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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여전히 고통받는 9·11 희생자 유가족들 "20년 지나도 어제처럼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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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9.11 테러 희생자의 한 유가족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맞은편의 브루클린 브리지 공원에 마련된 낡은 공중전화 부스에서 가족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미 공영라디오방송(NPR)은 9.11 20주년을 맞아 이곳에 공중전화 부스를 설치하고 유가족들에게 희생자를 추모하는 음성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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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그랜드콜라스에게 2001년 9월11일은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날이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에 있는 집으로 오기로 했던 배우자 로렌이 돌아오지 못했다. TV 화면에선 여객기 두 대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에 부딪히는 끔찍한 영상이 반복해서 나왔다. 임신 3개월 차였던 로렌은 자동응답 메시지에 “비행기에 약간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사랑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랜드콜라스는 9일(현지시간) 미 공영라디오방송(NPR) 인터뷰에서 “매년 로렌이 지금 살아있다면 어땠을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2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로렌의 음성이 담긴 자동응답기 재생 버튼을 누른 그는 “아이는 올해 19살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11일은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0주년을 맞는 날이다.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가 납치한 민간 여객기 4대가 뉴욕 한복판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건물 등에 떨어지면서 2977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아프가니스탄에 마지막 남은 미군을 철수하며 ‘테러와의 전쟁’ 종료를 알린 가운데, 미국인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NPR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있던 자리 맞은편의 뉴욕 맨해튼 브루클린 브리지 공원에 낡은 공중전화 부스를 설치했다. 20년 전 갑자기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20년 전 못다 한 말을 음성메시지로 남겨달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며 힘들어했다. 지미라는 이름의 남편을 잃은 한 유가족은 “어제처럼 생생한데 20년이 지났다는 걸 믿을 수 없네. 큰아들은 벌써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는 당신을 쏙 빼닮았어. 보고 싶어”라고 말한 뒤 흐느꼈다.

생존자들도 여전히 20년 전 그날의 고통을 생생히 떠올렸다. 9·11 당시 세계무역센터 59층에서 일하고 있던 생존자 돈 바소는 오전 8시45분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자 “벽에서 들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밖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9시3분,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했다. 9·11 당시 입은 옷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그는 ABC방송 인터뷰에서 “지금도 제트 연료나 콘크리트 먼지를 보거나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목 뒷덜미가 당긴다”고 말했다.

유가족이나 생존자가 아니라도 평범한 미국인 절대 다수가 9·11 당일을 기억한다. 퓨리서치센터는 9·11 테러 당시 15세 이상이었던 미국인의 93%가 테러 당일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는 여론조사를 지난달 발표했다. 2001년 당시 8세였던 라이언 하프는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평생 기억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장면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TV를 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던 아버지였다.

9·11 사태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학교 교사인 메리엔 펜돌라는 플로리다 지역신문 인터뷰에서 “9·11 이후 다시는 내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USA투데이 설문조사에서 국내 테러가 더 위험하다는 응답은 56%로 해외 테러가 더 위험하다는 38%의 응답을 앞질렀다. USA투데이가 지난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85%가 9·11 사태가 “우리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9·11 사태는 미국을 하나로 묶기도, 분열시키기도 했다. 하프는 “9·11 이후에 모두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기억한다. 잠시뿐이었지만, 모두가 마치 하나의 대가족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오도 커졌다.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서 ‘이슬람교도가 다른 종교 신자들보다 폭력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 응답자는 2002년 25%에서 지난달엔 50%로 19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같은 답을 한 민주당 지지자는 32%였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72%였다.

이슬람교를 믿는 미국인들은 9·11 이후 다른 아픔을 겪었다. 하버드대 최초의 이슬람 여성 목사인 사미아 오마르는 하버드 가제트 인터뷰에서 “9·11 이후 모든 주변 환경이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9·11에 대한 기억이 없는 하버드 대학생 아난 하페즈(22)는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유치원 때부터 끊임없이 놀림받았다”면서 “나는 6살 때부터 중동의 지정학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종교와 알카에다, 탈레반, 이슬람국가(ISIS)의 차이점에 대해 가르쳐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오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국방부 청사에서 9·11 테러 20주기 추모식을 연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이날 맨해튼의 9·11 기념관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초청해 베르디의 레퀴엠을 연주한다. 맨해튼 도심 곳곳에서는 이날 밤 조명으로 무너진 쌍둥이 건물의 이미지가 재현될 예정이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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