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식을 두 번 올리는 북한 결혼식

매일경제 이성희
원문보기

식을 두 번 올리는 북한 결혼식

서울흐림 / 7.0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몰랐던 북한 시즌2-23] 최근 들어 주변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지인들이 많아졌다. 며칠 전에도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웨딩홀을 다녀오면서 북한에서 여러 번 봤던 결혼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한국에서 결혼식 하면 웨딩홀이 먼저 떠오르는데 북한은 어떨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하여 오늘은 북한의 결혼식 문화를 소개해보려 한다.

먼저, 북한에서 신랑 신부는 결혼식 상을 두 번 받는다. 다시 말하면 식을 두 번 치른다는 것이다. 보통 신부집에서 잔칫상(결혼식 상)을 받고 신랑 집에서 두 번째 결혼식 상을 받는다. 신부집으로 갈 때 신랑 측에서 대체로 차를 타고 가는데 그것은 첫 번째 식이 끝난 다음 신부를 신랑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이다.

한국처럼 집집마다 자가용이 없는 북한에서 차는 비용을 주고 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에 어떤 차를 가져오는지는 사람마다, 그 집의 능력에 따라 다르다. 흔히 '손 없는 날'에는 결혼식이 몰려 차를 대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공장 기업소에 등록된 차들, 높은 간부들이 타는 차들, 심지어는 화물트럭까지도 결혼식 차로 등장하는데 그 모습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최근에는 평양이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결혼식 식당에서 한 번에 끝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직접 한다. 음식을 만들고, 잔칫상을 차리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까지 모든 과정을 신랑 또는 신부의 가족들이 도맡아 한다. 동네에 결혼식 집이 있으면 그 분주한 모습은 마치 자그마한 동네 축제를 방불케 한다. 마을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를 도와주기도 하고, 결혼식 당일에는 동네의 거의 모든 집에서 대표적으로 한두 명씩 참여한다. 또한 초대되진 않아도 결혼식 차가 오거나 밖에서 사진을 찍으면 신랑 신부를 구경하기 위해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어릴 때 가끔 동네에서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잔치 음식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2000년대 초중반으로 축의금을 현금으로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쌀 1㎏, 또는 쌀 2㎏ 이런 방식으로 부조를 했다. 보통 쌀은 자그마한 대야에 깨끗한 보자기를 싸서 가져가는데 끝나고 돌아올 때는 빈 그릇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준비한 갖가지 음식을 담아서 보낸다. 이런 이유로 결혼식 집에 직접 가지 않아도 보내주는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었다.

필자는 북한에서 함흥, 순천, 평양 등 여러 지역의 결혼식에 가보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평양을 찾았을 때이다. 북한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가 김일성 동상과 김정일 동상에 인사하는 것인데 평양에서 대표적인 장소는 만수대 언덕이다. 당시 신부집에서 첫 번째 상을 받은 신랑 신부는 차를 타고 만수대 언덕으로 갔다. 인사한 이후 그들은 여러 콘셉트로 사진을 찍었는데 마치 한국의 웨딩 촬영과 비슷했다. 신부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신랑, 여러 번 바꿔 입는 옷, 신랑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신부의 모습, 반지를 끼워주는 모습 등 지방 결혼식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사진들이었다.


최근에는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웨딩 촬영을 크게 하는 모양이다. 북한에 있는 사촌 동생이 최근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한국식으로 만든 한복을 9번 바꿔가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게다가 양가에서 두 번의 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한집에 모여 하거나 식당에서 결혼하는 커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봤을 때 북한의 결혼식 문화도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남과 북의 결혼식 문화는 달라도 사랑하는 커플이 평생 함께할 것을 서약하는 의식이라는 의미는 같다. 또한 행복하게 살라고 축하해 주는 가족들, 지인들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면에서 남과 북의 결혼식은 어쩌면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이성희 통신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