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여성 존중'은 요원…인권단체 "탈레반에 지나친 박수 안돼"
탈레반 정권에 권리 보호 촉구하는 아프간 여성들 |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난 가운데 아프간 여성들의 미래에 아직 빛이 보이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2일 탈레반이 변했다고 주장하지만, 아프간 전역에서 여성에 대한 단속이 시작됐다며 아프간 현지에서 나오는 절망스러운 목소리를 전했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 사는 파르와나는 탈레반이 집권한 뒤 낙담에 빠진 여성 중 한 명이다.
파르와나는 가족 모두를 부양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갔고, 저녁에는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주경야독'을 했다.
그러나 탈레반이 칸다하르를 접수한 뒤 직장 상사는 파르와나에게 더는 직장에 나오지 말라고 말했다.
또 파르와나가 다니는 대학은 탈레반이 요구하는 성별로 구분된 강의를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파르와나는 "내가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지금은 저 자신조차 버틸 수 없다. 여기 여성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또 "이제 밖에 나가기가 겁난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며 슬퍼했다.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잃을 위기에 처한 아프간 여성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가디언에 따르면 아프간에서 보건과 의료 근로자들은 대부분 탈레반이 집권한 뒤에도 직장에 나가고 있고 이들 분야의 여성들은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이슬람 복장)를 착용한 채 일한다.
그러나 나머지 여성들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무기한으로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아프간 고위 관리들은 '언제 여성들이 일터에 복귀하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거나 "곧"이라는 모호한 말을 내놨다.
이 때문에 아프간 여성들은 직장 복귀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이다.
여성에게 교육 문제도 큰 고민이다.
자이나브는 칸다하르에서 과학을 공부하는 여대생이지만 최근 그가 다니는 대학이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서 교육할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자이나브는 학위를 받는 데 한 학기를 남겨뒀지만, 학위 취득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그는 "매우 슬프고 실망스럽다"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밝혔다.
남녀 분리수업 하는 아프가니스탄 학생들 |
최근 탈레반 과도정부는 여성들이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을 허용하면서 성별 분리가 모든 대학에서 시행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프간 내 많은 대학은 아직 남학생과 여학생을 분리해 강의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헤라트대학의 한 교수는 남녀를 분리한 강의에 대해 "우리는 아프간에서 크고 시설이 좋은 대학 중 하나이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학이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을 따로 가르치려면 더 많은 교수와 강의실이 필요하다.
가디언은 탈레반이 25년 전 아프간을 통치할 때와 비교하면 여성 인권 문제에서 변화가 있다고 평가했다.
탈레반이 1990년대 중반 여성 교육을 금지하고 여성 대부분이 직장에 나가지 못했던 상황보다는 지금이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의 재집권 전보다 여성 활동이 크게 제한되고 여성을 존중하겠다는 탈레반의 공언이 무색해졌다.
이에 따라 아프간 여성들의 실질적인 권리 향상을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탈레반을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서 여성 인권 활동을 하는 헤더 바 씨는 "탈레반이 일부를 양보했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지나치게 손뼉을 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에서 불과 한 달 전보다 여성의 삶이 많이 후퇴했다"며 "2021년에 이런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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