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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시장서 만난 빈대떡 아줌마…가슴이 찡했다"

매일경제 연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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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시장서 만난 빈대떡 아줌마…가슴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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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우슈토베(바슈토베 언덕) `한·카자흐스탄 우호친선공원`에 고려인 추모비(왼쪽)와 한·카자흐스탄 우호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진 제공 = 통일문화연구원]

카자흐스탄 우슈토베(바슈토베 언덕) `한·카자흐스탄 우호친선공원`에 고려인 추모비(왼쪽)와 한·카자흐스탄 우호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진 제공 = 통일문화연구원]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에 그칠 게 아니라, 카자흐스탄 현지에 있는 우리 민족, 동포를 한 울타리로 엮어 통일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80여 년 전 이억만 리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고려인을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사진). 그가 현지 고려인에게 헌신하게 된 계기는 홍범도 장군이 경비 일을 하면서 쓸쓸한 말년을 보낸 고려극장을 직접 방문하고 고려인 후손들을 만난 경험이었다.

2013년 통일부 산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문화예술체육분과 위원장을 지내던 라 이사장은 당시 민주평통 카자흐스탄지회장 권유로 고려극장에서 일하는 고려인 청년들을 장학생으로 선정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우리나라 유수의 예술대학 유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연극배우 지망생 등 많은 고려인 청년에게 날개를 달아준 데 대한 보답으로 카자흐스탄 국립예술원이 2017년 그를 현지로 초청했다. 라 이사장은 "당시 알마티의 한 시장에 들러보니 누가 봐도 한국인처럼 생긴 아주머니가 빈대떡을 팔고 있더라.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고 회상했다.

평소 연구원의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를 통해 국내 탈북민 대상 언어·문화교육을 하던 그는 이듬해 곧바로 아카데미 중앙아시아 지부를 알마티에 설립하고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열악한 고려인의 생활여건을 개선시키고자 현대병원(김부섭 원장)과 함께 현지 의료봉사를 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지역(바슈토베 언덕)에 고려인 추모비도 설립했다. 우슈토베는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이 최초로 정착해 살던 지역이다.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우슈토베에 들렀던 라 이사장은 "정말 황량한 벌판에 고려인 조상들의 묘비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총영사관의 지원을 받아 공사기간 1년여를 거쳐 바슈토베 언덕 한쪽을 보도블록으로 정갈하게 정리한 뒤 한가운데에 고려인 추모비를 세웠다. 본인이 직접 쓴 '동족여천(同族如天·동족을 하늘처럼 섬기자)'이라는 문구를 추모비에 새겼다. 제막식에는 현지에서 의료봉사를 해오던 의료진과 봉사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라 이사장은 앞으로 10년간 이 언덕을 공원화해 역사 유적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품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지원사업을 하면서 그가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은 카자흐스탄 현지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그는 "80여 년 전 고려인의 정착을 도와준 카자흐스탄 현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그래야 고려인 추모공원 설립의 의미를 더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글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높은 이들로 한글 교육사업과 현지 의료봉사를 확대해나간 것은 일종의 선무 작업이었다.

추모비 맞은편에 한·카자흐스탄 우호기념비를 세우며 추모공원을 '우호친선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이 같은 취지에서였다. 라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지난해 완성된 우호비의 제막식을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한국과 카자흐스탄 수교 30주년인 내년 현지에서 고려인 동포 그리고 현지 지역주민들이 다 함께 어우러져 행사를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라 이사장의 활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동포를 매개로 한 통일운동이다. 통일문화연구원이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대한 탐방·연구에 힘 쏟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라 이사장은 "전 세계에 있는 우리 민족을 단합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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