워싱턴은 홀가분하게 아프간의 혼돈을 즐기면서 미국에 유리한 이익균형과 세력균형을 창출하려는 전략을 강구할 것이다. 과거 소련의 아프간 침공 시 미국이 탈레반 반군 지원을 통해 소련제국의 몰락을 앞당겼듯이, 중국몽의 와해를 위해 다시 탈레반 카드를 사용할 공산이 크다. 차도살인은 국제정치학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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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탈출에 성공한 아프간 현지 한국 조력자와 가족이 8월25일(현지시간) 아프간 카불에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향하는 국군 공군 수송기에서 태극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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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국강병 토대로 적극·선제적 중재외교 필요”

-일각에서는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를 사례를 한국 상황과 비교하기도 한다. 이번 사태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있는가.

“미군의 아프간 철수에서 다양한 교훈과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크게 2가지 측면을 강조하고 싶다. 우선 자강(自强)이다. 국제사회에서 영구불변의 동맹은 없다. 과거 태평양 전쟁 때 미국과 일본은 핵무기를 동원한 교전국이었지만 지금은 동맹관계를 이루고 있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과거 5차례 주한 미군 철수 계획이 있었다. 의존은 힘과 외교력을 약화한다. 부국강병을 토대로 부단히 안보와 외교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아프간 철수에 따른 국내정치적 내홍과 후속대책 마련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목록에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중요한 시사점이다. 중단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해 이제 우리 정부가 북·미를 포함한 주변국에 다양한 전략적 옵션을 제시하면서 주도적으로, 선제적으로, 적극적으로 중재외교를 펼쳐야 할 시점이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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